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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에 떠도는 착각과 무지 4
정진명(온깍지궁사회)
1.활터의 성격
활터는 문화 공간인가, 체력단련장인가?
오늘날 활터에 나타난 난맥상과 혼란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결과입니다. 과연 우리가 날마다 올라가서 활쏘기하는 공간이 문화공간인가? 체력 단련장인가? 이런 질문을 축구나 테니스 같은 종목에 적용하면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축구장이나 테니스장은 체력 단련장입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경기규칙을 빼고서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활쏘기도 그러할까요? 이렇게 질문을 해놓고 나면 답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점점 쉬워졌습니다. 활터는 문화공간에서 체력단련장으로 꾸준히 변해왔기 때문입니다. 활쏘기를 대하는 구성원들의 태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2016년을 지나는 지금쯤은 아마도 활터는 체력단련장이라는 답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요?
과연 활터가 체력단련장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과감하게 "그렇다!"라고 대답을 해놓아도 찜찜함은 여전히 남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활쏘는 당사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았고 더더욱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그 찜찜함의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에 대해 정직한 대답을 해야 할 일입니다.
시간을 거슬러서 1970년대로 가봅시다. 1970년대 한량들에게 활터에 올라가서,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백 보 양보해도 체력단련장이라고 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활을 배운 목적은 과녁 잘 맞추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자세히 알아보았지만, 활터에 올라온 사람들 중에서 폐결핵이라든가 악성 소화불량 같은 병증 때문에 집궁을 한 사람조차도 오직 그 목적만으로 활터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증상이 있다고 해도 당시 활터를 장악한 사람들의 덕망이나 인품 같은 '분위기' 때문에 활을 배운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활터는 상류사회의 고품격 문화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권력이 집중된 서울지역에서는 활쏘는 기능보다는 고위관료나 원로들의 사교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생이 상주하며 획창을 하고, 함께 활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활쏘기라는 체육 기능이 놀이문화와 공존하는 묘한 형태가 활터라는 공간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과녁 맞추는 기능이 활의 전부였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공을 땅구멍에 집어넣기 위해서 골프장에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들은 당연히 그러려고 골프장에 갑니다.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그럴까요? 물론 겉으로는 목적이 그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직 땅바닥의 작은 구멍에 공을 집어넣으려고 골프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가는 것이죠. 이때 골프장은 사교 공간이지 체력단련장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시간을 되돌릴수록 활터는 그런 공간의 성격이 짙어집니다.
따라서 불과 20여년 전 한량들에게 활터기 문화공간이냐 체력단련장이냐 하고 물으면 그들은 대답을 하기 정말 어려웠을 질문이었습니다. 불과 20년만에 많은 사람들이 활터를 체력단련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의 관성이란 하루아침에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활터를 문화공간으로 대부분 인식하지, 체력단련장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부인들이 활터에 올라가서 활에 관해 물으면 누구나 대뜸 내지르는 말이 '전통' 무술이요 '전통' 활쏘기라는 점입니다. 이 '전통'이란 말은 체력단련장이라는 말과는 저절로 배치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활쏘기 앞에 전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 활터가 체력단련장이 아닌 문화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활쏘기가 아무리 체력단련 기술이라도 전통이라는 꾸밈말이 붙으면 문화의 한 형식으로 인식됩니다. 전통이란 여러 대를 거쳐오면서 다듬어진 형식과 절차를 뜻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축구공 갖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어차며 뛰어다니는 것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활터가 체력단련장이 아닌 문화공간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2.활터가 문화공간인 이유
활터가 체력단련장이라면 그냥 활만 쏘면 됩니다. 활터에서 지켜지는 여러 가지 절차나 예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제 멋대로 쏘고 가면 그뿐이죠. 그렇지만 만약에 활터에서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대번에 구사들이 나서서 뭐라고 할 것입니다. 예컨대 동진동퇴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들어서서 제 멋대로 쏜다면 활터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활터에는 엄정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 질서가 전통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활터가 전통 문화공간이라면 그 질서를 잘 정리해서 구성원들이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활터는 단순히 활만 쏘는 곳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활쏘기를 하기 위해 등정례, 팔찌동, 초시례를 하고, 더 나아가 동진동퇴, 좌달이와 우달이, 습사무언 같은 수많은 규칙을 지킵니다. 