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환동(還童)
정향 선생님의 행초서(行草書)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글씨가 무르익으면
어린아이의 서투른 글씨로 '환동(還童)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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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나 미에 대한 통념을 시원하게 벗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대범함이
거기 있습니다.
아무리 작게 쓴 글씨라도 큼직하게 느껴지는 넉넉함이라든가 조금도 태(態)
를 부리지 않고 여하한 작의(作意)도 비치지 않는 담백한 풍은 쉬이 흉내낼
수 없는 경지라하겠습니다.
그것은 물이 차서 자연히 넘듯 더디게 이루어지는 천연(天然)함이며,
속이 무르익은 다음에야 겨우 뺨에 빛이 내비치는 실과(實果)같아서
오랜 풍상을 겪은 이끼 낀 세월이나 만들어낼 수 있는 유원(幽遠)함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글씨로써 배워서 될 일이 아니라, 사물과 인생에 대한
견해 자체가 담담하고 원숙한 관조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글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며 도(道)의 가지에 열리는 수확
이 아니라, 도의 뿌리에 스미는 거름 같은 것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모난 감정에 부대끼고 집념의 응어리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정향 선생님의 어수룩한 행초서가 깨우쳐준 것은 분명 서도 그 자체를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音 - 김무한 '싹'
첫댓글
'멋이나 미에 대한 통념을 시원하게 벗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대범함'
요즘 신영복 선생님 글을 읽고 있습니다. '강의'라는 책도 추천드립니다.
짧지 않은 긴 글에서 전해지는 감동..자연스럽고 의미로운 말씀에
배움이 깊습니다. 제 삶의 기쁨입니다. 다짐의 시간으로 몇 자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