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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신역사문화 브랜드, 생명평화운동
-원주생명평화 창조도시-
김봉준(오랜미래문화연구회)
한국민,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를 이루어 냈고 민주화도 이루었습니다. 한국민은 격동의 20세기 세계사에서도 할 만큼 최선을 다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 최악의 산업재해, 최대의 생산주의 속도경쟁을 견뎌내며 엄혹한 군사독재시대를 이겨내며 살아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을 거두었고 독재정권도 민의 힘으로 무너뜨려 민주화를 성취 했습니다. 민주화의 성과는 지방자치제도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성과와 영광만큼이나 실패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습니다. 집단트라우마, 스트레스성 심리적 장애가 깊어져서 언어장애, 소통장애의 심리상태가 상처로 남았고 심리적 그림자는 사람의 표정마저 바꾸게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묵둑둑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랜 전통인 공동체적 신명은 심상의 이면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본래 활달하고 밝았던 겨레의 신명문화는 심층문화로 수면 아래로 잠겨버린 듯합니다.
신산고초 끝에 찾아온 생존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화로 희망을 찾는다 싶었고,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지역도 살만한 세상이 오려니 막연하게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도는 높지 못하고 정치적 자치력은 향상이 더딥니다. 신자유주의 세계시장의 개방으로 생존의 경쟁력은 높아진 반면 더불어 사는 협동과 조화의 삶은 점점 잃어갔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협동과 단결이 잘 안 되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주인 된 역사의 경험을 갖지 못한 결과 시민이 스스로 만든 광장문화가 없이 근대적 시민사회를 강제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사경험으로는 18세기 영정조시대가 근대적 시민사회 형성기 하고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신도시 형성은 화성시같은 계획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순조 이후 시민의 창조적 힘을 억누른 조선왕조는 망했고 동학의 좌절로 나라까지 잃어야 했던 깊은 절망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역사의 좌절은 고스란히 개인의 불행과 통한으로 이어졌고 20세기 이후, 아직까지 지역은 협동심과 자발심이 떨어지고, 주민토론도 잘 안 되는 자치의 부재, 마을공동체의 공공심도 찾기 힘든 지역사회가 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지역의 종합적 발전은 지역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주민의 창의성, 즉 문화정체성이 형성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지, 자신의 삶의 정체성,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이 있어야 지역사회의 장기적 방향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자치 민선시대를 맞이하여 원주지역문화는 여러 가지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상징으로는 치악산, 꿩설화, 장미, 원주감영, 원주한지, 치악산과 원천석, 법천사지 현묘탑 등을 찾아내었고 충효의 도시, 건강도시, 첨단의료생명도시, 혁신도시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민관이 협력해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늘 있어왔습니다.
예산과 행정이 앞장서고 홍보성 캠페인의 힘이 효력을 발휘하였지만 시민은 왠지 시정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원주시민의 인적 자산과 사회적 자원이 충분히 가세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시민 다수가 흔쾌히 동의하고 동행하는 문화자산으로 인정 못 받는 것은 무엇때문 일까요. 이것은 한국근대사의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얻게 된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오는 깊은 수동성일 겁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능동성을 최대한 자재하고 시키는 대로만 따라하면 피해 안 받고 손해 안보고 산다는 것인데, 공공의 가치에는 수동적이고 개인의 이익에는 능동적인 생활양식이 훈습되어 왔습니다. 이런 한국형 근대시민의식은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의 능동적 진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오랜 정치적 지역감정, 연고주의, 혈연주의의 낙후성도 모두 지역의 수동적 문화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향식 근대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새로운 기류가 생기는 흐름이 일부지역에서 생겼으니, 원주의 탈근대 생명평화운동의 정신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김지하시인의 표현을 빌면 ‘꼴지가 첫째 되는’ 역설이 여기 원주지역 정신들에 숨어 있습니다. 가난하고 전근대적인 것 같은 후진? 사회에서 오히려 미래사회의 빛을 발한 것입니다.