이런 것들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기였던 위험한 도구를 통제하느라고 생긴 습관입니다. 이런 습관들이 쌓여서 구성원 간에 합의를 할 때 전통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활터만 홀로 독립하여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활터가 소속된 사회 전체의 문화 형태와 긴밀하게 맞물려있습니다. 활터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활터는 조선시대의 관습과 풍습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활터가 체력단련장이라면 반바지나 민소매 셔츠 같은 것을 입고 쏴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으라고 신사들에게 가르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옛날 사회 관습과 연결되어 무의식중에 형성된 관습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활터가 옛날의 지배층 문화를 많이 수용하였던 까닭에 권력의 핵심부까지도 연결되었고,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계 같은 것이 그런 형태입니다. 나아가 해방 직후에 황학정에서 전국 남녀 활쏘기 대회를 주최할 때 이승만 대통령을 초빙한 거라든가, 해방 직후 김구 주석이 석호정에 가서 사계원들과 기념촬영을 한 것은 활터가 당시 어떤 공간으로 활용되었는가를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들을 이끌 총재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관행도 조선시대의 풍속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전통 사회에서 활쏘기는 체력단련장이기보다는 문화공간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3.두 가치관의 갈등
이런 상황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은 1970년대의 상황입니다. 개량궁이 나타나고 활쏘기가 대중화되면서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특히 입승단제도가 확립되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 이런 변화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즉 전국대회가 많아지고 대회 개최의 조정 기능을 하는 협회의 위치가 점차 커지면서 활터는 문화공간에서 체력단련장으로 급속하게 변신합니다. 문제는 활터의 상황입니다.
협회는 말할 것도 없이 활터의 체력단련 기능을 대변하는 단체입니다. 소속 팀의 경기 운영과 갈등 조정을 목표로 하는 조직입니다. 활터의 기능 중에서 경기 운영을 전담하여 그 기준을 제시하고 경기 방법을 확정하여 참가자의 불만을 없애도록 하는 조정자가 협회의 본질입니다. 협회의 원칙에 따라서 각 팀은 대회에 참가하고, 그 기준에 따라 대회를 진행합니다.
문제는 경기 운영 방식이 활터의 방식과 다를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민감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경기 운영에서는 우궁 우선 발시만을 지킵니다. 이것은 과녁이 셋으로 늘아나면서 생긴 편법이죠. 그 전에는 좌우궁 교대 발시가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녁이 둘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1관 2관 3관에서 진행되는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혼란이 빚어져서 우궁이 먼저 발시하는 방식으로 경기규칙을 협회에서 정한 것입니다. 당연히 대회에서만 지켜지는 편법이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면 활터에선 어떻게 했을까요?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했습니다. 좌우궁이 교대로 발시한 것이죠. 즉 초순에는 우궁이 발시했으면 그 다음 순은 좌궁이 알아서 먼저 발시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협회의 중앙통제가 점차 강화되고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회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좌우궁 교대 발시가 대회 상황을 체험하려는 할 때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들어 우궁발시만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현재 대부분의 활터에서는 옛날에 좌달이와 우달이가 교대로 하던 방식을 버리고 우궁 우선 발시만을 지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활을 과녁 잘 맞추는 기능으로만 바라보고, 그리로 초점을 맞춘 세월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결국 문화공간이라는 활터의 개념을 체력단련장이라는 개념이 몰아낸 셈입니다. 이것을 과연 합당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지금 이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활터가 엄연히 문화공간인데도 체력단련장으로 오인하여 나타난 결과는 한둘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복장을 러닝셔츠 같은 흰색으로 바꾼 것도 그렇죠. 활쏘기 앞에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라면 전통에 걸맞은 복장을 해야 합니다. 생활한복도 좋고 옛 옷을 도안으로 응용한 것도 좋죠. 그런데 하필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흰 러닝셔츠라는 것은, 협회는 체력 단련을 권장하고 경기 운영을 주관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이 협회의 대회나 모임을 넘어서 활터에도 점차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지역의 친선대회를 가도 모두 흰옷입니다. 이 세상 모든 활쏘기가 협회의 규정을 받아야 할까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국궁계의 굴욕입니다.
나아가 장비까지 협회의 규정을 적용하려는 어리석은 일이 활터에서 버젓이 벌어집니다. 어느 정에서는 자정 대회에서도 공인 받지 못한 각궁을 썼다고 하여 수상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상을 주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 활터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 정의 몇몇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활터가 거대한 문화 변동의 한 복판에 놓였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활터가 더이상 문화공간이 아니라 체력단련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죠.
