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 이지관
실상지탑(實相之塔)(題額)
개천산(開天山) 정토사(淨土寺) 고국사(故國師) 흥법대선사지탑(弘法大禪師之碑)(篆額)
대송(大宋) 고려국(高麗國) 중원부(中原府)1) 개천산(開天山) 정토사(淨土寺) 원광편소홍법대선사(圓光遍炤弘法大禪師)
금어대(金魚袋) 신 손몽주(孫夢周)2)가 왕명을 받들어 짓다.
살펴 보건대 대저 대각(大覺)의 심오한 교풍(敎風)은 삼무(三無)3)의 밖을 진작하였고, 상승(上乘)의 법우(法雨)는 삼유(三有)의 내(內)에 두루 적셔 주었다. (결락) 이등(以騰) (결락) 다섯 잎4)이 함께 피어 동조(東朝)5)를 비추어 높이 빼어났다. 영원히 자비의 음덕(蔭德)을 전하여 인방(仁方)6)을 두루 덮어줄 이가 있으니 오직 우리 대선사(大禪師)가 바로 그런 분이시다. (결락) 어느날 어머니가 혼교(魂交)7)에 홀연히 침실 들보 위에8) 한 호승(胡僧)이 승가(僧伽)의 모자를 쓰고 “어머니!”하고 부르며 말하기를, “내가 연성벽(連城璧)9)으로써 당신께 드립니다.”하면서 배 위로 던졌는데, 문득 가슴 속으로 들어가는 태몽을 꾼 다음부터는 지극 정성으로 태교(胎敎)를 닦아 (결락) 월(月) 8일(日)에 탄생하였다. 그로부터 일기(一紀)의 성상(星霜)10)을 지난 후 비로소 양친부모(兩親父母)에게 ‘출가 수도하여 거짓인 속(俗)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려 한다,’면서 허락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아달(阿妲)11)께서 전년(前年)의 상서로운 태몽을 생각하고 내여(乃與) (결락) 지자(之子) (결락) 크게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곧바로 삭발하고 우아한 용모(容貌)로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장흥(長興) 원년(元年)12) 중려월(仲呂月)13)에 이르러 북산(北山)14) 마가갑사(摩訶岬寺) 계단(戒壇)15)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결락) 소전(心傳)하고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참에 교학(敎學)이 뛰어났으니16) 횡문(黌門)17)에서의 그의 학덕(學德)은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였다. 더욱 조성(棗誠)18)에 힘써 화양(華壤)19)에 가서 유학할 것을 결심하고, 입조사(入朝使)인 시랑(侍郞) 현신(玄信)의 배를 편승(便乘)하여 아무런 사고 없이20) 운도(雲濤)21)를 헤치면서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결락) 에 이르러 (결락) 은(銀)이나, 산의 그 깊음을 알지 못하였다. 대사께서 이르기를, “이는 안변(岸邊), 즉 한쪽에 치우치는 말이니, 보다 더 심심(甚深)한 말을 일러 보라.”하니, 대답하기를, “심심(甚深)한 말 중에는 특이한 것이 없으니, 어찌 감히 말을 할 것이 있겠나이까?”라 하였다.
이로부터 참방(參訪)하면서 행각(行脚)을 계속하여 (결락) 산(山) (결락) 남쪽 절강성(浙江省) 좌편지방(左便地方)22)으로 나아가면서 도리무언지지(桃李無言之地)23)라 할 수 있는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있는 큰스님의 회상(會上)은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삼라만상이 모두 파초(芭蕉)와 같이 허무하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문을 억념(憶念)하여24) 법성(法性)이 모두 공(空)한 이치를 깨닫고 색신(色身)은 마치 환몽(幻夢)과 같음을 관하였으니, 도를 배움에 있어서 어찌 고정된 스승이 있겠는가! (결락) 통(通) (결락) 심(深)하였다. 그러고난 다음 (결락) 산에 도달하여 설미(雪眉)25)인 노덕스님을 친견하고 문득 그곳 승복(僧服)인 운갈(雲褐)26)로 바꾸어 입었다. 대사께서 이르기를, “네가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려는가?”하니, 대답하기를, “오래 전부터 스님을 흠향(欽向)하였나이다.(결락)”하였다. (결락)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결락) 구(久) (결락) 오래도록 부모(父母)를 친봉(親奉)하려고 생각하는가.”하였다. 스님께서 이르기를, “도리(闍梨)의 부모가 동국(東國)에 있는데,27) 어찌하여 여기서 친봉(親奉)한다고 말하는가?”하니, 대답하기를, “이남박으로 금(金)을 골라내는 것은28) 불위(不爲) (결락) 사(師) (결락) 대개 중화(中華)의 여로(旅路)에서 민부(閩府)29)를 지나면서 잠깐 머무르는 동안 虎頭(호두)30)를 그리는 절예(絶藝)31)를 폈으며, 가재소월(家才素月) (결락) 호호백발(皓皓白髮)에 방미(尨眉)32)의 대중 스님들이 손을 잡고 지도해 주었다.33) 그리고 문득 전정(前程)에 도달하였고, 그 후 소회(素繪)34)를 의지하여 십육성(十六聲)35)을 이루었다. (결락) 현(賢)의 묘상(妙像)을 (결락) 하여 그 은혜가 삼오(三吳)36)에까지 널리 입었으나, 심중(心中)에 내가 능히 이와 같은 훌륭한 일을 하였다는 아상(我相)이 없었다.