공동체적 지성
원주는 파행적 근대화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탈근대적 대안을 창조적으로 실천한 사회운동을 펼쳐 왔다는 점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뭐, 생명산업, 유기농생산, 친환경 먹거리 유통, 생활평화, 자연과 조화로운 삶 등을 시민사회에서 모두 다 언급하는 세상이라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생명과 평화의 시민운동이 30,40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 이런 선진적 사회운동이 원주에서 일찍이 태동하였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원주지역의 독특한 삶과 문화에서 찾습니다. ‘그가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문화는 생태지리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치악준령은 한국의 지형으로 볼 적에 인간사회보다 야생지대에 속하는 곳입니다. 사회적 질서보다 야생의 질서가 통하는 사회입니다. 야생에서 생명의 본성적 질서로부터 배우고 따르려던 재야의 사람들이 살아 왔습니다. 재야의 정신사가 내려오는 재야사의 거처가 치악으로 시작해서 백두대간이 포태해 왔습니다. 조선 민간 야인문화 산실이 여기 치악부터입니다. 여말선초의 재야 원천석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경받아 온 것도 원초적 야생문화를 숭상하는 이곳 문화와 관련 있습니다. 조선500년의 비주류 전통은 여기 태백의 준령이 시작되는 천미터 고지의 치악에서 시작합니다. 조선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야생의 사고로 자생의 생존방식을 궁리해온 자존의 오랜 전통이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었던 곳이 이곳 치악 원주입니다.
원주의 지성은 단순히 저항적 지식인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운동으로 진화하여 대안사회운동으로까지 집단적 지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라면 다른 지역사회나 현재 소셜미디어에서도 흔히 보입니다. 여기까지였다면 원주가 탈근대적 대안운동(생명평화운동)으로까지 일찍부터 진화하진 못했을 겁니다. 공동체적 지성이 집단지성의 공동체를 이루며 공진화를 한 것입니다. 혼자서 선진화하기보다 더불어 생존하는 시민운동의 지혜를 찾았습니다. 전통적 주민생활의 가치인 공동체적 인성과 역사의 성찰적 지성을 갖춘 독특한 집단지성이 형성되 온 것입니다. 이영희 선생이 서울에서 저항적 지식인으로 힘들게 지내다가 가끔 원주에 와서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원주 사람들’을 만나고 가면 한결 마음의 위로가 되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 말도 이런 원주의 지성 때문입니다. 서두르지도 조급하지도 않고 역사를 긴 안목으로 보았고 타인에 대해 따듯한 환대로 맞이했던 공동체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민중과 지식인의 덕목을 함께 갖춘 인품이고 지식인처럼 문사철을 가지며 예인처럼 감성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옛 사람들은 언행일치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추사가 말하는 학예일치형 인간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함께 성숙한 사람입니다. 근대에 와서 이성주의 시대에 보기 귀한 인간형이지만 원주에서 그런 사람들이 배출 되었습니다. 장일순, 지학순, 박경리, 김지하, 박재일, 이분들이 학예일치형입니다. 사회학이나 경제학으로만 세상을 이해하지 않고 사람의 감성을 읽을 줄 아는 예감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성보다 빠르고 지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역설적인 풍진 속 초탈자입니다.
감성, 영성, 지성을 균형 있게 갖춘 공동체적 지성집단들, 이분들의 곁에는 늘 원주민들이 함께 했고 주민과 함께 낮은 곳으로 연대하며 말보다 실천으로, 비판보다 대안으로, 질책보다 사랑으로 더불어 함께 잘사는 대안사회를 추구하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분명히 장일순, 지학순 등의 어른 들이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적 지성은 지금은 자칫 잊혀 질 수 있는 미덕입니다. 지금 원주시민사회운동도 유기적인 순환과 협력보다 직능별 소분류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공동체적 지성보다 직능적 지식인으로 농민, 상공인, 노동자, 문화예술인 등 각기 대변하는 계급적이며 직능적인 세분화가 특징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한 주민정치의식은 약화이고 지역 공공성은 약화됩니다. 갈등의 증폭에 따른 예산낭비, 시민사회 공공지성의 위축, 시민의 공공문화행사 기피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문화공공성의 약화 현상은 지역사회를 더욱 팍팍하게 합니다. 시민의 자발성과 창의성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감퇴되어 왔습니다. 지역경제의 침체와 참여민주주의의 부진에 기인하는 것이고 세계사적으로 보면 시장의 세계화로 거대한 세계대자본과 경쟁하는 지역은 퇴락합니다.