문제는 협회 운영자들의 무지와 착각으로 활터의 문화공간 성격마저 왜곡시키고 강제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정간 같은 경우가 그런 것입니다. 정간은 전라도 지역의 부유한 계층들이 누리던 활터에서 1970년대 말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것이 활터의 고유한 전통문화인 양 호도하여 전국에 강제하는 태도는 협회의 성격이 무엇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사고에서 나온 대참사입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에 정간 도끼 사건이 났을 때 협회의 이름으로 정간을 옹호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공문을 각 활터로 내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협회게 경기운영을 위한 조직체라는 것을 망각한 어이없은 처사입니다. 각 활터에서 벌어지는 문화형태에 대해 협회가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활터에서 창립자의 사진을 걸고 제사를 지내든, 선생안을 놓고 고사를 지내든,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닙니다. 활터의 문화에 경기운영단체가 왜 간섭을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그런 것에 대해 간섭한다는 것은 협회의 본분을 망각한 일입니다. 만약에 정간이 전국 활터의 공통된 현상이었다면 가을걷이가 끝나고 들판에서 활쏘던 경기도 지역의 동네 활터는 어디다가 정간을 모셨다는 말인가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도 들을까 말까 한 세상에서 특정 지역의 풍속을 전국의 풍속인 양 강제하는 것은 획일화의 전형이고 폭력입니다.
이런 식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변화가 최근 10여년 사이에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과연 활터는 문화공간인가, 체력단련장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활터는 문화 공간인가? 체력단련장인가?
4.활터는 체력단련장이 아니다.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활터를 체력단련장으로만 인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반인이 보아도 국궁인이 보아도 활터는 단순한 체력단련장이 아닙니다. 전통이 살아숨쉬는 문화공간입니다. 활터를 과녁 맞추는 오락장이나 육체를 단련하는 체력단련장이라고 생각하고 활터에 오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활터의 기능을 이렇게 단순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활터가 전통 문화 공간임을 우레처럼 입증하는 것입니다.
5.문화는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다.
활터가 체력단련장이 아니고 문화공간이라면, 그것도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활터에 전해오는 아름다운 풍속과 규칙을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문화는 몇 사람이 이렇게 하자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다듬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활터가 체력단련장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전통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자각하여 남들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통 문화가 지역별로 다양한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고민도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선배들이 그런 전통의 기준을 확립해놓았습니다. <조선의 궁술>이 그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것이 우리 전통 활쏘기의 핵심입니다. 그 핵심을 찾아서 확인하고, 그 부분과 다른 곳이 있으면 그것이 국궁의 미래에 이바지할 것인가 방해될 것인가를 판단하여 이바지할 것은 적극 지키고 가꾸어 다듬어야 하며, 방해가 될 것은 걷어내야 합니다.
6.획일화는 전통의 무덤
획일화는 군사주의 문화의 특징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회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여러 군사주의 문화가 생활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런 것의 가장 중요한 징표가 획일화입니다. 획일화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꺼리는 현상입니다.남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고, 남이 나와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군사문화의 찌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여 사회 곳곳에서 큰 말썽을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활터 생활을 해보면 이런 숨막히는 상황을 너무나 많이 마주합니다. 예컨대, 1970년대에 활터 대표 용어를 사두로 통일하자고 한 결의는 그런 것을 대표할 만한 사례입니다. 사두 , 사백, 사수, 사장처럼 다양한 용어를 사두로 통일하자는 운동이 일어나서 근래까지도 용어를 변경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아울러 협회의 조정력과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협회의 인증이 마치 활터의 모든 권리를 이양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우수죽순처럼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활터를 체력단련장이나 과녁 맞추는 오락장으로 인식할 때 활터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방법은 과녁 맞추는 것뿐입니다. 과녁 맞추기 열풍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잘 맞추는 사람에 대한 기대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것이 과녁 맞추는 영역을 넘어서 활터 전반의 풍속과 전통에 대한 영역까지 맞추기의 권위를 대입하려고 할 때 일어납니다. 결국 이런 관심에 권위를 실어주는 것이 '명궁' 제도입니다. 지식을 검증하지 않고서 시수로 준 '명궁'이 전통 문화에 대한 기준을 부여하는 자격증을 받은 양 행세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신사들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왜곡된 전통의 길로 접어듭니다.
