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요일 오전입니다.
1박을 하는 활동을 마치고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 편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날은 풀렸다가 다시 또 추워졌고
먼발치에 산등성은 고요하니 멈춤듯 보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이집 저집 넘어갈때면 그 잠깐의 시간에도
겨울은 옷속으로 파고 들듯 합니다.
그래서 종종 걸음으로 서둘러 가곤 하지요.
강화에서 보내는 다섯번째 겨울입니다.
연말이 되면서 많은 것들이 끝이 났습니다.
몇군데로 흩어져있던 농사가 마감이 되었고
일년짜리 프로젝트 사업들도 종료되었습니다.
몇명의 직원이 사임을 하였고
그 자리에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사업장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캠프힐의 흐름을
생활 중심으로 바꿔놓았고
운영조직도 부모교사간 협의체와 같은 소위원회 중심으로 개편했습니다.
많은 것들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손바닥을 펼쳐보아도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것 않은데
사람은 끊임없이 오가고
이런저런 일들도 여전해서 벌어지고 닫히고 또 일어나고 그럽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 산봉우리 타고넘듯 넘어서면
또 거쳐야할 사람이 있고
언제 그랬냐는듯 즐거운 일들이 앞에 놓여있기도 합니다.
붙잡을 수 없는 거지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흐르듯 놓아주어야 하는가 봅니다.
청년들도 같이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같이 늙어가는거 아닌가, 하면서 내가 나이드는 걸
애네들 보면서 확인을 하게 됩니다. 거뭇한 수염자국과 이마에 패인 주름살,
언뜻 중년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3살때 만나 20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참 길기도 합니다.
그 솜털같은 것들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으니..
긴 시간을 두고서 누군가의 옆에 있는 것은
기억과 현실이 섞여서는 훨씬 진한 색깔의 만남이 될겁니다.
일이년 이용자로 만나서 내보내는 사람과
십년 이십년을 만나 나의 세월을 함께 거쳐온 것이 같을 수가 없겠지요.
2.
강화로 이주하면서의 목표는 '정착'이었습니다.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발달에 장애가 있는, 학령기를 지나온 청년들이
농촌이라는 강화의 어느 지역에 제대로 뿌리내리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좀 자리를 잡는 듯 합니다. 건물 올리고 농장 만들고
일자리 세팅하고 이것저것 해내느라 분주했던 것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게 보입니다. 우리는 강화 바깥에 있다가
이곳 낯선땅에 들어온 거였습니다. 아무 연고 없었고
기반도 뭐하나 주어진 것 없이 시간을 들여서 부딪히면서 왔습니다.
강화로 들어오는 대교가 두개 있어 그중에 남쪽 것이 초지대교인데
그 다리를 열심히 오가면서 마련한 세계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세상에 나름의 길을 내어 살아가게 되지요.
나의 루틴이 있어서
일상을 구축하고,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어서 그 루틴을 만들어내기가 힘들고 어렵다면,
뿌리가 약해서 흙에 단단히 내리기가 어렵다면, 어떻게 하나요?
도움이 필요하지요. 시간도 필요로 하고요.
이 사람이 자기의 땅에서 잘 뿌리 내릴수 있도록.
작업장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큰나무의 청년활동을
생활중심으로 바꾼 것은 바로 이 지점을 보면서 입니다.
청년의 시기에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해서
노동과 임금에 따른 주체적인 삶을 강화생활 초기에 만들어내려고 했던 지점이었습니다.
누구나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거고, 일없이 자기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서 고용과 직업은 중요한 세계였고
특히 청년기로 들어서면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삶이 거칠어지고
돌봄이 약해지고, 해서 재미나고 즐거운 자기만의 생활이 약해지는 거였습니다.
자기의 일상이 자리잡고 뿌리내리는 그런 경험이 빈약한게 아닌가 하는.
누구나 그렇잖아요? 일도 하지만, 적당히 하고 싶고, 너무 많이 하고 싶지않고,
대신 더 놀고 싶고 더 쉬고 싶은 그런 욕망은 누구나 다 비슷하듯이.
그래서 접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적당히 밀당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이 지점이 분명하고, 시간이 갈수록 절실해져 온거였습니다.
여전히 청년들은 낮시간에 농장과
카페를 오가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이 재미난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였고, 선택을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 요리, 음식, 몸쓰기, 수공예, 미술...
