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확보도 없이 주5일제 수업... 적자로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 10명 돌보는 어느 아동센터 - 간식비 등 16만5000원 드는데 정부 지원금은 7만5000원 '무상' '반값'에 예산 퍼붓더니...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 860억, 토요 아동센터 운영비는 4억
지난 24일 토요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파랑새지역아동센터는 오전 10시 문을 열었다. 주중에는 세 명의 교사가 출근하지만, 이날은 휴일 수당을 줄 형편이 안돼 성태숙 센터장 혼자 출근했다.
문을 열자마자 부모가 주말에도 일을 하거나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저소득층 아동 10명이 찾아왔다. 오전에는 센터에 있는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면서 채소를 씻고 다듬어 보는 '체험'을 했다. 오후에도 계속 센터에만 머물 수 없어 인근 목욕탕에 가서 3~4시간을 보냈다.
이날 총 지출은 16만5000원. 열 명의 목욕탕비 6만원, 샴푸·비누·세정제 2만원, 요구르트·우유 등 간식비 1만5000원에 교사 일당(평일기준) 5만원, 공과금(전기세, 수도세, 냉난방비 등) 2만원 등이다. 급식비(학생 일 인당 한 끼 3000~4000원)가 나오는 점심·저녁 식사비는 포함하지 않은 돈이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하루치 운영비(7만5000원)를 훌쩍 넘어 9만원 적자를 봤다.
성 센터장은 "토요일에 교외 나들이는커녕 센터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거나 인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했다. "애들 소원이 놀이동산 한번 가보는 건데, 일인당 왕복 차비 2000원에 자유이용권 9900원, 간식이라도 사먹이려면 2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10~20명 데려가면 한 번에 20만원도 넘게 든다. 무료 공연을 보러 가려고 해도 교통비가 몇만원이니 동네를 벗어나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된 전국 초·중·고교 주5일제 수업에 맞춰 지역아동센터들에 토요일에도 문을 열도록 지원에 나섰지만, 지역아동센터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운영비를 주고 저소득층 청소년에 대한 책임만 떠넘겨 아이들이 오히려 방치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에 저소득층 가정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식사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현재 전국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3900개를 이용하는 청소년은 10만명이고, 센터를 이용하는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기초생활수급가정과 차상위 계층 청소년만도 약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올해 이용하는 10만명에게 배정된 예산은 60억원으로, 놀토 하루에 1억1000만원 꼴이다. 이용하는 저소득층 청소년 1명당 1250원씩 지원되는 셈이다.
주5일제가 실시된 이달부터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서울 구로구 파랑새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함께 만들어보는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성태숙 센터장은"토요일에 아이들과 견학도 하고 공연도 보고 싶지만 교통비마저 부담돼 주로 실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랑새지역아동센터 제공
정부가 토요 운영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에 지원하는 돈은 인건비·프로그램비·교재비·공과금 등을 모두 합쳐 한 달 30만~ 40만원. 토요일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7만~10만원꼴인데, 이 돈으로 많게는 30여명씩 되는 아이들을 하루 돌보라는 것이다.
최종희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장은 "지난해 월 60만원을 지원하도록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심의에서 깎인 것으로 지원 금액 자체가 적다 보니 센터 이용 아동 숫자 등 여건에 맞춰 차등 지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달 초 보건복지부가 전국 시·도에 한 달 40만원을 지원하도록 지침을 내려 보냈지만 서울시는 매달 30만원만 지원하기로 했다. 박철민 서울시 아동담당 주무관은 "타 시·도와 달리 서울은 정부 예산보다 지자체 예산(70%)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30만원 이상 지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에 예산을 쏟아부어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사업에는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서울시의 무상급식 예산은 860억원으로, 지역아동센터 토요 운영비(4억원)의 200배가 넘는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주5일제 수업에 대해 부처 간 의견 조율이 안 돼 관련 예산 확보도 제대로 못 한 채 졸속 운영되면서 결국 저소득층 아이들이 토요일에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방치되는 등 피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