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본부 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는 조민수라고 합니다.
3년 전, 신촌의 어느 건물 지하에 있는 도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만 해도
제가 초단 심사를 앞두고 이렇게 수련후기를 적을 줄 알았을까요.
그만큼 아이키도가 이미 제 일상의 한 부분으로 굳게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운동장에서 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노는 것뿐만 아니라 휴일이면 아버지와 함께 공놀이할 때, 그 순간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동아리로 새로 생긴 검도부에 들면서 제 스스로 운동 중에서도 무도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시간이 나면 검도를 배우며 지내다 결국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운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저는 다시 운동을 배우고 싶어 이곳저곳 들러보았습니다. 대학생 때 평생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아버지 말씀에 저도 최대한 신중하게 탐색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평생동안 즐길만 한 것을 찾진 못했습니다.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는 훌륭한 스포츠였지만 너무 승부에 집중한 나머지, 중요할 때에 긴장감으로 인해 몸이 경직되는 걸 스스로 느껴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제 몸이 다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시 운동하러 가야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무도가 아이키도였습니다.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가짐으로 도장의 굵은 유리문을
열었더니 콧수염이 매우 잘 어울리시는 선생님께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콧수염과 더물어 제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처음 보는 저에게 아이키도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셨던 모습이었습니다. 저에겐 매우 신기한 일인데 그 때가지 제가 방문했던 그 어느 도장의 선생님들도 그런 설명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대강 어떤 운동이고 월회비는 얼마이고 여자 탈의실은 어디고...이런 것들만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신촌 도장을 방문하고 나서 제가 이제야 제대로 된 무도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을 느꼈습니다.
제 첫시간은 무기술이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렸을 때 배운 검도가 조금 도움이 되어 무난히 소화했습니다. 하지만 체술을 접했을 때는...제 짧은 인생에서 이렇게 어려운 운동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감히 쉽게 넘볼 수 없는 산같은 운동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그나마 쉬운 줄만 알았던 무기술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모양을 흉내내며 휘두르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배우고 있습니다. 그냥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절망적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다들 이런 류의 운동을 해보셨나며 칭찬만 들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버벅거리고 틀리는 운동은 처음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전공 수업을 들으며 깨달은 한 가지, "모든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를 되새기며 제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결코 허상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확신이 생긴 다음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다른 무도에 시선을 돌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쌓아온 스스로 운동을 잘한다는 착각을 내려놓으니 아이키도가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매 수업마다 진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이라도 얻어간 것에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아주 미세하리만큼 조금씩 전진하며 선생님과 선배님들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키도를 시작한 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 부모님께선 자랑스럽게 여기시지만 대학교를 한 학기 당겨 졸업한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가장 괴로웠습니다. 대학원 진학과 그에 따르는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좋은 성적과 빠른 진학만 바라보며 달려온 게 화근이었습니다. 너무 순진하게 지도교수님을 결정했다가 학문과 학생 진로에 관심이 없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며 대학원 첫 학기를 제 경솔한 선택을 후회하는 나날로 보냈습니다. 그 때 학기 공부는 겨우 잘 마무리했지만 다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지도교수님을 바꾸며 생기는 마찰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을 땐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운동을 하면 조금이라도 바깥일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학기 중에도 가끔 나와 아이키도를 배웠습니다.
운동을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키도를 배우며 들은 좋은 문장을 마음 속에 담았습니다. "내 중심을 잃지 않고 무겁게 할 것".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을 제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새 집에 도착하고, 제 고민을 말씀드리지 못해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절 반기실 때 느끼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용기가 생기는 듯도 했습니다. 아이키도가 저를 굳게 다져주었습니다.
흔히들 무도 또는 호신술이라면 강한 힘이나 스피드를 강조하고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하라는 기술을 위주로 자신의 운동을 알립니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무도는 흔치 않습니다. 진짜 무도는 위기 상황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술도 포함하겠지만 앞으로의 삶의 지표를 어떻게 결정해나갈 것인가라는 정신적인 수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道)'라는 단어가 물론 일본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일본 역사에 남은 수많은 무사들이 그들이 배웠고 그 후손에 남긴 것을 '도(道)'라고 붙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 즉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무도가 그 길을 알려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본부도장뿐만 아니라 다른 지부에 계신 수많은 어른분들에 비하면 사회에서 햇병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겪은 어려움 그 이상의 고난을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키도가 제게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변 상황이나 조건이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시기가 나쁠 수도 있고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을 합하여 발산하는 아이키도의 원리에 따라 주변 상황이나 시기가 적절해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겠습니다. 혹은 제가 그런 환경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었을 때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제 모든 역량과 힘을 담아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물론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주 날카로운 칼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뽑아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뽑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질은 분명 다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모든 아이키도 회원님들을 응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