명궁은 협회의 명궁이지 활터의 명궁이 아닙니다. 활터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질서를 지니고 오랜 세월 흘러왔습니다. 이 영역을 무시하고 바깥에서 가져온 명성으로 활터 내의 질서와 풍속에 적용할 때 활터의 관습까지 자신의 지식을 따라야 한다는 식의 오만한 발상이 나오고, 그것은 외부의 권위에 기대어 활터 내부의 전통을 질식시키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활터를 어떤 공간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협회가 준 '명궁'이면 협회의 명궁으로 처신해야지, 활터 문화까지 지배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밖에 나가면 명궁일지 몰라도, 활터로 돌아오면 전체 구성원의 1/n에 해당하는 한 한량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문화공간으로서 활터가 모든 사람에게 지닌 의미입니다. 문화는 시수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적용되는 대상이자 권리입니다.
7. 아름다운 활터 풍속에 재를 뿌리는 사람들
한두 달 전의 일입니다. 경기도 가평에서 활을 쏘는 김대현 접장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활터에 올라갔는데, 낯선 손님 두 분이 왔더랍니다. 둘 다 교수라고 소개를 하기에 반갑게 인사하고 성이 최 씨인 교수님한테 최 접장님이라고 불렀더니, 자신을 명궁이자 교수라고 소개하면서 접장이란 말은 안 좋은 말이니 쓰면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머쓱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면서 저에게 접장이 활터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쭉 활터에서 만나는 사람을 접장이라고 불러 왔는데, 교수이자 명궁이신 분이 그러니 궁금해서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에는 교수님 중에서 명궁이 된 분은 아직 없는데, 교수이자 명궁이라니 좀 이상합니다. 제가 국궁계에서 눈을 잠시 뗀 사이에 어떤 교수님이 명궁이 되신 걸까요? 하여간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수만도 아니고 심지어 명궁이라는 분이 그렇게 무식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신만 안 쓰면 될 것을, 굳이 남의 정까지 가서 그곳에서 잘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말 틀리니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옛날 같으면 뺨 맞고 쫓겨날 일이어서 우리의 활터 전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입니다. 남의 정에 가서 활을 쏠 때는 일부러 초시를 맞추지 않으려고 짧게 쏘는 겸양이 있는 곳이 활터입니다. 그런 데서 대놓고 남의 정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적질하는 것은, 무식이 극에 달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오늘날 활터의 현실 수준일 것입니다. 뭐, 세상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요.
접장이 활터에서 오래부터 쓰인 용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입니다. 해방 전에 활을 쏜 분들한테 여쭈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일부러 접장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해방 전에 활을 쏜 분들에게 물어서 그것을 녹취하여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정 궁금하시면 『이야기 활 풍속사』(학민사)를 들춰보시기 바랍니다. 그 뒤로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나서 호칭이 애매모호할 때마다 뭐라고 불러드려야 좋겠냐고 여쭈면 예외 없이 ‘접장’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명궁이면 몰라도 교수라면 글 깨나 읽었을 사람인데, 이런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접장이라는 용어를 쓰면 안 된다니! 그래서 명궁이면서 ‘교수’인 사람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명궁은 몰라도 ‘교수’는 아닐 겁니다. 교수라면 그렇게 무식한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활터에서 접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 발생할 겁니다. 즉 수많은 한량들이 다른 정과 교류를 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을 부를 공통의 호칭이 없다면, 제일 먼저 만나서 직업을 물어야 할 겁니다. 과장이면 과장님, 대리면 대리님, 사장이라면 사장님, 이런 식으로 먼저 직업을 물은 다음에 그에 걸맞은 호칭을 불러주어야 할 겁니다. 세상이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보통 세상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통성명하면 그 성 뒤에 사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존칭하는 겁니다. 접장이라는 용어가 없다면 우리는 활터에서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가장 많이 듣게 될 겁니다.