그러니 지역문화 침체와 지역도시의 역량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기들이 가진 것, 있는 지역자산마저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 할만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배척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념이 달라서 배재하는 한, 서로 거리를 둔 결과는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시민공동체 형성을 지연시킵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원주시민의 밑으로부터의 창발적 대안을 외면해 버린다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 가 될 뿐만 아니라 자기지역의 문화역량을 쇠락시키는 길을 자초할 겁니다. 세월은 기다려 주지않고 흘러갑니다.
원주에서는 한국근현대사가 낳은 중요한 문화자산이 있습니다. 시민 스스로 창조해 온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들라면 저는 5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민주화운동의 성지 (유신독제 반대운동),
2.생명사상의 원류지(생명사상가들의 출현),
3.생활협동조합의 효시(시민금융협동조합 밝은신협 ),
4.유기농생산유통의 발원지(원주한살림)
5.민속문화의 ‘오래된 미래’로의 재창조와 평화운동(원주민속문화운동 30년)
이 다섯 가지는 서로 연관관계에 있으며 계승하며 진화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가지를 모두 이루어 온 ‘창조적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원주 말고 아마 없었을 겁니다. 7~80년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 다섯가지의 문화유산은 진행형입니다. 각각에 대한 설명은 각 발제자의 의견을 듣기로 하고 저는 총론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들 5가지의 원주근현대문화유산을 다음같이 5가지 특징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지역성에서 생명·평화의 보편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2. 비주류의 창조정신이 만든 창조적 문화유산입니다.
3. 탈근대적 가치를 자생적 시민운동으로 실천한 사회자원입니다.
4. 5대 성과가 상호 보완적이며 ‘오래된 미래’로 계승합니다.
5. 학예일치형의 공동체적 지성을 이루는 인적 자산입니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지역성에서 생명·평화가치의 보편성의 발견
원주지역의 20세기 특수성에서 21세기 보편성을 재발견한 것인데, 특수성이 보편성의 밭이 된 것입니다. 원주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군사기지가 주둔하면서 겨우 소비시장이 형성되었고 농토는 적고 도시 인프라 없는 없고, 가난하고 척박한 도시였습니다. 수재의 악조건을 호혜의 경제를 최후의 자원으로 찾았던 것입니다. 상호부조와 협동금융조합으로 호혜경제의 모델을 창조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세계화와 세계금융위기가 전세계 시장을 강타한 지금 지역경제가 피폐일로에 있을 때에 지역공동체 중심의 분산경제, 도농협동의 생산·소비조합에서 대안경제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이미 30여년 전에 시민운동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지금 투기자본화한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겪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관료주의로 멸망한 공산주의와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 자본주의, 이들을 동시에 비판하기는 쉬워도 대안을 실천적으로 준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근대적으로 낙후한 지역도시에서 역발상하여 탈근대적 진로를 시민의 긍정적 힘을 믿고 지역공동체경제제도로 모색하였다는 점이 원주시민의 자랑스런 자산입니다. 지역에서 살면서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모두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라는 점을 주시하고 세계사적 새 동향을 예감하면서 새로운 협동경제 모델을 지역에서 찾았던 결과입니다. 21세기 탈이념주의, 패권주의와 투기자본주의를 극복하고 희망의 대안경제를 찾는 이시점에서 원주에서는 한 세대 전에 협동경제방식을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요즘 보편적 복지사회에로의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오늘 보편적 사회가치와 공생의 철학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원주시민운동이 이룩한 생명·평화의 화두는 빛나는 자산입니다.
2. 창조적 비주류문화
요즘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서구 유럽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한국과 동아시아를 문화시대라고 말 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광의 문화, 삶의 질을 중심에 둔 생활문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도 문화의 시대에 접어 든 것 같습니다. 산업시대는 자본 경쟁력과 우수한 기술력이 주도하는 시대라면 문화의 시대는 창의력과 3F- 감성 여성 영상이 중시되는 시대이고 다문화공생의 시대입니다. 뉴에이지운동과 촛불시민운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감성과 영성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집단지성의 형성은 물론 집단취향, 집단영성의 기류가 나타납니다. 새로운 자발적인 취향별 시민문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산업시대눈 쟝르주의 문예조직이 문화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시민은 취향문화로 독립형 동아리를 이루며 비주류의 네트워크를 이룹니다. 주류는 관료화 보수화 되어가고 문화의 창조적 역동성은 오하려 독립예술집단, 창조적 고립을 자처한 개인문예자들에게서 나옵니다.
