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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의 영적 심리적 해석
교회의 경험과 성서 전통의 맥락에서 꿈을 이해하는데도 심리학은 도움을 준다. 물론 지나치게 심리적인 차원에서만 꿈을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 보다는 심리학의 이론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상징과 이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들이 꿈에 관해 연구한 책들이 분명 도움이 된다.
꿈을 영적으로 이해하려면 우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꿈의 언어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반복하여 질문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지난 밤 꾼 꿈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그분 앞에서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생각하며 그분께서 내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요셉이 파라오에게 말했듯이, 꿈을 해석하는 것은 분명 하느님께 속한 일이다. 깊은 기도 안에서 자신이 꾼 꿈을 숙고해보면 하느님께서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지금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융 심리학은 주관적 차원과 객관적 차원으로 꿈 해석을 구별한다. 꿈을 이해하는 기본 원리는 우선 객관적 차원에서 그것을 해석해 보는 것이다. 먼저 그 꿈이 내 주위의 사람들이나 상황, 일이나 직업 등에 관해서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객관적 차원에서 꿈은 내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기도 하고, 중요한 외적 문제들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내 집 사다리에 문제가 있다거나 대문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꿈이 가르쳐 주는 경우가 있다. 또한 꿈은 그날 내가 경험한 일 가운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고 깨우쳐주기도 한다. 꿈이 가진 보상기능은 우리가 의식 차원에서 사물을 대하는 관점을 보충해 준다. 의식은 우리가 보고자 원하는 것에 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의식이 보여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의식은 우리 의식이 이해하지 못한 것까지 담고 있다. 하느님은 나를 진리로 이끌기 위해 꿈에서 무의식을 통해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을 알게 하신다.
꿈을 이해하는 다음 방법은 주관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꿈에 나타난 모든 사람과 사물들은 나 자신의 부분들이고 나의 상태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꿈은 내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가 많다. 꿈에 나타난 엉뚱한 이미지들이 어떤 합리적인 설명보다 더 적절하게 나의 상태를 묘사할 때가 많다. 물론 꿈을 지나치게 임의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지나온 삶의 맥락과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꿈 상징 사전을 참고하여 공식에 대입하듯 단순하게 해석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그것보다는 그 이미지와 함께 내 속에서 떠오르는 연상들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상징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그 상징들을 구체적인 자신의 상황과 연결시키는 주관적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융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절대로 들어맞는 완벽한 꿈 해석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개인이 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고 꿈은 그것과의 상관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저런 꿈과 그 해석
자동차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운전하고는 싶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운전대 잡는 것을 피했다면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음을 뜻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내 안의 어떤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건 아닌지? 차가 언덕을 올라가는 중에 액셀러레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앞으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지금 난 앞에 놓인 과제를 감당할 용기가 없는가?” 어쩌면 나는 연료를 충분히 채우지 않은 채 문제의 높은 언덕을 향해 떠났는지도 모른다.
아래로 떨어지는 꿈도 흔하다. 그 꿈은 다음날 내가 계단이나 지붕에서 굴러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면, 지금 버팀대를 놓치고 발을 헛디뎌가며 너무 높이 올라가고 있지나 않은지 자신에게 묻자. 꿈에서 떨어지는 것은 영혼의 내적 추락을 경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절제가 필요하다는, 내 삶의 어딘가에 지나침이 없는지 보라는, 조심스레 삶의 자리를 살피라는 충고이다. 한마디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행보에 주의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떨어지는 꿈이 추락하거나 다치는 것을 미리 막지는 못해도 우리가 하느님 안에 피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할 수 있다.
