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사리2- 삐쁘라와 유물
누가 그러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도불교유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거기에 삐쁘라와 사꺄족 스투파에서 나온 유물도 있다는 겁니다. 안그래도 얼마 전에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고, 며칠 전에 삐쁘라와 사꺄족 스투파에서 나온 사리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그런 소식이 있어서 호기심이 일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중앙박물관으로 달려갔죠. 아, 물론 달린 것은 내가 아니고 전철이 달리긴 했지만서도요. 그런데 정말 있더라고요. 윌리암 펩페가 발굴한 유물 중에 보석류를 전시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 왔는데, 또 와서 보니 사진 하나를 덜 찍었더라고요. 일단 사진 두 장을 올려봅니다. 나중에 중앙박물관에 다시 가서 사진 한 장을 더 찍어오면 그때 추가할께요.
오늘은 이 보석류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대영제국 시절에 유럽 고고학자들이 불교 유적지를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밀림, 나무와 덤불 속에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유적지들이 모습을 드러냈죠. 마침내 룸비니에서 붓다의 탄생지라고 명문이 새겨져 있는 아소까 석주가 발견되었죠. 이로서 룸비니가 발견되었으니 이제 보살이 살았던 까삘라왓투를 누가 발견하느냐로 경쟁이 붙었죠.
여기서 윌리암 펩페가 등장합니다. 이 인간은 고고학자도 아니고 불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그냥 그 당시 대영제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해서 통치하던 시절에 북인도의 삐쁘라와 지방에 파견된 영지 관리인이었다고 해요.
그는 불교 유적지라고 생각되는 언덕이나 주춧돌 같은 것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파헤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뭔가 하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자기 영지에 있는 언덕 하나를 인부를 동원해서 파내려간 것이죠.
그래서 역사적인 발견이 일어납니다. 그 아래에서 석관이 발견되었죠. 이 석관은 인디아나 존스 2편인가 3편인가에 나오는 성궤 같은 것입니다. 진짜 성궤가 발견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최초로 진짜 붓다의 사리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궤 안에는 4개의 동석 사리용기와 한 개의 수정으로 만든 보석 용기가 발견되었고, 4개의 사리 용기 중 하나에 '붓다의 사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국립 중앙박물관에 특별전시하고 있는 보석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펩페는 성궤와 성궤 안에 들어있던 사리함과 사리를 꼴까따(그때는 켈커타로 불렀음)로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대영제국의 식민지 본부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 대영제국의 총독은 사리를 태국 왕에게 보냈고, 여러 나라의 요구로 분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펩페는 보석류를 전리품으로 영국으로 가지고 가서 구슬처럼 보이는 것은 영국불교협회에 보내고 보석류는 자신의 집 창고에 보관하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그 스토리를 인터넷 여기저기서 검색해서 알아낸 정보는 이렇습니다.
2003년 6월에 런던 불교협회 사무총장 폴 세토(Paul Seto)는 골동품 상인과 함께 불교협회가 보유한 유물을 보험 목적으로 재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붓다의 유물, 구르크푸르 NWP, 버드포어 에스테이트(Birdpore Estate)의 피프라와 스투파(Piprawah Stupa)에서 1898년"
라고 씌여있는 한 상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협회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답니다. 이 상자는 윌리엄 펩페가 영국으로 가져가면서 일부를 그 당시 리즈 데이비드가 회장으로 있던 불교협회에 기증한 것입니다.
폴 세토는 인터넷 검색으로 윌리엄 펩페와 삐쁘라와 스투파 발굴을 알고서 펩페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20통의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중에 윌리엄 펩페의 손자라는 사람의 전화가 왔는데,
“우리 집에도 피프라와 사리탑에서 나온 석화된 쌀처럼 보이는 비슷한 조각 상자가 두 개나 있어요.”
라고 아무 생각없이 말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불교협회 사무총장은 그의 집으로 가서, 삐쁘라와 발굴 현장 사진, 석궤와 사리함 사진 원본과 보석으로 장식된 나뭇잎과 꽃, 피라미드 모양의 보석, 금, 진주, 산호 조각, 불교 상징의 조각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펩페의 손자는 보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난 후, 그것들을 은행 금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 유물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삐쁘라와 유물입니다. 거기 전시된 유물 아래 명패를 보면 ‘영국 개인 소장’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그게 윌리엄 펩페 손자겠죠? 어쩌다가 불교 유물이 본래의 자리에 있지 않고 꼴까따 박물관, 델리 박물관, 영국 개인, 등으로 퍼져 있게 되었는지 슬프기만 합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부처님 사리와 사리함과 유물은 박물관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보드가야 대탑 옆에 봉안탑을 만들어 모셨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이지만 실현 불가능하겠죠?
첫댓글 일일이 조각을 해서 같이 봉안했나봅니다. 여러가지 의미가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