그리고 오후 5시 이후의 생활을 찬찬히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결이 있어서 그것이 거칠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다가가기만 해도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고. 너무 뾰족해서, 날카로워서..
그리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다 다릅니다.
프로그램이 중요한게 아니었고 누가 옆에 있느냐의 문제이지요.
좋은걸 아무리 많이 만들어줘도, 누구랑 같이 있느냐가 관건인거고.
같이 있는 사람을 바꾸고
같이 있는 사람의 결을 보고
같이 있는 사람이 날카로워지지 않게 잘 조정하고
같이 있는 사람에게서 따스한 온기가 뿜어져 나오도록..
건물을 지어좋고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되는건 아닌거지요.
여기가 캠프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캠프힐이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방식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거겠지요.
아직은 길은 멀고
해야할 것도 많네요. 발달에 장애가 있는 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공동체.
나를 환대하고 너를 환대하며 살아가는 마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캠프힐.
3.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 카페와 제빵소는 변함없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래저래 청년들과 함께 오는 손님분들 잘 모시고
음악회도 하고, 체험 견학하러 오신 분들을 위해서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 21년 사회적농장으로 지정되어 한해동안 부지런히 모이고 일했습니다.
세군데 나뉜 농장을 각각 특징을 잡아서 진행했습니다. 협동농장으로, 수확농장으로, 청년들 전환농장으로 해서.
사회적농장은 앞으로 4년더 농축산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됩니다.
- 양봉교실을 잘 마쳤습니다. 13명이 수료했습니다.
1년과정으로 시작해서 벌을깨워 월동에 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배우고 일했습니다.
- 고구마, 땅콩,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 감자.. 많은 양은 아니지만
농사지어 나누어먹고 팔기도하고 그랬습니다.
- 21년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으로 청년들의 작품속 그림을 소재로
달력과 머그컵, 컵홀더를 제작해서 보급했습니다.
- 거의 매달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인근지역에 괜찮은 음악당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 영상수업과 미술수업, 원예수업 등을 지원사업을 통하여 오랜기간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 볼음도의 쌀과 큰나무 꿀을 스마트스토어에 등재하여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 사회적농장 밴드를 만들어 350명 회원이 참여하는 마켓농장밴드를 운중입니다.
- 전환농장과 협동농장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비가림농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전환농장에 꽃밭정원을 만들어 꽃농사와 꽃체험장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4.
돈이 있으면 될 것처럼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정도 규모면 얼마면 된다, 라고.
돈갖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하고 만나서 하는 일이어서 사람이 준비되지 않고서는
될래야 될수가 없습니다.
캠프힐은 원래 유럽에서 슈타이너의 인간이해를
깊이 자기 것으로 소화한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서 시작된 것이어서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형태를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도 정책과 지원이 먼 한국땅에서
자기 삶의 긴 시간을 몇명의 사람들에게 내어줄 정도로 투신할만한
정신적인 토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루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와서 보고는 여기가 시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또는 일종의 그룹홈 정도가 아닌가, 하면서 스쳐지나가듯 보기도 합니다.
또는 한 10억이면 만들수 있는거 아닌가, 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이곳을 휘익 둘러보고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몇명 먹여살릴려고 그 많은 돈 들여서 이런 산골짝에 이런걸 만들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를 위할 수 없고, 많은 다수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할수있는 만큼 한다는 말은 소용이 없는 거였습니다.
이해하는 지점이 다르고 들여다보는 깊이가 다른듯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 긴 맥락에 따른 한 인간의 길을 조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캠프힐일 것입니다.
5.
큰나무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마을 윗자락에 놓여있고 동네와 붙어 있으면서 담을 두르지 않았습니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들어올수있도록 했고
카페는 상시로 오픈입니다.
청년들은 이곳저곳 다니고 일하면서 열려있는 세계안에 놓여있습니다.
일방적으로 가두어놓는 다는 것.
수용해서 일괄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폐쇄성을 의도적으로 지양했습니다.
사람이 주체적으로 살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겠다는 거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을때에 성장과 만족은 더 높아졌습니다.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펜스를 쳐야할거 아닌가, 라고도 했지만
그러면 끝없는 걱정이 온통 담으로 둘러쳐지게 될게 뻔했습니다.
시설이 딴게 없습니다. 시설이라고 해서 다같은 시설은 또 아닌겁니다.