인간중심주의의 합리적 이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구적 위기가 도처에서 발생하는 현대사회는 인간중심적 이성주의 세계관의 한계에 부딪쳐 있습니다. 이성주의, 철기문명, 남권주의의 세 가지의 헤게모니를 총체적으로 성찰하지 않고는 근대사가 순탄하게 진화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을 ‘무통문명’이라 말할 정도로 사회적 아픔을 타자화 해버리는 사회가 되가고 있습니다. 몰인정하고 몰지성적 사회는 앞날에 희망을 걸 수 없습니다. 점점 더 심화되어가는 ‘두국민국가주의’ 80:20의 양극화 사회를 유지시키는 국가통치전략으로는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한국의 주류사회는 현실에 안주하고 사회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녀 왔습니다. 한국사회의 창조적 동력은 이제는 대체로 비주류에서 나옵니다. 비판정신은 창조력의 1차 동력입니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양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소외된 다수의 국민은 피해를 봅니다. 생산적 변화를 이끄는 창조적 대안은 현실의 고통을 알고 이해하는 비주류에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원주에서 발생해온 유신반대 민주화운동, 생활협동운동, 생명운동, 유기농산물생산유통운동, 민속문화부흥운동이 모두 사회적 비주류의 창조적 대안운동이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절박한 삶 앞에서 물러 설 곳도 없는 가난한 지역에서 시민과 함께 대안을 모색한 것입니다. 한국의 변방도시 비주류사회에서 21세기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길을 꾸준히 찾아 온 것입니다.
3. 21세기 탈근대적 가치 창조
한국에서 서구적 의미의 근대의 완성이 가능한가? 한국사회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비동시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일찍이 겪어 왔습니다. 원주시만 해도 농촌 공동체문화 전통문화와 공업단지와 아파트형 기능도시로 대표되는 근대성과 생태공동체 모델을 시민사회로 정착시키려는 탈근대성 시민 활동이 공존합니다.
직선적 역사발전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전근대의 농경적 봉건사회, 근대의 산업도시사회, 탈근대의 지식정보화 사회, 이 직선적 진보관은 역사를 두부 자르듯 제단 합니다. 이런 역사관으로 정치경제사회를 이끌려는 사회지도층은 과거를 낡은 것으로만 보고 청산하려고만 하고 새것은 서방 선진국의 것으로 수입해다가 적용하려고만 하니까 사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근대 과학기술을 받아서 빠르게 적용하고 산업화에는 성공 하니까, 그 이후에도 계속 선국 복지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줄 아는데 문화는 과학기술처럼 카피한다고 자기문화가 되지는 않습니다. 경제성장만 하면 우리의 행복도 저절로 오게 되는지 묻고 있는 시대입니다. 행복은 경제성장에 비례해서 성장하지도 않습니다. 행복이 목표인 복지사회도 그래서 문화를 이해할 적에 가능합니다. 예술인은 문화복지사회를 지향합니다.
탈근대기에 준비해야 할 핵심은 화석에너지를 절약하는 대체 에너지(태양열 등), 지역생태 순환형의 공동체경제, 다문화가 공생하는 행복한 문화복지사회의 길 같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근대적 합리주의 세계관을 넘어 생명순환의 세계관 전환이 요구됩니다. 지금 도처에서 일어나는 보수정부와 시민사회의 개발갈등은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의 길인가, 동시대에 살면서도 가는 길이 다릅니다. 가치논쟁이 타협하기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에서 한정된 국토를 공유하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주민이기에 공생하려면 타협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껏 근대적 개발논리를 전국민이 묵인하고 호응하여 왔다면 이제는 탈근대적 생명순환 논리도 듣고 응해야 합니다.
4. 오래 미래의 문화
원주는 민속문화계승운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주년이 됩니다. 그동안 활동 주최들은 얼마전 행사를 갖고 사진영상을 보여주며 해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도시 원주에서 민속문화운동을 지속해서 이어 온 주체가 아직도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현대사입니다. 민속문화를 문화운동으로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문화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고 학습 계승이고 이를 현실과 미래에 재창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역의 오랜 전통을 미래로 이어 낸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근대기에 생활문화로 적응하는 전례가 있을 적에 미래의 전통 계승도 가능하고 문화관광의 프로그램과 상품화도 가능합니다.