꿈에 무엇인가에 시달린다면, 이는 자신 안의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꿈에 날 괴롭히는 것은 내 본성의 그림자, 어두운 면일 수 있다. 그것은 내키지 않은 쪽에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성가시고 부담스런 인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내가 내 자신과 도무지 어울리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적대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내 안에 억압된 것이 있음을 상징하는 어떤 동물의 형상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을 피하지 말고 깊이 숙고하라. 어쩌면 꿈에서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나 동물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안아줄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꿈에 올라온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억압하고 외면해온 내면의 그림자를 통합하는 일이다. 그림자는 머리로 이해한다 해서 우리 안에 통합되지 않는다. 그것을 나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화해해야만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꿈을 깊이 생각하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억압되었던 그림자가 좀 더 의식되고 서서히 나의 것이 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전쟁터에 있거나 어디에 갇히는 꿈도 역시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꿈은 내가 자신과 투쟁하고 있음을, 내면의 적과 싸우고 있음을, 어쩌면 내 자신 안에 포로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흔히 내적 혼란을 의미한다. 내 안의 파괴적인 힘 때문에 스스로의 포로가 되어 묶여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꿈을 깊이 생각하면 하느님은 내가 무심히 지나친 것들에 대해 알려주신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기도할 때 안에서 올라오는 직관들을 내 자신의 언어로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는 직관이나 감정들을 덮어버릴 수도 억압할 수도 없다.
꿈은 우리가 외면하고 억압하는 삶의 부정적인 양상들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꿈은 때때로 내가 생각보다는 더 많이 성장하고 있음을, 내 자신과 더 깊이 화해하고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거나 그곳으로 운전하는 꿈은 이미 상당히 진보했음을, 어쩌면 가야 할 그곳에 벌써 도달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꿈에서 집은 흔히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꿈에 전에는 본적이 없는 새로운 방을 자신의 집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꿈은 내면의 여정에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내 인생의 새로운 영역으로 초대되고 있는지 모른다.
꿈에 도둑이 침입하여 내 집을 부수었다면, 그는 우리 내면 깊은데서 올라오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이 존재는 우리 의식세계로 들어와 그 질서와 소유물들을 위협하려 든다. 이 도둑은 가면을 쓴 나의 본능과 욕망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수거나 침입하는 꿈은 그것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제대로 문을 열지 않았기에 들어와야 할 선한 힘들이 내 집 문을 부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도둑을 안으로 모셔 친절하게 대할 일이다. 하지만 내 영혼의 집이 속수무책으로 열려있어서 내 집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자가 침입했을 수도 있다. 문이 모조리 열려 있어서 해로운 생각과 움직임들이 수시로 내 속에 들락거리고 있다면, 나는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나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고 하느님께 더 많은 공간을 드려야 한다. 내 집을 당신으로 채우신 하느님께서 나를 위협하는 낯선 힘으로부터 내 영혼의 문을 안전하게 닫아 주실 것이다.
뭔가 해야 하는데 늦어버렸다든지, 가야 할 곳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꿈도 자주 꾼다. 그렇다면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느라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라. 그런 꿈은 내가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쓸데없는 과거의 짐짝들을 너무 많이 현재로 옮겨와 무겁게 지고 가느라고 말이다.
여행 가방을 잃어버리는 꿈은 내적 여정에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알려준다. 지금 내 삶에 빠진 것은 무엇인가? 침묵이나 기도, 혹은 하느님의 은총일 수 있다. 또는 내가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내 안의 어떤 능력이나 인품일수도 있다. 꿈에 돈을 잃어버렸다면 인생길을 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자신의 중요한 가치나 태도를 잃어버리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차를 놓치거나 잘못 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꿈들은 대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내 삶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놓치지는 않았는가? 나도 모르게 길을 잘못 들어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정직하게 성찰해보면 그 꿈이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꿈은 우리 자신의 진실한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열쇠이다.
