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과유불급(過猶不及)한 일, 자성(自省)하는 생활
2017-04-05 현대일보
우리는 살아가면서 물질적, 정신적인 성취 욕구를 충족하고자 허영심에 도취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성취의욕에 빠져 무리하면서까지 지나친 운동이나 일을 하다 병을 얻어 고생하는 일을 우리는 종종 보고 또 경험한 바가 있다. 실제 생활에서 학문적인 도를 수양하고자 하는 무리한 열정, 신체적 건강 유지를 위한 무리한 운동, 오늘 내가 맡은 일을 끝내야 한다는 무리한 집념, 전자 문명의 발전에 따른 지나친 소유욕과 의존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짜증과 지루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모든 사실은 자신의 무리한 욕심이나 성취욕의 지나침에서 오는 일들로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서 오는 지나침의 욕구로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역효과의 파생물이다.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목적한 바의 일에 대한 지나침이나 그 목적에 미치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논어에 나오는 것으로 자공이 공자에게 '사' 와 '상' 중 어느 쪽이 어집니까? 라고 묻자, 공자는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라고 하자 자공이 그럼 '사'가 낫단 말이군요. 라고 반문하자 공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적당한 선의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로써 오늘날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유래하게 된 것이다."따라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지나침은 부족함과 같은 의미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로써 무리한 일을 한다거나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하는 일, 과식을 하는 일 등 지나침을 의미한 말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으로 나타난 일에 대한 자가당착적인 자성의 태도가 요구된다. 이는 나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방법으로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찾고 닦는 수정(守靜)과 신독(愼獨), 그리고 존양(存養)과 자성(自省)으로 대변할 수 있다.자성(自省)은 사전적 의미로 자기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을 뜻하며 이는 논어(論語)의 이인편에 나오는 말이다. 즉,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이다. 이 말은 어질고 현명한 이의 행동을 보고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동을 보고는 마음속에서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이다.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보면 자신도 본받으려고 노력하며,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마음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행동을 수정하는 의지를 갖는다. 이러한 자성(自省)은 누가 가르쳐 주기 전에 스스로 매일 자신의 행동을 세 번 살핀다는 증자(曾子)의 삼성오신(三省五辛)으로 이어진다. 즉, 자기 스스로 행한 일에서 남을 정성을 다해 도왔는지, 친구에게 믿음이 가지 않도록 했는지,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배웠는지 등의 세 가지를 반성하는 일이다.또한, 우리의 성인인 퇴계 이황은 58세에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서 자성록(自省錄)을 저술하여 자신의 지식과 행위 전반을 성찰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인군자들도 누가 지적하기 전에 자신을 살피면서 옳은 일은 실천하고, 그릇된 일은 스스로 반성하고 자성(自省)하는 생활의 지혜에서 미래지향적인 삶의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자성은 바로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라 본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웃어른이 자녀들에게 애야! "재물에 대해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라,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하는 충고의 말이나, 친구끼리 농담 삼아 "그는 너무 많은 돈을 탐내다가 결국 과유불급이라고,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죽었다."라는 비아냥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어느 일기장에 과유불급(過猶不及)한 행위의 글이다. 건강이 좋지 못해 몸의 단련을 목적으로 지나친 산행으로 오히려 건강을 해친 이야기다. 우리는 산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정상이 나타나 극기 훈련식으로 정상을 향해 무리하게 도전한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간의 연속적인 산행은 건강은커녕 병을 얻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신세의 일이다. 이는 산에 대한 지나친 과욕으로 건강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급부를 얻은 역효과의 파생 행위이다. 이는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후회스러운 일을 자성(自省)하는 데에서 매사에 무리하거나 과욕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인식을 가져다준 사례이다.어느 성인은 도를 가진 사람은 가득 차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가득 차면 넘치고 오래 머물면 섞는 생활의 이치를 가벼이 할 일이 아님을 누구든 명심해야 할 일이다. 공자는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적합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욕심으로 신념에 찬 사람은 그 뜻은 좋으나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허황한 꿈이요, 실패의 벼랑에 부닥치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과유불급(過猶不及)은 보통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목표를 정해 무리하지 않게 과욕을 버리며 일하고, 운동하며 즐기는 여유로운 삶이 앞서야 한다. 그런가 하면 증자(曾子)의 삼성오신(三省五辛)으로 자기가 행한 일이 무리하지 않고 정성을 다했는가? 친구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는가? 부모나 스승의 가르침을 생활에서 어긋남이 없었는지 등 자성(自省)하는 생활을 잊지 말아야겠다.©현대일보
출처: 昌寧張氏 府使公派 원문보기 글쓴이: 愚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