바이런 케이티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그래요. 그분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 이전에 “당신은 종교가 뭐였습니까?” 혹시나 종교적 전통에서 깨달았는지 물어보려고. 종교가 뭐였느냐? 물어봤더니, 나는 종교가 따로 없었고 내 종교라면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을 굳게 믿고 있는 게 내 종교였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나는 아들딸, 이 녀석들이 양말을 벗으면 양말 통에 좀 갖다 넣어야 되는데, 이거 5년 10년이 지나도 그 단순한 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울분하는 그 생각. 그 생각이 나의 종교였다. 그 생각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너희 아들딸들은 양말 통에 갖다 넣어야 돼, 그게 내 종교였다는 거예요.
즉 나는 오로지 그 한 생각을 결정 코 믿고 살아다는 거지요.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왜 괴로우냐? 아이들이 양말을 벗으면 양말 통에 넣어야 되는데, 안 넣는 것 때문에 내가 괴롭다. 그걸 종교처럼 믿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한 생각을. 내 머릿속에서 만든 그 한 생각을.
그런데 문득 깨어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까, 여전히 아들과 딸은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래요. 내가 머릿속에서 너희들은 양말을 양말 통에 갖다 넣어야 돼,라는 그 한 생각을 버렸더니, 그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었구나. 이 생각을 내려놓고 났더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고. 또 심지어, 심지어 이걸 나는 엄청 스트레스받는 일로, 이 녀석들이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냐? 왜 엄마를 무시하느냐? 한두 번 해도 말을 안 듣느냐? 오만 생각,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판단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이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날 그걸 딱 포기하고 애들이 양말 통에 갖다 넣어야 된다,라는 그 생각을 포기하고 내가 그냥 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내가 스트레스받는 거에 비하니까 양말을 양말 통에 갖다가 넣는 게 그리 힘들지 않더라는 거지요.
사실 그리 힘들지 않잖아요. 내 거 할 때같이 그냥 해도 되고, 그렇게 힘들지가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받아들이고 났더니, 이게 전혀 괴로운 일이 아니더라는 거예요. 아무 일이 아니더라는 거예요. 왜 이 간단한 일이 나를 괴롭혔지. 그동안.
전혀 나를 괴롭힐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즐겁게 재밌게 양말 통에 갖다 넣는 걸 놀이처럼 했다는 거지요. 아무 얘기 없이. 웃으면서. 그런데 신기한 거는 그러구 났더니, 한 번도 양말 통에 갖다 넣으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양말 통에 가 넣기 시작했다. 그전에,
지난 10년간 엄마가 양말 통에 안 넣는다고 맨 날 뭐라고 했는데, 그때는 절대, 막 던지다가, 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갖다가 넣더라는 거지요. 이 말의 중요성은 뭐냐 하면요. 내 머릿속에 반드시 이래야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거기에 집착하는 생각. 왜?
이건 옳으니까. 맞잖아요. 자식이 자기 양말을 벗으면 양말 통에 갖다 넣는 게 옳습니다. 100% 옳습니다. 그건 틀린 건 아니지요. 그런데 그게 100% 옳은 게 맞느냐. 맞습니까? 그걸 100%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은 애들은 나중에 크면은 실패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보살님이 초대를 해서 그 집에 이렇게 갔더니 따님이, 이제 딸을 시켜서 밥을 준비했더라구요. 그래서 맛있게 해주셔서 저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 따님이 보니까 정말 뭐랄까, 우리 법회도 열심히 나오고 하시지만, 너무 뭐랄까 요즘 말로 하면 반듯하다 할까요?
너무 지혜롭게 시댁 친정 모든 집안에 너무나 지혜롭게 잘 하고 음식도 잘 하시고 모든 집안도 깔끔하고 남편에게도 잘 하고, 너무너무 잘 하시는 거지요. 그런데 이 노 보살님께서 그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솔직히 말하면 자신은 내 딸이 결혼해서 정말 소박맞을 줄 알았답니다.
누가 데리고 갈지 모르지만, 내 딸을 데리고 가는 그놈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불쌍한 놈이다. 야, 저럼 딸을 데리고 가가 지고 저 밥도 못하지 청소도 못하지 아무것도 못하고 자기 양말 하나 갖다 넣지도 못하고 내가 다 해줘야 되고, 내가 다 그렇게 하고.
또 노 보살님 남편이 살아있을 때 너무 다정다감하고 너무 따뜻해서 딸을 정말 공주님처럼 키워서, 쟤가 저래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빠가 너무 예뻐했대요. 모든 걸 다 사랑 그 자체로 살았답니다. 자기 방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살았대요. 그래서 노 보살님은 결혼하고 나면 정말 한동안 힘들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사는 거 보니까 내가 완전히 기우(杞憂)였구나. 정말 내 생각이었구나. 결혼하고 나니까 알아서, 어디서 배웠는지 신기하게 음식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다 잘하더라는 거예요. 그래 너무 신기하더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 따님, 그 따님이 50대이신데 그 따님께 여쭤봤어요.
