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이십오 년 넘게 공동체 생활을 한 콜린이 내게 말했다.
“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항상 투명하고 솔직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내가 바로 그 장애물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사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가 공동체의 장애물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형제자매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
그것 말고 다른 공동체 생활이 있을까요?”
이상적이고 완벽한 공동체는 없다!
공동체는 재주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서로 용서받고 용서할 사람들, 서로에게 상처입기 쉬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완벽함과 너그러움보다는 겸손과 신뢰가 공동체의 바탕을 이룬다.
자기의 약점과 남의 약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적당히 얼버무리는 자기만족(sloppy complacency)과 정반대로 다르다.
절망스럽게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진실에 관심하여 더 이상 착각 속에서 살지 않고,
어떻게 되고 싶은 나 또는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남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우리에서 출발하여 한 걸음씩 성숙해가는 것이다.
자기와 남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우리 모두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공동체로 부르신 하느님을 의식할 때에만 우리는 함께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
생명기운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우리한테서 솟아나야 한다.
공동체가 깊어질수록 구성원들은 더 약해지고 더 예민해진다.
당신은 정확하게 그 반대,
서로 사이에 신뢰가 커지는 만큼 구성원들이 더욱 강해진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은총의 뿌리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나약함과 예민함이 없어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 더 의존적인 존재로 된다.
사랑은 우리를 상처입기 쉬운 나약한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를 지키려고 만들어 세운 울타리를 그것이 무너뜨리고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남들이 우리에게 닿도록 내버려두고 우리가 그들에게 닿도록 충분히 민감해지는 것을 뜻한다.
디디에는 한 공동체 모임에서 자기 방식으로 이 사실을 말했다.
“공동체는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들어 세우는 건물과 같다.
시멘트가 돌들을 하나로 뭉쳐준다.
그 시멘트는 모래와 석회가루로 만드는데,
그것들은 가벼운 바람에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는 매우 미세한 물질이다.
우리를 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존재하게 하는 시멘트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지극히 약하고 작은 부분들이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날마다 서로에게 보여주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관심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애정 어린 작은 몸짓 하나, “사랑해.” 또는 “네가 있어서 행복해.”라고 말하며
아주 조금 도와주고 섬기는 데서 공동체가 형성된다.
남을 자기 앞에 세우고, 토론에서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다른 사람 짐을 조금 덜어 주는 것, 그게 공동체의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립비 2, 3).
자기 약점을 보호하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용인하는 것이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의미한다면,
그 때문에,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이 때로 엄청나게 약해진 자신을 보게 된다.
다툼과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나약함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벽을 쌓아야 한다.
라르셰에서 오래 살다가 가정으로 돌아간 사람들 가운데
자기 안에 있는 심한 공격성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당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기 안에 더 이상 그런 공격성이 없는 줄 알았기에,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자기 모습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소명을 의심하고, 진짜 나라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무장을 벗고 있었는데,
막상 가정에 돌아와 자신의 나약함을 존중하지 않는 식구들하고는 공동체에서 그랬듯이 터놓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지켜야 하고 그것이 공격성으로 나타난 것일 따름이다.
-Jean Vanier, Community and Growth (Paulist Press, New York, 1989), pp. 47-49.
첫댓글 예!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장점을 보고 칭찬하며 약점은 감싸주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샬롬^^
자기와 남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시방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보호막은 필요한 것이네요~ 스스로 깨고 나올 건강함을 충분히 갖기 전까지는요~
아... 제가 겁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이게 좀 덜 겁나면 연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