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벨트는 연방대법원과의 5년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나 [124] -4
언론의 융단폭격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루즈벨트의 편이었습니다.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평균연령이 70세였고, 가장 나이많은 대법관이 80살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뉴딜 경제개혁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네마리 말대가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하늘을 찔렀죠.
늙고 느려터진 야구선수 대법관 9명들이 젊고 팔팔한 새 대법관 6명의 스카우트 소식을 듣고 당황한다는 만평.
‘연방대법원 포위작전’(Corut packing)이라라고 불린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무서운 점은 루즈벨트는 자기 맘대로 할수 있다는 힘이 있다는 점이었죠. 루즈벨트의 민주당이 의회 의석 3/4의 절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법개혁안 통과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루즈벨트는 법안 제안 한달만인 3월 9일 그 유명한 ‘노변담화’를 통해 라디오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10일 연방상원 법사위에서 이 법안 심사에 돌입하면서 ‘사법개혁안은 언제든 통과될수 있다’며 서서히 대법원을 압박했습니다.
루즈벨트는 라디오방송 '노변담화'를 통해 언론을 통하지 않고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루즈벨트가 라디오방송으로 압박작전을 벌인지 3주도 안돼 마침내 연방대법원이 항복합니다. 1937년 3월 29일 월요일, 연방대법원은 웨스트코스트 호텔 대 패리쉬(West Coast Hotel Co. v. Parrish) 등 3건의 뉴딜 법안에 합헌 판결을 내립니다. 연방대법원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루즈벨트의 손을 들어준 놀라운 판결이었죠. 역사가들은 뉴딜 법안 3건이 합헌 판결을 맏은 이 날을 2년전의 ‘블랙 먼데이’에 빗대 ‘화이트 먼데이’라고 부릅니다
.
뉴딜법안 합헌 판결로 마침내 70살먹은 연방대법원이 민중과 함께 손잡고 춤춘다는 내용의 만평.
사실 합헌판결을 받은 사건 3건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규제, 노조결성 등을 규정하는 법으로, 이전에 5:4로 위헌판결을 때려맞은 수많은 뉴딜 법안들과 다를게 없었습니다. 합헌 판결이 나온 이유는 순전히 중도보수파 대법관 1명이 마음을 바꿔 뉴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었죠. 역사가들은 “대법관이 늘어날 경우 기존 9명 대법관들의 밥그릇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뉴딜 법안에 계속해서 반대표를 던지다가 막판 찬성표를 던진 오웬 로버츠 대법관
물론 사법개혁안 자체는 언론의 융단폭격을 받고 좌초했습니다. 야당은 이 법안을 무려 158일간 심사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부결시켜 버립니다. 물론 언론은 ‘루즈벨트의 독재 계획 좌절’이라며 대서특필하죠.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독재' 트로이 목마가 헌법에 가로막혔다는 내용의 만평.
그러나 루즈벨트는 더 이상 사법개혁안이 필요없었습니다. 그는 전투(사법개혁안)에는 졌지만 전쟁(연방대법원 장악)에 승리했기 때문이었죠.
연방대법원의 저항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연방대법원은 1937년 3월 이후 두번다시 뉴딜 법안에 위헌을 때리는 일이 없었고, 루즈벨트의 ‘2차 뉴딜’은 탄력을 받게 됩니다.
또 판결 몇 달 후 한 대법관이 은퇴, 한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루즈벨트는 뉴딜을 지지하는 젊은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루즈벨트는 임기중 대법관 9명중 7명을 지명하며 연방대법원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그 후는 여러분이 역사책에서 배우신 그대로입니다. 루즈벨트와 연방대법관의 전쟁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겨준다고 봅니다.
-사법기득권은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대공황)에도 절대 양보 안한다.
-사법기득권은 자기들의 밥그릇(월급, 연금)을 잃을 위기에 처해야만 움직인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단숨에 성공한 적이 없다. 1차 뉴딜 법안이 실패하고 2차 뉴딜법안이 합헌 판결을 받는데 5년이 걸렸다.
-루즈벨트 1기 정부는 과반의석을 갖고도 연방대법원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
-미국민들은 사법부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4년후 루즈벨트에게 60% 득표로 재선(미국 역사상 2번째로 높은 득표율)와 의회 3/4 절대과반을 밀어주었다.
-루즈벨트 2기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한 수단은 장악한 타협이 아니라, 높은 지지율, 절대다수 의석, 그리고 사법부의 밥그릇을 정조준한 압박이었다.
-루즈벨트는 뉴딜의 성공으로 독일이나 러시아같은 파시즘/사회주의 집권을 저지했다.
-루즈벨트의 지도하에 미국은 2차대전 참전과 승리로 초강대국 도약에 성공했다.
-루즈벨트는 민주당 20년 장기집권 기틀을 마련(1936년-1956년)했으며,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저는 현 문재인 정부가 루즈벨트의 교훈을 모를리가 없다고 봅니다. 이 사건은 미국 헌법,행정법, 정치학에 있어서 반드시 배우게 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추미애 법무장관이 10년전 한양대 교수 시절에 ‘연방대법원 포위 작전’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법원 포위 계획-미국 루즈벨트 시대를 통하여 본 한국의 자화상-(추미애 초빙교수 특별기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의심하지 말고, 밀어주며, 기다리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하이아/고물상주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