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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孔庙)NO.2 성문 형태를 하고 있는 성시문을 지나면 궁궐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영역을 구분하는 의미를 갖는 작은 수로인 벽수(璧水)가 흐르고 궁궐 정전 정문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홍도문(弘道门)'이 나타난다. ▲ 홍도문(弘道门) '홍도문'을 지나면 북송대 공묘 출입문이었던 네번째 출입문인 '대중문'이 나오고 대중문(大中门)을 들어서면 삼도(三道)는 계속 이어진다. ▲ 대중문(大中门)
대중문을 지나면 정면에 5번째 출입문인 ▲ '동문문(同文门, Tongwen Gate)'이 나타난다. 동문문은 송대에 처음 세워졌으며 후대 왕조에 계속 중건되어 왔다. 청나라 강희제 때에는 "삼동문(參同门)"이라 불렀으며, 옹정제때 황제의 명령으로 동문문(同文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동문문 서쪽 측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정원에는 명나라대에 세워진 ▲ 홍치비(弘治碑)가 있다. 홍치비는 명나라 효종대(홍치 17년, 1504)에 세워졌다. 원래 비석을 보호하는 비정(碑亭)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비문은 해서체로 적혀 있다.
▲ 영락비(永乐碑) 홍치비 뒷편에는 명나라 영락제때(영락 15년, 1417)에 세워진 영락비가 모셔진 영락비정이 있다. 이 비정(碑亭)은 홍치2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 또한 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원래는 목조건축물이었던 것을 유리기와를 얹은 벽돌로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영락비(永乐碑) 거북받침돌은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 명대 후기 또는 청대와는 달리 우리나라처럼 화강석을 사용하고 있다.
▲ 명(明)나라 제8대 황제 성화제(成化帝)비석 '대중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갈 경우 '동문문' 에 이르고 그 앞 오른쪽에 '성화비'가 보인다. 주견심(朱見深)! 1447년에 명나라의 황제로 즉위한 성화제(成化帝)의 이름이다. 1487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면 조선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성화제는 명나라의 8대 황제였다. '성화비' 뒷쪽으로 '홍무비정'이 있고 그안에 명(明) 태조 ▲ '홍무제(洪武)'의 비석이 있다 동문문을 지나면 역대 황제들이 하사한 그림, 글, 서적 등을 보관하던 장소인 ▲ 규문각(奎文阁)을 볼 수 있다. 규문각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정조가 학술기관으로 설립했던 규장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같은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당인 대성전 앞쪽에 서적을 보관하던 규문각이 배치된 것은 후대 국자감, 성균관, 향교 등에서 볼 수 있는 강학공간과 비슷한 공간배치라 할 수 있다. 규문각은 앞면 7칸의 3층 목조건축물로 북송 진종때인 1018년에 처음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며, 후대에 여러차례 중건이 있었지만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로 중국내에서 손꼽히는 건물이다. 규문각(奎文阁)은 북송 진종대(천희 2년, 1018)에 처음 세워졌다. 장서루(藏书楼)로 서책을 보관하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색 유리기와로 지붕의 3층(외형만) 목조 건축물로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벽돌을 많이 사용한 명.청대의 건축물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는 목조건축물이다.
공묘13비정(孔庙十三碑亭) 공묘13비정(孔庙十三碑亭) ▼▲ 공묘 13비정(孔庙十三碑亭)앞의 용백(龙柏)나무십삼비정(十三碑亭)취푸(曲阜) 공묘(孔廟)의 강학공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역대 황제들이 하사한 그림, 글, 서적 등을 보관하던 장소인 규문각(奎文阁)을 지나면, 중국 시안(西安)의 비림과 함께 역사적 가치고 높은 비석들인 십삼비정(十三碑亭)이 있는 정원으로 들어선다. 십삼비정(十三碑亭)은 중국 역대 황제들이 공묘에 세웠던 13개의 비석이 있는 정자를 말한다. 13개의 비정(碑亭)은 금대에 세운 것 2기, 원대의 것 2기, 청대의 것 8기가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금나라 6대 장종때인 명창2년(1191)에 세워졌으며, 공묘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공묘 대성전 앞에 세워진 십삼비정은 모두 이민족 정권이었던 금(金), 원(元), 청(淸)대 황제들이 세웠으며, 한족 정권이었던 명대 비석은 규문각 앞 정원에 3대 태종(영락제)와 9대 효종이 세운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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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석이 많은 것을 보니 기록과 역사를 중시하는 나라이군요. 성경에도 기억하라 기억하라
성경에도 역사를 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그렇기에 역사는 중요하다. 성경에세도 역사를 중하게 여겨, 기억하라 기억하라고 한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여호수아는 4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무사히 건넌 직후, 여리고 동쪽 길갈에 진을 칠 때, 여호수아는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가지고 기념비를 세우게 했지요. 후일에 자손들이 “이 돌들이 무슨 뜻인가요?”하고 묻거든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다”는 것을 알게 하라는 것이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