물리적인, 정신적인 펜스가 가로막아놓고 있는냐 아니냐의 문제일 겁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여기를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나가지는 않습니다.
여기가 집이고 여기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고
함부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듯 합니다.
'훌랄라 치킨'을 읊조리던 청년이 두번 근거리고 나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고
그 외에는 아직은 위험할 정도록 나가거나 문제가 된건 없습니다.
'독립과 돌봄' 사이에 안전이 끼어있습니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주어야 하고
돌봄을 조건으로 남을 억압하는 일들은 수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택의 문제이고
캠프힐은 그중에 자유를 향해서 좀더 나아갑니다.
6.
중간밭은 올 1년 완전히 놀렸습니다.
손도 안댔지요.
그랬더니 풀이 점령했고, 이제 강아지풀 누런 것들이 온통 뒤덮었습니다.
한해정도는 쉬어가도 될거라 여겼고
여차하면 한해 더 놀릴까도 보고 있는 중입니다.
밭일하다가 사람놓치고
일하다가 건강도 잃겠다는 생각이 든건 최근 들어서입니다.
땅을 만들고 청년들 일할 터전을 만드는 것도 좋은데
몸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너무 무리하다가 고스란히 청년들한테 압력이 가는건 아닌가 해서.
그래도 내년 꾸며나갈 농장일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큰나무는 농장이 크게 3개로 나뉘어있고, 여기에 축사와 양봉장이 있습니다
전화농장 300평, 수확농장 500평, 협동농장 600평입니다.
양봉장에는 벌통이 70통, 축사에는 산란계 80마리에 화초닭 5마리가 있습니다.
일하고 수확해서 벌어들인 돈은 얼마 안됩니다.
장마 전에 고생고생해서 얻은 양파는 풍년이어서 양이 어마어마 했지만
이것저것 다 빼고 남는 금액이 고작 80만원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게 많은편이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합니다.
애초에 큰 돈을 벌 계획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힘이 빠지고, 그래서 힘에 부치는게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중간밭을 빼버렸고, 해서 중간밭은 그냥 풀로 뒤덮인 풀 천국이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와서 그럽니다. 너무 멋있다고.
그냥 놔둔 그 무엇이 오히려 정성껏 가꾼것 보다 더 멋있다고 그럽니다.
7.
너무 곧게 살려고 하지 말게
비틀어지고 휘어지기도 해서
적당히 넘어가고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곧게 가려고 해서 다 되던가
누군가를 넘어가고
어떤 것은 올라가기도 해야하는데
어찌 그렇게 곧아서야 갈 수 있겠나
...
대충 이런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캠프힐 뒷편으로 드리워진 나무들의 물결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곧은 것처럼 보여도 다들 휘어지고 꺽이고 하면서
팔을 뻗어내고 있는 나무들을.
멋있게, 잘하는, 좋은 모습으로..... 이런 곧은 것들만 갖고서는
금방 넘어지겠지요.
적당히, 바람이 통하는 여유가 그립습니다.
마침 산책길에 길을 막아서고 있는 나무 한그루를 보았답니다.
혼자 넘어졌는데 모두의 길을 막아서고 있더군요.
어쩌자고..
그렇게 그러고 넘어져있을까 하는.
8.
모든 문제라고 하는 것은
달리말하면 일종의 표현이고 실마리이고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내놓는 행동들이, 말이, 그 무엇인가가
문제처럼 여겨지는 것을
조금 방향을 바꿔보면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내놓은 것들이지요.
그래서 표현이고,
자기의 표현이기때문에 드러난 것으로 해결을 향해 나갈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겁니다.
장애로 인하여 부딪히는 많은 어려운 지점들은
'문제'라는 단어로 모아지기 보다는
'실마리'로 보는 것이 낫겠지요.
큰나무에서 한 청년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고.
9.
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통신입니다.
자주 올리지 못하는 게으름때문입니다.
몸이 고단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더 그렇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가 된듯 합니다.
대신 농장과 축사와 뒷산이 즐겁습니다.
일하다 쉬는 시간이 꿀맛과 같습니다.
양봉장에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강화통신 100통은 보내드리려 하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해마다 한 편씩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살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감독이 따로 없고, 주연 배우도 따로 없고,
물 흐르듯
한 편씩 찍어
세월을 보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