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병법
병사의 고름을 빨아준 것으로 유명했던 오기는 유명한 오자병법을 남깁니다.
그는 아주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지요.
지금도 오기(傲氣)라는 말은 남에게 지기 싫어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오기는 어렸을 적 자기보다 더 강한 깡패를 상대로 덤볐다가 곤죽이 되도록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오기는 다음 날 깡패를 다시 찾아가 도발했고, 또 전날처럼 죽이 되도록 맞았지요.
오기는 이후에도 단념치 않고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계속 깡패를 쫓아다니면서 덤볐고,
결국에 밑도 끝도 없이 도전하는 오기에 지친 깡패는 마지못해 싸움에서 져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제나라 출신인데 원수인 노나라의 벼슬을 얻기 위하여
아내를 죽인 일화로도 유명한 사람이지요.
그는 76회의 전투를 치렀는데 64회를 승리로 이끌었고 나머지 12회는 무승부로 불패의 신화를 연출한 사람입니다.
계급의식이 더 강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오기는 병졸들과 똑같이 입었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똑같은 조건의 잠자리에서 자고, 행군할 때는 수레에서 내려 같이 짐을 지고 걸었다고 합니다.
옛말에 "병사가 우물을 다 파기 전까지는 장수는 목마르다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오기는 그런 점에서 실로 현명한 통솔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그가 쓴 오자병법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전쟁을 일으키려면 군주가 자신의 판단에만 의지하지 말고
종묘에 고하고, 거북점을 치고, 하늘의 계시를 얻은 다음에 전쟁을 시작하라."
냉혹한 현실주의자인 오기가 그런 허황한 주장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의식을 치른 것은 하늘의 예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군주가 백성의 생명을 아끼고 그들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병법을 만든 손자나 오기나 어쩌면 권모술수의 대가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절체절명의 게임이니까요.
이 권모술수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이지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수완이나 지혜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가 되었던 역사는 해석으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현상을 제대로 보아야 하고 판단을 정확히 해야 할 큰 이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