따님한테 이러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 따님이 하시는 얘기가 그거예요. 사실은 나도 내가 뭐 이렇게 잘 할 줄은 잘 몰랐고, 진짜 결혼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해본 적이,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던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스님이 하신 그 말씀이 참 맞겠다,라는 걸, 제가 가만히 보면 느낀다고 그래요. 뭔데요?
이랬더니. 본인 자랑이긴 하신데, 본인이 정말 느끼기에도 정말 나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거예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줄줄 알고, 사랑을 어떻게 베풀어야 되는지를 그냥 저절로 아는 거 같다.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서 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덕 보겠다. 이런 생각보다 남편을 어떻게 하면은 내가 받은 것처럼 남편에게 해줄 수 있을까? 이런 걸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좀 힘들지만, 음식도 하고 청소도 하게 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냥 모든 게 자연스럽게 나오더라는 거예요. 모든 게.
그러니까 즉 우리 생각에는 어릴 때 내가 키우지 않으면 절대 안 될 거 같고. 자식은 음식을 김장하는 거에서부터 전부다 가르쳐가지고 보내지 않으면 큰일 날 거 같은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살 사람은 잘 삽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리 다 가르쳐놔도 막 싸우며 살 사람은 결혼해서 싸우며 살겠지요.
내가 옳다는 그 생각 때문에 자식을 얼마나 혹사시킵니까? 너 이거 배워야 돼. 이거 못하면 네가 평생 힘들어질 거야. 그러면서 자식과 싸우는데, 자식이 10년을 싸우고 20년을 싸워도 그 애가 바뀝니까? 잘 안 바뀐단 말이지요. 그러면 어차피 안 바뀔 거면 아, 이게 내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었는가?
그래서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내 생각에 대한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으면, 이 생각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 A는 A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때는 이제 그 A를 해도 괜찮아요. 과도하게 집착 없이 하니까.
야, 인 서울은 해야 안 되겠니? 이런 말 해도 괜찮습니다. 그 뒤에 뭐가 따라붙어요? 당연히 우리 엄마는 집착하지 않는다,라는 걸 아니까, 아이가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그런 얘기가 있대요.
아이는 어머니가 너무 공부, 공부, 공부 너무 닦달하고, 성적에 너무 예민하고 성적 조금 잘 보고 못 보는 거에 너무 막 스트레스 주고 예민하게 해서, 넌 반에서 3등 안에 들지 않으면 뭐 몇 등급이 안 나오면 못하고 어쩌고.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하시더라는 거지요.
얘가 10등 7등 8등 하다가 죽도록 공부해가지고 3등 성적표를 방 안에다가 놔두고 그 성적표 위에다가 빨간 펜으로 ‘이제 됐어!’ 써놓고 자살했다는, 신문에 그런 게 났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그 아이를 얼마나 스트레스받게 했는지 모르는 거지요.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도 엄마 아빠는 결과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안 받으셔.
무엇이든 최선은 다하지만 결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알면, 자식도 부담이 확 떨어집니다. 남편도 부담이 없구요. 나도 내 삶에 대한 부담이 없습니다. 삶은 내가 이렇게 돼야 돼,라고 생각하잖아요. 10년 뒤엔 이렇게 돼야 돼. 1년 뒤엔 이렇게 돼야 돼. 내 인생은 건강해야 돼. 내 몸은 건강해야 돼.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야 돼.
남편은 내 말을 잘 들어야 돼. 남편은 얼마 이상은 벌어 와야 돼. 이거 다 생각 아닙니까? 그거 다 내 생각이고, 내 생각을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그 생각으로 인해 괴로워집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100% 옳은 게 아닐 수 있어요. A는 A가 아닙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그 A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구 나서 이제 돈을 열심히 벌라고 해도 좋고 여러분이 열심히 벌어도 좋고 뭘 해도 좋습니다. 거기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게 진정한 공부이다.
첫댓글 _()_
나는 종교가 따로 없었고 내 종교라면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을 굳게 믿고 있는 게 내 종교였다.
초등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종교.... 자신교....
생각 하나 바꾸면...
나는 편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거 하나 못하면서?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도 못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내 생각에 대한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으면, 이 생각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 A는 A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때는 이제 그 A를 해도 괜찮아요. 과도하게 집착 없이 하니까.
생활속에서
관계속에서
적용해보니 굉장히 효과 좋은 약방문이었습니다
아주 속도 편해지고
몸도 가벼워지더군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