접장이란, 우리의 근대 사회에서 가장 흔히 쓰이던 호칭이었습니다. 이 호칭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서당입니다. 서당의 우두머리는 훈장님이죠. 벼슬 없이 공부만 하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훈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훈장님은 여러 학동을 가르치는데, 숫자가 많으면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라 똑똑한 아이를 뽑아서 접장을 시킵니다. 접장이 하는 일은 훈장으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의 질서를 잡고 이제 막 천자문을 시작한 꼬마들에게는 간단한 지식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반장 정도에 해당하는 아이들입니다. 사서삼경을 강독하던 훈장님이 코흘리개 아이들을 앞에 놓고 하늘 천 따 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미리 예비 교육을 시키는 사람을 뽑아서 두는 것입니다. 이런 게 접장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단위의 우두머리를 대표하는 사람을 ‘접장’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자, 그러면 훈장과 접장의 관계를 활터로 옮겨보겠습니다. 활터에서 훈장에 해당하는 분은 어떤 분일까요? 훈장은 활터의 정신을 가르치고 활터의 사풍을 조정하는 사람입니다. 활터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교장입니다. 활터의 교장이 서당의 훈장님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활터에 막 올라온 신사를 교장이 가르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은 신사를 가르칠 사람을 지정해줍니다. 시간이 많아 활터에 자주 올라와서 언제든지 신사들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하죠.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가 바로 접장입니다. 활터에서 접장은 몰기를 하고 이제 스스로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 중에서 시간이 나는 사람을 시켜 신사에게 활쏘기의 기본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낙인 옹에게 누가 신사를 가르쳤냐고 물었을 때 ‘접장’이 가르쳤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일제강점기 때 활쏘기가 스포츠로 바뀌면서 일본으로부터 사범이라는 말이 들어옵니다. 그 사범이란 말은 활터에 상주하며 각궁을 관리해주는 사람에게 붙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사범이 신사를 가르치기도 했기에 ‘사범’이 ‘접장’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접장이란 남을 가르칠 만한 실력이 되는 사람을 뜻하는 존칭어인 것이고, 그래서 활터에서 두루 남을 존칭하는 용어로 정착한 것입니다.
‘접장’은 활터에서 상대를 존중해주는 아주 귀한 말입니다. 이 접장의 반대말이 ‘사말’입니다. 남을 존칭할 때는 접장님이라고 하고, 자신을 낮출 때는 사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접장이 활터에서 쓰면 안 될 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말’이라는 말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접장이 활터에서 아주 귀한 말이라는 것은 호남칠정을 보면 됩니다. 강경 덕유정에서는 활터의 대표를 사두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백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사백을 ‘접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덕유정의 큰 행사는 접장 잔치, 권무잔치, 공원 잔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접장 잔치는 역대 사백을 기리는 제사입니다. 접장이 활터에서 쓸 말이 아니라면 유서 깊은 덕유정에서 어찌하여 부사백을 ‘접장’이라고 부르고 역대 사백을 기리는 제사에 ‘접장 잔치’란 말을 붙였단 말입니까? 이렇게 조금만 돌아보면 접장이란 말의 쓰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조차 무시하고 굳이 남의 정에 가서 쓰면 되니 안 되니 하고 간섭하는 무식한 사람이 어찌 교수이겠습니까? 최 아무개라는 그 사람이 명궁일지는 몰라도 교수는 아닐 겁니다. 명궁 중에는 무식한 사람이 많아도, 교수 중에 그렇게 무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사범에 대한 오해도 말해야겠습니다. 접장이 남을 가르칠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존칭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접장에게 배운 신사가 몰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도 접장이 됩니다. 그러면 그 접장과 이 접장의 관계는 어떨까요? 동등한 겁니다. 활터는 어른이 올라오는 곳입니다. 그러니 몰기를 하고 나면 모두가 동등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활터에서 가장 꼴사나운 것이 뭐냐면 사범을 마치 스승인 양 떠받드는 것입니다. 무협지의 사제 관계처럼 맺어진 어떤 관계로 착각하는 겁니다. 그런 집착과 강요는 끼리끼리 모여서 활터의 분위기를 제 멋대로 해보려는 권력욕에서 나온 겁니다. 사제 관계로 만들어놓으면 제자가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풍토인 것을 거꾸로 악용한 것이 바로 활터의 사범 제자 관계입니다.
그러나 활터의 사범은 제자를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성인이 되어서 올라온 사람에게 어찌 과녁 맞추는 잔재주 하나 가르쳐주고 스승 노릇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제가 묻겠습니다.
사범이 신사에게 가르쳐주는 기술은 오락일까요? 무술일까요? 과녁 맞추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면 오락이요, 건강의 비결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면 무술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활터에서 가르쳐주는 사법이 무술이던가요? 건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늘날 활터에서 가르쳐주는 주먹구구식 사법은 건강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과녁 잘 맞추는 기술일 겁니다. 과녁 맞추는 재주는 오락에 불과합니다. 오락은 재미가 목적이죠. 건강과는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과녁에 몰입하면서 몸은 점차 망가지는 겁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의 사범입니다.