본국의 불교 중흥을 위해 배를 타고 서쪽 바다를 건너가서37) 적수(赤水)에서 잃어버린 구슬을 찾아38) (결락) 마치 승회(僧會)39)스님이 (결락) 회상(會上)을 차리고 학인을 지도하니, 누구나 법(法)을 물으면 빠짐없이 대답하였음은40) 흡사 대상(臺上)에 놓여 있는 거울이 만상을 비추되 피로(疲勞)를 잊음과 같아서 어두운 곳을 비추지 않는 데가 없으니, 하물며 다시 일상(日常)에 있어 시간의 여가를 이용하여 촉류(觸類)함이 대개 능히 (결락) 통(通) 도안(道安)41)의 추변(推辨) (결락) 자종(自從) (결락) 육조(六祖)에 이르러 크게 사선(四禪)을 연창하여 대대로 이를 상전(相傳)하며, 진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상속하였다. 모든 제자(弟子)42)들이 스님의 법수(法水)에 젖었다. (결락) 이어 보제사(普濟寺)에 도착 (결락) 강궐(絳闕) (결락) 은(恩)하니 산문(山門)이 조첩(稠疊)하였다. 성종(成宗) 문의대왕(文懿大王)43)과 지천선사(知天禪師)44)와 목종(穆宗) 선양대왕(宣讓大王)45)이 (결락) 휘호(徽號)46)를 홍법국사(弘法國師)라 추정(推呈)하였으니, 실로 계상(稽顙)47)의 정성을 더하였으며 더욱이 복응(服膺)48)의 간청을 쌓았다. 그리하여 봉은사(奉恩寺)49)로 이석(移錫)토록 권하여 (결락) 문자(聞者)가 호(虍) (결락) 오랫동안 머물다가50) 홀연히 (결락) 안차(安車)를 하직하고 스님께서 교외(郊外)로 떠나가는 때를 당하여 대가(大駕)51)께서 친히 교외(郊外)까지 나가 전송(餞送)하는 예를 갖추어52) (결락) 을 증송(贈送)하고, (결락) 국(國) (결락) 숭교(崇敎) 등(等)이 (결락) 감(紺) (결락) 황제(皇帝)의 만수무강을 축원한53) 다음 개천산(開天山) 정토초제(淨土招提)54)로 나아가서 산중(山中)에 은둔하여 명성(名聲)을 감추고55) 심기(心機)를 잊고 자성(自性)을 온전히 보전하였다.56)
(결락)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무릇 있는 바 삼라만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이 모든 제상(諸相)이 상(相)이 아닌 줄로 터득하여야 하니, 너희들은 구씨(龜氏)의 종지(宗旨)57)를 추락시키지 말고 삼가 취봉(鷲峰)의 교(敎)58)를 수호하라는 말씀이 끝나자마자 가부좌(跏趺坐)를 맺고 단정히 앉아 입적(入寂)하였다. (결락) 제자 (결락) 백여인(百餘人)이 울면서 유해(遺骸)를 받들어 정토사(淨土寺)의 감방(坎方)59) 괴봉(恠峰) 앞에서 장사를 지냈는데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다. 선왕(先王)인 목종께서 부음을 듣고 진도(震悼)하시며 (결락) 국서(國書)로써 조의(弔意)를 표했으며, 물품을 보내어 부의(賻儀)함으로써 (결락) 부처님께 정공(淨供)을 올려 현복(玄福)60)이 되게 하는 한편, 특히 역명(易名)의 옛 의전(儀典)61)을 받들어 장차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휘유(徽猷)를 전하되, 시호를 홍법(弘法)62)이라 하고, 탑명(塔名)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결락) 이에 미신(微臣)63)에게 명하시어 홍렬(洪烈)을 선양하게 하였으며, 신(臣)은 문사(文詞)가 황견(黃絹)64)의 명문(名文)을 지을 능력이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취민(翠珉)65)을 맡게 되었다. 욕되게 출발지언(出綍之言)66)을 받들어서 편점(編苫)67)의 작품(作品)을 피하지 아니하였으니, 정석(貞石)68)에 담긴 스님의 위대한 행적(行跡)이 영원(永遠)히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가유라(迦維羅)69)에 태어나신 부처님이여!