스웨덴의 인류학자 헬레나 호지는 ‘오래된 미래’ 서구유럽이 근대화하며 청산해버린 작은 생활공동체의 가치- 돌봄과 우애와 협동의 문화와 자연생태계와 지역적 순환을 이루며 살아온 오래된 전통이 인도 북부의 라다크 마을 답사에서 발견하고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 진리를 주목했습니다. 아시아의 전통에서 서구 근대화가 잃어버린 가치를 재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관료 주류는 아직도 근대화 신념에 사로잡혀 토건사업과 석유에너지 산업, 화석연료 산업에 주력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들의 전통문화에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생태계보존과 자연순환의 질서를 전통문화가 가르쳐 준 지혜에서 배우고 자연과 조화와 균형을 감성의 질서로 체득하는 것 또한 전통문예에서 배우자는 것입니다. 전통은 학습과 재창조의 경로를 밟지 않으면 자기 문화가 아니고 박물관 유리상자의 유물이 되고 맙니다. 수도권과 대도시는 이미 민속의 현장이 없습니다. 작은 지역도시마저 민속문화를 버린다면 민속은 더 이상 진행형의 민속이 아니고 박물관 유물일 뿐입니다.
학교교육이 시서화전통, 가무악전통을 교육시키지 않으면서 영어몰입교육에 몰두한ㅇ다는 것은 교육철학의 부재이고 문화정체성 상실입니다. 민속문화는 대도시의 복재상품문화에서 없는 원형문화의 형식이 있으며 오래전부터 검증된 문화입니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 비해서도 우리는 민속전통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너무 부족합니다.
5. 평화를 창조하는 도시
갈등과 긴장의 해소가 평화입니다. 가난의 해소가 가장 기본적 평화인 것도 인정합니다. 비정규직 해소와 일자리 만들기가 평화의 필요조건인 것 분명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위기를 관리하고 전쟁 억지력을 키우는 것이 평화 맞습니다. 그러나 생존의 위기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평화관리 말고, 근본적 평화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후쿠시마원전 사태에서 보았듯이 자연과 인간의 질서가 깨지면 평화도 깨집니다. 철기문명이 2천년 동안 키워 온 도시문명은 화석에너지의 고갈, 핵문제, 도시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연파괴로 말미암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모두 대도시를 선호하고 기능적 분화발전을 기대하고 고층빌딩 소비생활만을 좋아하지만, 평화가 깨지는 폭력은 도시로부터 옵니다.
인간소외, 스트레스성 장애, 에너지 전쟁, 천재지변의 대란이 도시문명의 산물이고 평화를 위협해 왔습니다. 다시 원시적 전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 평화를 창조 하지 않고는 도시문명의 평화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자연과 도시의 균형적 질서가 더 이상 깨지지 않게 지구적 위기를 막아야 하는 조화로운 생활의 평화가 중요해 졌습니다.
원주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사회적 긴장과 스트레스로부터 인간의 심적 평온을 스스로 창조하고 만들어 내는 치유의 예술에 일찍 주목해 왔습니다. 장일순 김지하, 이분들의 시서화 문예는 학예일치형 인성 수양,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치유의 문화를 위해서도 현대사회에서 시서화는 중요합니다. 원주의 생명예술브랜드는 시서화와 가무악의 융합형 문예의 특성을 보입니다. 이 전통은 3대에 걸쳐 한글형시서화까지 이어오고 마당굿 창작으로 이어 옵니다. 시심을 지키며 시대의 예감을 감지 한 것도 문예인의 수양방법이 문예인만의 고유의 것만이 아니라 문예취향 동아리로 광범위한 저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능주의 장르예술로 보다 삶의 치유와 평화를 위한 생활예술의 탈근대적 비움과 섬김의 미학의 성취를 원주는 가지고 있습니다.
탈근대의 미학이라면 소통과 수요자의 미학, 생활의 가치추구, 사회적 연대와 나눔의 미학입니다. 지역문화나눔을 일찍이 실천한 장일순 김지하의 나눔문화 실천은 원주의 값진 문예유산입니다. 나눔의 실천을 했던 원주지역의 독특한 시서화문예 전통임을 주목합니다.
