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타파' 를 뚫고
오랜만에 부산 나들이를 한다고 마음이 설레이는데 부산에는 일기예보상 오늘 내일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비 바람이 거세다고 하니 창원의 선대묘소 참배나 김해친구와의 등산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 해운대에서 외사촌 동생의 아들내미 결혼식에 모처럼 참석할려고 서울의 KTX로 아침7시 5분에 떠서 10시 07분에 부산에 내리니 오후1시 예식시간까지 여유시간이 많다. 해운데 바닷가를 좀 거닐면서 바닷냄새를 좀 맡아보고 참석할까싶다.
그런데 조그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예식장에 갔다가 산소에도 가고 등산도 할려고 하니 신발을 등산화를 신고 예식장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등산화를 배낭속에 넣어가기도 어렵고 궁리를 하다가 오늘 부산지방에 태풍 '타파'로 비 바람이 심하다고 하니 성묘나 등산을 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많으니 간편한 구두를 신고 가기로 결정.
예식장에서 오랜만에 외갓쪽 누나들과 동생들을 보니 얼굴도 잘 모르겠고 나를 보고도 대부분 잘 몰라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한다. 그런데 83살 누나와 80살 누나를 보니 거의 옛날과 변함이 없이 그 미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나하고 동갑인 이종 여동생을 잘 못 알아보는 결례를 범하기도 . 예식을 마치고 나는 먼저 빠져나와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우산을 받쳐들고 쭉 걸었다. 비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오랜만에 보는 바다는 많은 감동을 자아낸다.
백사장을 거닐다 비 바람에 도무지 견디지 못해 하는 수 없이 근처 파리 바켓트에서 과자를 좀 사서 들고 가까이에 있는 삼촌댁으로 들어갔다. ZENITH라는 초고층 빌딩 건물인데 아파트로서는 좀 갑갑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오륙도가 바로 보여 가슴이 탁 트이기도 한다. 이러한 초고층의 마천루들이 모래위에 쭉 들어서 있는데 만일 여기에 지진이라도 발생, 해일이라도 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시답잖은 걱정을 해 보기도.
아침에 일어나니 태풍은 더욱 거세져서 창원 산소에 가는 것은 아예 포기를 하고 일단 김해 친구집으로 가기로 맘 먹고 나서는데 사람이 날아갈 것 같은 비 바람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몇차례 시도끝에 온 몸은 새양쥐처럼 홈빡 젖었지만 겨우 지하철역에 도착. 경전철역까지 가서 김해행 경전철을 타고 김해시청역에서 내려 친구를 만나 혼자 사는 원룸으로 향하다.나를 위해 일요일 월요일 이틀을 꼬박 비워 둔 친구의 정성이 너무 고맙다. 일요일 저녁 미사가 가까운 김해성당에서 있다고 해서 함께 가기로 하고 태풍을 뚫고 하느님이 보호하사. 미사에 참석. 태풍속에서도 3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보는 미사가 오히려 감동을 일으키기도. 미사를 마치고 콜택시를 불러도 묵묵부답. 성당 여사무장이 보다못해 자기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는데 바람이 잦아들어 둘이서 우산을 들고 나서다. 도중에 식당 여는 곳이 없어 내가 먼저 도착해 있으니 친구가 어디서 치킨과 막걸리를 함께 사 오다. 치킨과 막걸리로 신나는 만찬을.
월요일 아침 바깥을 보니 바람도 잦아들고 비도 거의 그치다. 어젯밤 성당에서의 기도로 하느님이 봐 주신건가 ? 둘이서 김수로왕릉쪽으로 걷기시작. 그 일대를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13,000보 이상을 걸은 택이 되었다. 박물관옆 유적지 높은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김해평야를 비롯 김해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바로 옛 가야국이 번창하던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가야국이 철기문화가 일찍 발달했다고 하는데 청동으로 만든 군사들의 청동조각들이 인상적이다.
걷기를 마치고 원룸 근처 사우나에서 땀을 씻고 속닥한 가정집같은 음식점으로 가서 소주 한잔에 장어구이와 장어국으로 점심을 그득하게 먹고 친구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을 한 바퀴 견학하고 경전철쪽으로 향하다. 친구의 배웅을 받고 전철을 타고 구포역에서 내려 KTX로 서울로 돌아왔는데,
2박3일간의 태풍 '타파' 속의 여행으로 비록 산소에도 못 가고 등산도 하지 못했으나 비 바람을 뚫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본 것과 입에서 살살 녹던 장어구이와 태풍때문에 오히려 더 따사로왔던 친구의 마음이 영원히 추억속에 남을 것 같다.
2019.9.24 (화)
첫댓글 태풍속에서도 왕림해 준 친구, 고맙소!
저 멀리 한적한 이곳까지 허름한 독거노인집에서 이틀간 함께 보냈다는 게 너무 반갑고, 밤늦게까지 얘기 나누느라 소생이 먼저 잠들기도 했오!
악천후에도 주일 밤 미사 드릴 수 있음에 정말 감격했오. 지면으로 자칭 나이롱 신자라고 하면서...독실하신 어부인께서 어떠하셨는지요? 이제 동부인해서 주일미사엔 필히 참례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소생 뿌듯함을 느낍니다.
내내 댁내 안녕과 건강하심을 기원하면서...
즐겁고 훈훈한 여행이었소.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