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파격적이어서 예전에 읽어본 미술사가 박용숙의 <샤먼제국>이라는 책에서 그의 주장은 우리나라 고조선의 문화로 보아 그 중심지가 이라크 초승달 지역에서 유래한다는 취지의 책을 출판했다.
이책이 아름아름 알려지면서 환단고기의 내용을 전적으로 믿는사람들에게서 마찬가지로 고조선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게되고 최모씨나 조선사를 연구한다는 부류들은 한층 더 나아가 이순신의 명량해전이 프랑스 해변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지형적 근거를 대며 400년전 거북선이 한척도 남아있지 않은것이 그 증거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중재 같은이는 고려 태조 왕건이 중국 사천성 전촉왕 왕건이며 고려의 영역이 중국대륙 전체였다고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전자에 언급한 사람은 자칭 학위를 2개나 가지고있다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이고 한사람은 돌아가셨으나 거의 무학의 한자에 박식한 사람이다.
기상학을 전공했다는 어떤이는 기후와 동식물 기록을 예로 들면서 조선이 대륙전체를 지배했으며 청나라가 바로 조선이라고 주장한다. 단군의 어머니 웅녀가 먹은 마늘의 원산지가 터키이므로 웅녀가 그곳에서 왔다는 식이다.
이사람들이 강연에 다니면서 혹은 자신의 학위나 한자실력을 자랑이나 하려는듯 자신의 주장을 여과없이 배설한다. 처음 접하는 역사지식의 문외한은 우리역사가 반도에서 탈출했다는 그 통쾌함에 빠져들어 바이러스 처럼 그 설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이에 거론한 이들이 놓친것은 객관적 다양한 자료의 부족이다. 근거자료를 두고 해석하는 방법의 차이는 연구자간에 있을수있으나 이를 증명하기위해서는 사서기록과 고고발굴자료,미술사,인류학,유전학,언어학등 여러자료가 동원되어야 하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고조선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위의 조건이 대부분 일치하고 수긍될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구이동론의 측면에서 상위문화와 군사기술을 가진 부류가 동서극단 지역간 대량으로 이동할수 있느냐 하는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면 소수의 인력이 월등한 무기체제로 무장하고 다른지역에 침입하여 정변에 의한 방법으로 읍국(Chiefdom)이나 왕조(Kingdom)를 뒤엎고 문화를 전파하며 그 백성을 간접 지배하는 방식일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요순과 하나라의 전복과정, 서융이라고 불린 희발에 의한 상왕조의 전복과 고조선인의 몰락과 동북이동이 전부 그러한 예에 속한다. 또한 이러한 격변의 뒷면에 자리잡은 것이 이것을 가속화시킨 고속전차였다.
홍산에서 발굴된 대량의 옥기에서는 그 원산지가 요녕성 수암과 신강성 허티엔(和田) 의 것으로 밝혀지고 두곳 사이의 거리는 무려 5천킬로 미터에 달한다. 도보로 이동한것이라기 보다는 고속전차가 문명의 교류를 가속화시키고 정복전쟁과 문화를 확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수한 소수의 군사문화 집단의 이동이 신강으로 이후 오르도스에서 서안지방으로 이동하고 주나라 이후 그보다 이천여년전 요하지역에서 이동한 몽골리언(Mongoloid)과 서방에서 진입한 유로포이드(Europoid) 의 혼합이 급격하게 일어난것이 유물연대학과 고인류학이 증명한 결과이다. 내몽골과 요녕에서 유로포이드의 유골이 주나라 이후 연대에 발굴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러한 사실을 뒤로하고 고조선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는 주장과 고려와 조선이 중국대륙 전체라는 객관적 통찰력이 부족한 주장들은 마치 유병언과 이만희의 사교집단과 같은 맹목적 의식화 과정과 유사한것이다.
첫댓글
너무나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교언어학과 민족학을 통하여 연구하였습니다. A 4 4,000페이지로 세계 고대사 연구속에 환인, 환웅, 고조선이 있는것을 연구하엿습니다.
중앙아시아이지 메소포타미아는 너무 앞선 이론이다.
고조선의 정체성은 초승달(돋아 오르는 달, 신월)로 그 자산과 자본에서 투르크(Turk -달 집단), 타타르(Tatar-머리의 달족)가 형성된 것이다.ㅣ
실제 고려와 조선이 중국 전체라는 주장은 사교집단의 맹목적 의식화 사상과 같은 것이며, 국수적으로 고대사를 이해하면 안된다. 고조선 연구에 있어 현 강단사학, 북한의 리지린, 러시아의 엠부틴등이 발해만, 남만주권을 고조선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연구는 중국 25사를 기준으로 한 서지학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며, 필자는 고조선의 제 3기 시점으로 보ㅗ 있다. 제1기는 왕검에서 소태단군까지, 제2기는 색불루(두막루)에서 기원전 6세기 까지, 나머지는 발해만 시대인 것이다.현 고조선 연구는 제3기 시점인 발해만(산동 포함 요녕성)시점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