인생여정은 곧잘 여행으로 비유된다. 꿈에서 우린 자주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본다. 와 본적이 없는 낯선 길을 가기도 하고, 처음엔 익숙하다가 갑자기 모르는 길에 접어들기도 한다. 목적지를 찾아 절망적인 마음으로 낯선 도시나 집 앞을 헤매기도 하고 한 지점에 붙박힌 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쩔쩔매는 꿈을 꿀 때도 있다. 이런 꿈들은 모두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이미지들을 놓고 자신을 돌아보며 이제 어떤 결정이 내게 필요한지 하느님께 여쭈어볼 수 있겠다. 막다른 길을 만나는 꿈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막힌 듯 보이는 좁은 길의 저 끝에서 새로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교차로에 선 자신을 보기도 하는데, 가야할 방향을 잃은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알 수 없는 글씨가 쓰인 표지판이 꿈속에서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때로 동물이나 작은 아이, 천사가 우리를 인도하기도 한다. 그런 꿈을 꾸었다면,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학생 때처럼 시험을 치는 꿈도 드물지 않다. 그런 꿈은 통과해야 할 어떤 테스트 앞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학교에서 시간 내에 문제를 푸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꿈은 내가 풀어야 할 진정한 과제가 무엇인지 또 이 테스트에 통과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많은 동물이 꿈에 나타난다. 동물들은 우리 본능과 욕구를 말한다. 어떤 동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 꿈을 꾸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 그 동물과 함께 올라오는 또 다른 연상이나 기억들이 꿈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우선 꿈에 나타난 동물의 본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현재 영성생활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데 도움이 된다. 동물들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기에 단순한 분석에 그치지 말고 이 동물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다보면 통합되기를 기다리는 내면의 억압된 힘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꿈을 대하면 내적인 변화로 이끄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여정을 경험하게 되고 또 그런 중에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들을 알아차리게도 된다. 옛 사람들은 꿈에 하느님께서 동물들을 보내시고, 그 동물들은 친절한 동반자로 우리가 위험한 상황을 알아채고 피해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고 믿었다.
보통으로 말(馬)은 길들여진 우리의 인간적인 충동을 대변하고 개는 육체적 욕망들을 상징한다. 맹수의 왕인 사자는 우리가 새롭고 확고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정신 에너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공격성이 내 속에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호랑이는 우리 충동의 독립성을 상징한다. 꿈에 쥐가 보이면 감추어진 슬픔이나 심각한 걱정거리가 우리를 갉아먹고 있지나 않은지 물어볼 수 있겠다. 영적 존재를 상징하는 새들은 우리를 움직이는 위로부터 오는 생각들을 나타낸다. 프로이드는 뱀을 성적인 의미로만 이해했는데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꿈에서 뱀은 분명 중요한 상징이다. 심리학적으로 뱀은 근원적인 힘을 가진 강력한 정신 에너지를 상징하며, 영혼이 치유되는 과정이나 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꿈에서 뱀을 만난 사람은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엄청난 힘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 힘은 큰 위험이나 치유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또 뱀은 내면의 억압된 성(性), 직감력, 능란함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죽음과 관련된 꿈을 두려워한다. 꿈에 본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속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오히려 죽음에 관한 꿈들은 우리 영혼 안의 무엇인가가 소멸하면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있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가 나오는 꿈은 대개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력이 낡고 굳어버린 자아를 뚫고 나오려 하는지 모른다. 또 꿈속에 나타난 어린이는 이제 우리가 자신 안의 참된 중심, 참 자기와 접촉하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임신하는 꿈은 새로운 무엇인가가 시작되고 있다거나, 가장 깊은데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든지,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것이라는 좋은 암시일 수 있다. 비슷한 축복의 메시지는 결혼식 꿈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혼인은 서로 반대되는 것의 신성한 결합으로 융 심리학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통합을 상징한다. 하느님은 우리 안의 반대되는 것들을 하나로 모으신다. 우리는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으로 우리 안의 그 무엇도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제외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생명의 충만한 안에서 서로를 나눌 것이고 모든 것이 생명을 노래한다. 결혼식이나 아이들이 나오는 꿈은 내적 기쁨이 담겨있다. 우리는 이런 꿈을 꾸고 나서 하느님과의 일치, 자기실현의 여정에서 진보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희망에 찬 새 사람으로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