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죽음을 생각해 본다.
나는 요즈음 새벽에 일찍 일어날 때가 많다. 나이가 70을 넘어서면서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 것인지 깊은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그럴 때가 많다. 오늘도 낮에 사촌동생 딸내미가 경북 포항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포항으로 내려가야 하는데도 새벽 4시경에 눈이 뜨여 다시 잠이 오지않아 책을 보고 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서 어두운 마루를 왔다갔다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둠속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어느 작가는 " 우리의 삶이란 아득한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놀이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욕망이란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는 소꿉놀이인지도 모른다." 고 이야기 하는데 새벽녘 어둠속에서 마루를 거닐고 창밖을 바라보면 인생이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하며 은연중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벽이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 서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으며 그래서 새벽에는 죽음에 대하여 가장 진지하게 생각 해 보는 시간인것 같다.
친구들은 당신은 왜 기분 나쁘게 가끔 죽음 이야기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 우리 나이가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나에겐 두가지 걱정이 생길것 같다. 남이 들으면 허허 하고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첫째는 손자녀석이 착하고 참한 색시를 데리고 와서 장가 가는 걸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꿈도 야무진 생각을 해 본다. 어릴 때 할머니 보고 할머니 나 장가가서 할머니 모시고 살거야 하고 할머니에게 매달리던 생각이 떠 오른다. 녀석이 지금 여덟살이니 20년후에 결혼 한다면 내 나이 90이 넘어서는데 하긴 요즘 90 넘는 게 드문 일도 아니지만 과연 그때까지 치매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것인가 하는 걱정이며 두째는 내가 애지중지 정성을 다 하여 자식처럼 기르는 저 베란다의 꽃과 나무들을 내가 죽고 나면 누가 가꾸어 줄 것인가 하는 어리석은 걱정인데 누가 들으면 유치원생같은 우습고도 유치한 걱정을 다 하고 있구나 할지 모르겠다.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어리석고도 이기적인 동물이 바로 나같은 인간이 아니겠는가.
2019.7.13 (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