깊고 넓은 그 자비(慈悲) 알 길이 없네.
삼장교(三藏敎)를 펼쳐서 전해 주시며
천지간(天地間)70)의 뭇 중생(衆生) 교화(敎化)하셨다. (其一)
스님께서 열반(涅槃)한71) 이후로부터
별다르게 제창(提唱)한 스님의 가풍(家風)
(결락)
(결락) (其二)
(결락)
(결락)
(결락)
총괄하여 하나로 돌아가도다. (其三)
달마대사(達磨大師) 제창(提唱)한 향상일구(向上一句)를
혜능선사(慧能禪師) 계승하여 홍천(弘闡)하였고
대대손손(代代孫孫) 전해온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단절없이 법맥(法脈)을 상속(相續)하였다. (其四)
현토지방(玄兎地方)72) 동쪽의 해뜨는 나라73)
창룡(蒼龍)들이 노니는 동해(東海)의 한 쪽74)
이땅에서 한 스님 나타났으니
(결락) (其五)
(결락)
(결락)
(결락)
(결락) (其六)
삼라만상 섞여서 살고 있으며
교화받은 중생들 무수(無數)하오며75)
법(法)의 거울 그 광명(光明) 그치지 않고
지계정신(持戒精神) 엄숙해 서리와 같다. (其七)
법문(法門)들은 사대부(士大夫) 서신(書紳)하였고,
친견했던 사람은 피석(避席)을 하며
머리숙여 경건(敬虔)한 태도를 보여
지극정성 받드는 제자(弟子)뿐일세. (其八)
(결락)
(결락)
(결락)
(결락) (其九)
(결락)
부처님의 혜일(慧日)을 거듭 밝히니
해상(海上)에선 파도가 가라앉았고76)
변방(邊方)에는 낭연(狼煙)77)이 사라졌도다. (其十)
높이 솟은 직목(直木)은 부러졌으며78)
졸졸흐르던 감천(甘泉)은 말라버렸다.79)
가고오는 그 길은 자취가 없고,80)
실상(實相)따라 요곽(寥廓)에 돌아가네.81) (其十一)
가가문전(家家門前) 길마다 장안(長安)길일새
가(家)(결락)
(이하는 결락되었음)
세차(歲次) 정사(丁巳)82) 9월 일 세움.
【陰記】
대송(大宋) 고려국(高麗國) 중원부(中原府) 개천산(開天山) (결락) 각(覺)
(결락) 원광편소홍법대(圓光徧炤弘法大) (결락) 상제자등입실(相弟子等入室)
仍 (결락) 主朗惠修 (결락) 孤雲 (결락)
요초(了超) 직관(直觀)
승통(僧統) 문업(文業)
(결락)
삼중대사(三重大師) 정□(貞□)
대사(大師) □정(□淨)
대사(大師) □연(□緣)
대사(大師) □□(□□)
대사(大師) □현(□玄)
대사(大師) 보수(保秀)
대사(大師) □□(□□)
대사(大師) □□(□□)
대사(大師) □미(□美)
선선원(禪選員)
대덕(大德) □□(□□)
대사(大師) 계소(計紹)
대사(大師) □□(□□)
대덕(大德) □□(□□)
대덕(大德) □□(□□)
대덕(大德) □□(□□)
좌유양가승(左右兩街僧) (결락)
선리도원(禪吏道員)
대사(大師) □□(□□)
대사(大師) □찬(□贊)
대사(大師) 수직(秀直)
(결락) □반(□件)
승(僧) □□(□□)
승(僧) 형유(逈有)
승(僧) □□(□□)
승(僧) 현강(逈康)
(결락)
승(僧) 지□(智□)
재가제자(在家弟子)
(결락)
시중(侍中) (결락)
승(僧) (결락)
(결락)
(결락) 유월(六月) 무진삭(戊辰朔) (결락)
寺 (결락)
副 (결락) 得名
(결락)
(결락)
영대덕(令大德) (결락) 자활성공자(自活成功者)
〔출전:『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2】(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