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묵상.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매미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들판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산빛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초가을의 냄새가 은은히 풍겨온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꼭 정신적 몸살을 앓는데 올해도 역시 몸이 근질근질하고 머리속에 바람이 난다. 집에 가만히 있지못하고 어딘가로 발길을 돌리고 싶기도 하고 휑하니 어디로 떠나고 싶기도 하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
이번 추석에는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경기도 양평에 계시는 외삼촌을 찾아볼까 한다. 젊을 때 험한 직장에서 근무를 해서 저 외삼촌이 오래 못 살것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람 생명이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생각이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런지 몰라도 연세가 90인데 오히려 연세가 들어갈수록 더 건강하다고 한다. 오히려 나보다 몇 살 위였던 외숙모가 일찍 50대에 돌아가시고 외삼촌은 아들집에서 벌써 몇십년을 살고 계시니 인생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년전에 한번 가 뵈온 적이 있는데 자꾸 미루다 이번에는 아들을 데리고 가서 꼭 뵙고 와야할 것 같다. 아니면 갑자기 부고가 날아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큰 외삼촌 아들인 외사촌동생이 애 결혼식을 부산서 9월21일에 한다고 하는데 거기 참석한 후에 부산 삼촌과 함께 창원에 있는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산소를 찾아볼까 한다. 나의 할머니는 화장을 하였으므로 묘소가 없다. 명색이 장손인 내가 그 산소를 찾아 본 지가 7,8년은 된 것 같다. 여기도 아들과 함께 갈까싶은데 전번주 부모님 산소를 찾았을 때 아들 이야기가 매일 집에서 회사만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왔다갔다 하니 갑갑해 죽겠다는 얘기를 했으니까 바람도 쐬울겸 함께 갈까싶다.
또 겸사겸사 해서 내려간 김에 김해친구를 연락해서 시간이 맞으면 김해 가야유적지도 가 보고 산에도 한 번 올랐다 오고 싶다. 마음이 따뜻한 친구와 동행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가을이 오고 추석이 다가오니 왜 이런 생각이 들까 ? 가을병이 도져서 그런가 ? 나이가 들어서 흙에 가까이 가고 있으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가 ? 갑자기 아일란드의 세계적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생각이 난다.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
스콧 니어링은 죽음이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경험이라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글쎄 그런지 어떤지 아직은 확실한 감이 오지않는다.
올 가을부터 나는 한 가지 일을 더 할려고 한다. 요즘 동네 문화센타에서 연필 스케치 즉 소묘를 배우고 있는데 제법 재미가 붙는다. 우선은 그림을 보고 그대로 그리는 것인데 그려놓고 보면 제법 비슷한 그림이 되니 은근한 기쁨이 생기기도 한다.그리고 더불어 수채화도 배울려고 한다. 초등학교때 그림 그린다고 좇아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다시 어릴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올 가을에는 좋은 그림을 그려 하나쯤은 액자에 넣어 내 서재방에 걸어놓고 오며가며 보아야겠다는 어린애같은 꿈을 꿔 보기도 한다. 요즘은 내가 마치 화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우쭐한 기분에 젖기도 하는데 그림이야 어찌 되든 이런 생각과 행위 자체가 즐거운 게 이것도 하나의 조그만 행복 아니겠는가 ?
행복이란 결코 큰 데 있지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가을에는 읽고 싶은 책 부지런히 읽고 그림도 조금씩 그려보고 글도 가끔 쓰고 해서 나름대로 보람있는 가을을 보내야겠다는 소박한 꿈을 꾼다.
2019.8.30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