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월간지 <새문안>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추수감사절의 현대적 의미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 생명의쌀 나눔 기독교운동본부장) .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의 계절이 돌아왔다. 추수 감사 예식은 농경사회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등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행한 추수감사 제천(祭天)행사였다. 공동 노동을 통해 얻은 결실은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의 소산이었음을 우리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구약시대에 추수감사를 절기로 지켰다. 칠칠절, 초막절은 물론이요, 유월절도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농사는 예로부터 인류의 생존과 생활의 바탕이었다. 모든 문화는 농경적인 토대위에서 발전되었다. “농업 없이는 문화도 없다”(Without agriculture, no culture)는 말은 그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농사는 전적으로 하늘의 기운(天氣)과 땅의 기운(地氣)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생명창조의 과정(process)이다. 인간의 노동기여도는 약 5%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빚어낸 결과물인 농산물을 인간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매우 교만한 자세이다. 하늘과 땅에 감사의 예를 올리면서 노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의 정신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가난한 이웃들과 결실을 함께 나누는 평등과 평화의 정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사람들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건너와 고생 끝에 거둔 첫해의 결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대부분 이 때를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요즘은 다양해져서 추석 때에 지키는 교회도 있고 임의로 정해서 지키는 교회도 있다. 농촌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11월 셋째 주일이 맞는 시기이다. 추석은 햇곡식이 나오는 때요, 11월 셋째 주일은 모든 농산물을 다 거두고 난 때이다. 중부지방의 경우 콩 타작이 제일 늦어서 11월 초,중순에 끝을 맺으니 모든 농산물에 대한 추수감사를 드리려면 시기적으로 11월 셋째 주일이 맞다. 이 시기 농촌교회 추수감사예배 때에는 한 해 지은 농산물이 거의 다 진열된다.
도시교인들은 추수감사절이 와도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와 절기에 따라 이루어가는 농사는 인위의 빌딩 속에서 자연의 리듬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도시적인 사무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도시인들은 자연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둔감하다. 일의 성취에 대한 기쁨과 감사는 있겠지만 지극히 개별적이요, 인위적이다. 반면, 논밭에서 거두는 추수는 공동체적이요, 자연과 함께하는 기쁨이다. 도시교회의 경우 추수감사의 정신과 취지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은 그러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먼저 농사와 농업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농사는 흙으로 빚어진 내 육신이, 협력자로 지어주신 배우자 및 이웃과 함께, 내 존재의 연원인 땅과 더불어 씨름하여 양식을 생산해내는 거룩한 노동의 과정이다. 농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면서 “그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고 하신 것처럼, 생존을 위해 허락해주신 최초의 직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생태계와 함께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고 살 때에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농사노동은 자아를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에 가장 적합한 노동으로서 본질적으로 매우 귀한 선업(善業)인 것이다. 이러한 농사를 그동안에는 경제적(산업적)인 입장에서만 평가함으로써 그 본래의 위치를 뒤바꾸어 놓았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농업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내 마음속에 잘못 놓여 있던 농업의 위치를 원래 자리로 옮겨주는 노력을 먼저 해보면 어떨까 싶다.
쌀은 공산품과 달라서 누군가가 생산하여 시장에서 돈 주고 사는 상품이 아니다. 쌀은 천기와 지기 등 우주의 기운과 인간의 노동이 오롯이 담겨있는 거룩한 생명체이다. 밥을 먹는 일은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의 거룩한 행위이다. 밥 한 그릇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 추수감사의 첫 걸음이 아닐까!. 추수감사는 노동의 결과물을 돈으로 환산하여 갖는 인간 중심의 욕망충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운행을 통하여 베풀어주신 매우 귀한 선물임을 자각할 때에 그 의미의 진정성이 살아날 것이다.
다음, 추수감사의 정신을 성경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신앙의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거두어들인 결실을 어렵고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함께 나누는 데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교회내의 행사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추수감사 헌금을 어려운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며 기쁨을 공유하는 나눔의 자리를 만들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고,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때에 교회가 추수감사절 때만이라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과 위로를 나누며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추락한 교회의 위상도 회복되고 하나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 될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