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허무는 불청객이 있다. 찾아오면 떨쳐 내기 힘든 유혹이다. 머물도록 허용하면 소멸의 힘이 작용한다. 바로 타성이다. 새로운 삶을 원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타성이라는 복병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에 울타리를 치는 순간 자신의 생활이 감금당한다.
익숙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찾아온다. 오랜기간 밤잠을 재대로 자지 못하고 공부하여 합격한 회사에 처음 출근하는 날 가슴 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목사가 되고 장로와 권사임직 받을때 나같은 자를 주의 종으로 불러, 공동체를 섬기라고 택해주심에 눈물을 흘릴만큼 감동을 하고, 어떻게 하겠노라고 굳센 다짐과 함께 활력 넘치는 시작을 한다. 시작점엔 누구나 겸손하고,결연함이 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뒤틀린다. 어느 순간 동공은 풀리고 초점은 희미해진다. 쥐었던 두 주먹은 슬며시 펴지고 얼굴에는 지루함이 묻어난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종적을 감춰 버린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너무 달콤하다. 즐기다 보면 덫인 줄 모른 채 걸려든다. 그렇게 생긴 고정관념은 새로움을 막는 교도소의 담장이요 창살이다. 한번 사로잡히면 새로움에 대한 창의성과 거리가 멀어진다.
틀에 갇히면 생각에 곰팡이가 핀다. 타성은 자기 삶에 찾아온 위험을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 남들이 보면 아찔하기 그지없는데 당사자는 그게 맞는거라고 생각을 한다,타성은 마법과도 같다.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열정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진다. 그때부터 옛날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다니며. 입으론 온유,겸손 운운하지만 대접받기를 당연시하고, 짧은 소견으로 감놔라 배놔라 간섭하기 시작한다.
타성의 전조증상인 아는 체,배운 체,가진 척,잘난 척하는 체병과 척병에 걸려들면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떨어지고 그 신앙과 삶은 공회전을 거듭한다. 더이상 가슴은 뛰지 않는다. 태양이 아무리 뜨고 져도 그날이 그날이다. 진부해진 인생은 길게 늘어져 있을 뿐 특별한 것은 그 삶속에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타성에 젖으면 퇴보한다. 망하는 줄 모르고 망한다. 타성에 젖어있다가 변화나 개혁을 만나면 당황하면서 순응하지 못하고 대적모드로 바뀐다. 타성은 무의식적 반복이다. 무기력도 학습이 된다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다. 오래된 타성일수록 끊어지기 힘든 밧줄처럼 강력하다. 타성은 아무리 죽여도 잡초처럼 되살아난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매너리즘의 늪은 한때 전도유망한 기대주라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한때 반짝이던 수많은 별이 매너리즘의 덫에 걸려 역사 속에 명멸했다. 자신의 직분이 무엇이 라고 말하기전에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라, 자녀 구원은 커녕 가정예배조차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의 영혼을 터치할수 있을까? 자기자신을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서 아웃시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겸손히 배우기에 집중하여 처음 신앙을 회복하기 바란다.
일상의 소리 없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정기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지루한 삶의 반복을 멈추게 해줄 조언이나 변화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이 아닌 무심으로 성경말씀을 대하고 남의 글도 읽으면서 지혜와 안목도 키워야 하고 남의 설교도 들으면서 은혜받기에 힘써야 한다.변화없는 지루한 일상에 저항해야 한다. 관성의 힘과 거칠게 싸워야 한다. 앞으로 치고 나가려면 변속 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아야 한다. 고집스런 직구보다 변화구를 시도해야 한다.
언제나 변화의 지점은 위험해 보인다. 벼랑 끝에서 머뭇거리면 위험하다. 미적거리는 자신을 냉혹하게 내몰아쳐 믿음의 날개를 펴야 한다.멈춘 시간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그래서 사도요한이 "너의 처음사랑을 잃어 버렸으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계2:4)
내가 금언처럼 마음에 새기는 말중에 "잔잔한 바다는 능숙한 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말이다,항구에서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으면 안전하겠지만 거센 파도를 향해 돛을 올리고 출항을 해야 능숙한 어부가 되어 만선의 기쁨을 얻게 된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때 내일도 역사해주실 주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이 뛰어야 살아 있는 신앙이다.안주하고 싶어하는 게으름, 퇴화를 향한 타성의 힘과 싸워야 한다. 타성을 거부하면 퇴화하던 삶에 빛이 임한다. 색다른 변화에 대한 적응을 할려면 지금 당장 타성(매너리즘)을 아웃시켜야 한다.
첫댓글 댓글을 남기지 않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외출자체를 싫어 해서 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무슨 뱡법이 있을까요? 나사렛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아멘!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타성에 젖어 내일을 잃어 버리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