오랜 군사문화로부터 심리적 스트레스를 벗어나려는 트라우마의 치유가 여기 원주에서도 있습니다. 앞으로 혁신도시 문화프로그램으로 내 놀만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인력을 보다 집중적으로 양성하면 좋겠습니다. 보편적 복지시대를 맞이하여 문화복지사를 준비해야하며 문예체험교육의 수요 증대에 대응해야합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원주생명평화문예전통은 값진 문화유산입니다.
유라시아의 길목, 강원도는 평화의 예감을 정책으로 실천해야 할 숨 가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동해안 평화산업도시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의 강원도형 관광문화 브랜드가 요청됩니다. 특히 원주는 중부권 교통의 요지이고 강원도의 관문도시입니다. 강원도가 한반도의 마지막 남은 생태보존지역입니다. 여기마저 근대적 토건개발로 끝장내고 나면 한국의 생태원형지는 실종합니다. 후손에게 물려 줄 자연도 없게 됩니다. 수도권 시민의 쾌적한 휴양문화, 건강도시계획이 토건개발 일변도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명·평화는 철학(미학)과 생활문화와 치유예술과 농업과 첨단의료 기술과 디자인의 탈근대적 대안을 공유하며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주의 문화콘텐츠와 브랜드는 거대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니 그것이 생명·평화문화유산입니다. 기존의 근대주의의 방식으로는 한계에 왔습니다.
생명·평화창조도시의 거버넌스
장일순 선생이 밝은신협을 원주지역 주민들과 창립할 적에 '기존의 방식으로 안되겠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금융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래서 일본 등에서 펼쳐지는 신협운동을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기존의 상식을 넘어선 발상의 전환, 창조적 상상력이 주요했습니다.
본격적인 도시의 세기를 맞이하여 국내외적으로 가장 부상하고 있는 메타포의 하나가 ‘창조도시’라는 임상오 교수의 견해에 저는 동의합니다. 시민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이끌어내고 근대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창조도시라면, 원주야말로 시민의 잠재 능력을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일찍이 스스로 발휘고 그 대안을 준비 해 왔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탈근대 생명·평화의 화두를 던지고 구체적인 사회적 대안을 밝은신협, 한살림, 원주생협, 다양한 사회적 기업 등으로 제시해 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원주의 5대 근대문화유산을 크게 생명·평화의 융합형 문화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원주지역 문화 브랜드로도 이만한 가치개념이 없습니다. 큰 단락으로는 한세대를 내다보며 생명평화신문명의 태동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우선 원주생명평화문화관 같은 것이 있어서 5가지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단계적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성, 일관성, 지속성이 요구됩니다. 3년만에 해체해버린 경기도의 최대축제, 실학축전이 정치의 외풍으로 지속성을 유지 못하여 막대한 예산낭비를 경험한 사례도 있습니다.
민주(반유신독재운동), 생명(산업문명의 생명위기에 대응한 생명사상), 평화(자원전쟁과 패권주의의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 협동생활(생협과 도농공동체 순환사회), 오랜미래(민속문화운동 30년의 공동체문화운동)를 화두로 한 본격적인 원주문화 브랜드 만들기 거버넌스가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이 5대 개념이 대표되는 공통점은 생명위기의 산업문명에 대한 대안문명의 제시, 원주지역에서 최초로 태동하거나 주도적으로 생성한 문화유산, 근대와 탈근대의 이행기에 삼대에 걸친 현재진행형의 시민사회자원이라는 점입니다. 근대문명과 공존하면서 이행기에 대안문명을 생명평화의 가치로 준비해 온 시민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주는 창조도시의 밑그림을 30년 동안 이미 그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민운동의 자율성과 창조적 독립성을 존중하되 민주화 시대에 걸맞게 거버넌스형 민관 협력과 지원이 충분히 가능한 대형주제로 이미 40년전부터 원주는 생명평화창조도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용산에서 출발해서 용문까지가는 기차역사들을 보면서 내것이 아닌것처럼 비싼것이지만 싸구려처럼 보이는 역사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을 원주에서는 내것처럼 친밀함으로 바뀌는 기쁨을 맛보게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시네요. 온배움터 이번호 학당기사에 선생님 글 옮겨갑니다. 일본일정 건강하게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