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한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오늘은 1960년대 김봉한의 연구가 지니고 있었던 의미와
‘봉한학설’이 서둘러 폐기된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봉한학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봉한학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동의학에서는 경락을 인체의 생로병사를 주관하는 통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체에 질병이 생길 때
그 증상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이 경락이고,
질병 치료도 경락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동의학의 대표적인 치료법인 침과 뜸이 바로 이 경락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의학계에서는 해부학적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경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존재하지도 않은 경락을 통해 치료를 하는 동의학을 비과학적인 의학으로 평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침과 뜸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동의학에 대한 평가도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락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의학의 치료방법은 불확실한 것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락의 존재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했다고 김봉한이 발표한 것입니다.
그의 연구가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김봉한의 주장대로
인간의 몸속에 경락이 있고
그 경락을 통해 액체가 흘러 다니며 온몸에 갖가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서양의학계는 모든 책을 다시 써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서양의학계의 해부학적 지식으로는
인체에는 혈관계와 내분비계 밖에 없는데,
경락이라는 제3의 순환계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몸속에 새로운 조직이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김봉한이 발견했다고 하니
북한이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루어놓았다’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파격적인 이론이 나오자 서양의학계 그중에서도 주로 사회주의국가들에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김봉한팀의 연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쏘련과 동독 등에서 연구진을 북한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락의 실체를 놓고 김봉한측 경락연구자들과 마찰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쏘련 의학계는 김봉한팀이 사라진 이후인 1967년
“경락에 대한 실체발견을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숙청의 바람 속에서 쏘련 의학계의 주장을 반박할 학자는 북한 내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서양의학계 외에도 ‘봉한학설’은 국내의 동의학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서양의학자인 김봉한에게 ‘동의학 과학화 사업’을 빼앗긴 동의학자들은 김봉한을 시샘했고,
1964년 김봉한을 위한 '경락연구원'이 설치되자 반발은 극에 달했습니다.
동의학연구소는 11개의 연구실을 갖고 있는데 반해 경락연구원은 40개의 연구실을 갖고 있었고
그 위상도 상급기관인 의학과학원과 동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김봉한의 연구성과가 인정을 받을 때는 입을 열지 못하다가
‘봉한학설’이 논란에 휩싸이고 정치적 사건에 말려들자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이렇게 김봉한의 이론은
갑산파 숙청의 여파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의학계의 반발에 부딪쳐
제대로 검증도 받지 못한 채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봉한학설’이 의학계에 던진 파장만을 놓고 봤을 때
학문적 검증과정이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한학설’에 대한 검증은 김봉한이 사라진 이후에 다른 나라에서 진행됐습니다.
김봉한의 연구가 폐기된 직후
일본 등에서 이를 검증하거나 재확인하려는 연구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봉한학설에 대한 재확인 연구는 1990년대 대한민국 학자들 속에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본격적인 연구 성과물은 2000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소광섭 교수팀은 여러 나라를 돌며
김봉한팀의 연구자료를 수집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 실험용 쥐에서
김봉한의 논문에 나오는 ‘봉한관’ 즉 경락과 매우 흡사한 조직을 발견했습니다.
2004년경 서울 연세대학교의 김현원 교수팀도 토끼의 혈관 및 장기에서
봉한관으로 추정되는 조직을 촬영해 공개했습니다.
물론 반론도 많습니다.
이들이 발견했다는 것이 경락이 아닌 다른 조직이라는 것과
경락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실험을 통해 검증이 필요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봉한의 이론은 지금도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이 논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는 연구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40년 전의 이론이 이제서야 학문적 검증을 받고 있다는 점은 깊이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경락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서양의학계와
경락의 실체를 해부학적으로 입증할 생각을 못했던 동의학계,
이 높은 벽을 뚫고 ‘동의학 과학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김봉한,
그의 이론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증거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은 과학계의 커다란 손실이었습니다.
청년 :
류부열 선생님, 근데 경락이 있긴 있는 겁니까?
김봉한이가 아예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날조했다는 소문도 많이 돌았지 않습니까?
류부열 :
내 말하지 않았어.
내가 평양의대 시절에 김봉한이랑 대립한 것은 연구방법에 대해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라구.
경락의 존재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없었어.
어쨌든 당시만 해도 경락계통에서 만큼은 김봉한의 연구가 세계에서 제일 앞서 있었다고 봐야지.
청년 :
김봉한이한테 맞섰다가 정치범수용소까지 갔다 오셨는데 억울하지 않습니까?
류부열 :
나도 사람인데 그런 마음이야 왜 없겠나.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김봉한이를 숙청한 것은 과학부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손해가 없지.
첫댓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나 북한이나 위대한 인물들은 왜이리 차별을 당하고 제대로 피언나지 못하는 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회장님은 꼭 아름다운 재능을 꽃피우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대와 같이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