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하루가 또 간다.
낮에 대학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막걸리 한 잔을 했더니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려 혼이 났다. 점심 먹으면서 평소 매우 씩씩하던 친구가 큰 병에 걸려 모임에 못 나온것을 두고 친구들이 걱정을 해 쌓고 했는데 특히 한 친구는 그 소식을 처음 듣고 갑자기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통에 ' 야 이 사람아 그만 마셔 대낮부터 왜 이러나 ' 하고 말리기도 했다.
우리 나이에 큰 병에 걸리면 참 큰일이다 싶은 게 뚜렷한 대처방안이 어려운게 사실 아닌가 ? 예방조치로 정기검진 제때 받고 부지런히 운동 하고 술 담배 줄이고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방법밖에 더 있는가 ?
집에 와서 침대에서 두어시간 낮잠을 자고 4시반쯤 배낭에 물통 세개를 넣고 뒷산으로 간다. 길다란 목조계단을 올라서는데 계단옆 먼지 터는 기계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쳐다보니 아내가 먼지를 털고 있다. 내가 낮잠 자는 동안 뒷산에 왔던 모양이다. 바깥에서 우연히 가족을 만난다는 게 참 반가운 일이다. 그래도 별로 반가운 체 하지않고 ' 당신 어느 코스로 갔다 오요 ?' 하고 묻는다. 아내도 ' 당신은 어느쪽으로 갈려고 해요 ?' 해서 효자동상 있는데까지 갔다 올거요 하고 헤어졌다. 가족이 뭔지 아웅다웅 다투다가도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속으로 무척 반가운 생각이 솟아오르니.
해가 넘어가며 솔바람이 산들산들 부니 더위가 한 풀 꺾여 기분이 상쾌하다. 숲속문고에서 며칠전 가져가서 읽은 책을 다시 꽂아놓고 나의 책장에서 가져 온 문학잡지 몇권도 함께 꽂아놓는다. 옆 벤치에 앉아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란 책을 읽어본다. 파스칼의 말대로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휴식 할 수 없다는것을 아는데서 온다 ' 는 말이 수긍이 간다.
가만히 책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산모기 한 마리가 나의 팔을 떼꿍 하고 물고 달아난다. 숲속에 경사가 났나 초상이 났나 까마귀떼들이 까악까악 울어대니 귀가 멍멍하다. 저 너머에는 뻐구기들의 뻐국뻐국 하는 은은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해가 서산너머로 뉘엇뉘엇 넘어간다. 아침마다 햇살을 맞이하고 저녁마다 석양을 맞이하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릿느릿 오늘 하루가 또 간다.
2019.6.1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