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 (AH 새비지-랜도어라는 외국인이 지은 책)에 보면 격투기라는 제목하에 “조선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중의 하나는 일대일 격투기이다. 자주 다른 도시의, 혹은 같은 도시의 다른 지역의 패거리들간에 현상금을 건 격투를 보면서 흥겹게 즐긴다. 싸움꾼들은 대체로 주먹을 이용해서 싸우나 프랑스처럼 무릎과 발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어 있다. 새해 정월에 벌어지는 모든 싸움에 대해서는 어떠한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신속하게 대충 해결 된다”. 라고 쓰고 있다.
[참고]AH 새비지-랜도어의 '고요한아침의 나라조선'은 여행가, 탐험가, 화가로 알려진 저자가 1890년 두번째 한국 여행 후 그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제물포와 서울의 풍물, 한국인의 옷차림, 여성과 어린이의 놀이, 시골 풍경, 결혼과 풍습 등 19세기 말 한반도 모습을 독특힌 필치의 그림과 함께 기록으로 남겼다.
이 외국인의 글을 보면 대체로 주먹을 이용해서 싸운다는 표현이 있다. 이런 점은 한국의 무술은 손보다는 발을 많이 쓰는 무술이다라고 생각하는 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의 고유 맨손무술인 ‘수박’ 계승자인 송창열선생의 자제인 송준호씨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태권도가 경기화가 되면서 주먹질을 금하고 발기술위주로 승부를 내는 점이 사람들의 한국 무술의 형태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기술 위주의 택견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진 것처럼 되었습니다. 게다가 서양의 복싱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손기술 위주의 격투는 서양 문화이며 발기술 위주의 격투는 우리 것이라는 등식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봅니다.”
손기술 보다는 발기술은 보여지는 화려함이나 그 기술의 다양성으로 인해 보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그 무술을 보다 효과적으로 알리는데 요긴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발기술은 손기술보다 배우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요즘처럼 격투를 배우거나 보급하는데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고 보기에 어려운 발기술 보다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손기술이나 몸을 쓰는 기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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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의 경우 요즘 시각으로 볼 때 과격하게 보일 수 있으나 옛사람들의 준열한 격투기를 통하여 선린과 우호를 두터이 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으며 이런 박투의 경쟁이 오히려 화합과 단결로 승화된 것이다.
같은 시각으로 일제 시대까지 행해졌던 석전(돌싸움)을 생각해보면 수 천명이 양편으로 나뉘어 돌을 던져서 패싸움을 했고 사상자가 여럿이 나왔던 그 당시에는 오락적인 유희였다.
격투기가 폭력적이고 저속한 문화로 보는 요즘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서로의 밥그릇 싸움을 놓고 갈등을 빚는 요즘 무술단체들의 행태에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퇴색하는 기분이 든다.
수박 택견, 씨름 등은 한국인의 정서와 소질에 적합한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삼자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성장의 환경과 토양이 동일한 만큼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재영 [webmaster@worldbest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