바둑판을 놓고서 놀이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오목이 있고, 진짜 바둑이 있죠. 참, 요즘은 알까기도 생겼더군요. 하하하.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오목 두는 법을 가르쳐주고 사범 노릇하려고 하면 어떨까요? 그건 만인의 비웃음을 살 겁니다. 오목 가르쳐준 사람을 오목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깟 오목 두는 법에 무슨 놈의 스승이란 말이 붙겠습니까?
활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과녁을 두고 활을 쏘지만, 활을 오락의 기법으로 쏘는 사람이 있고, 활을 무술의 원리로 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둘은 똑같은 과녁을 향해 쏘지만, 오목과 바둑처럼 차원이 전혀 다른 활쏘기입니다. 우리의 전통 활은 오락이 아니라 무술입니다. 오락은 재미일 뿐이지만, 무술은 건강 양생입니다. 그런데 오락을 가르쳐주고 무술의 스승 노릇을 하려고 하면 이게 될 말인가요? 활터에서 과녁 맞추는 잔재주 가르쳐놓고 스승행세 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터에서는 접장이 신사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 신사가 몰기를 하면 동등한 접장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그렇다면 활터에는 스승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이 바로 활터의 스승입니다. 교장이 활터의 사풍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낙인 옹의 말에 의하면 부사두 급이라고 했습니다. 사원간의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활터의 사풍에 따라 조정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을 지도하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하지, 그깟 과녁 맞추는 잔재주 가르쳐주고 스승 행세하는 것은, 활터의 전통에서는 꼴불견입니다. 그런 잔재주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도, 활터에는 존경하고 존중해야 할 스승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 분들이 골프로 다 빠져나가고 나니 활터의 벼슬에 혹하여 징계나 남발하며 어두컴컴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들이 남아 자신들의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려고 사범을 스승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활터에서 사범은 접장만도 못한 직책이었습니다.
활터에서 스승이 가르칠 것은 과녁 맞추는 잔재주가 아닙니다. 사법을 가르치려면 모든 무술에 공통으로 흐르는 원리를 가르쳐야 하고, 사풍을 가르치려면 올바른 정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술 전통 활쏘기의 사법과 사풍의 정신은 『조선의 궁술』에 잘 정리되었습니다. 결국 접장만도 못한 사범을 활터의 스승으로 올려놓은 것은 『조선의 궁술』을 잃어버림으로 해서 빚어진 참극입니다.
8.사범의 중요성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엇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의 속성이란 어디나 같기에, 일단 얘기를 꺼냅니다. 좀 느슨한 마음으로, 혹은 재밋꺼리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대학에 다닐 때 교육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작년에 공주사범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었다가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학의 면접이란, 합격이 전제된 상태에서 학습하기에 불편한 몸이 아닌가 하는 정도를 확인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듣고서 그것이 평생 마음에 걸려있는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검정고시 출신이었습니다. 면접관 얘기가, 사범대를 졸업하면 중고등학교에서 중학생 고등학생과 생활하게 될 텐데, 고등학교 과정을 정상으로 마치지 않은 사람은 학사과정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것이 학생들의 삶에 미칠 영향이 커서 교사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즉 검정고시로 학력은 국가에서 인정해주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결국 불합격처리 되었고, 한 해 재수한 끝에 다른 대학의 사범대로 진학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명퇴할 나이가 되어서 어디선가 훌륭한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그가 틀림없이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그런 능력이나 선한 품성 말고 제도로서 교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공주사범대의 그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일었습니다. 공주사범대가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이유를 저는 그 일로 하여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활터에 몸 담은 지 20여년 만에 이 사건이 제 마음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며 생각나는 것은 어쩐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활터 사람들의 갈등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낯뜨거워서 남 앞에 얘기하기 부끄러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풍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하고서 곰곰히 따져보니, 사범들이 작당을 해서 정에 분파를 만들어대는 통에 오랜 세월 싸움의 씨앗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서 가만히 전국의 활터를 돌아보니, 사범이라는 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은 하지 않고 제 똘마니를 키워서 활터의 권력을 쥐고 뒤흔드는 수작만 부리는 짓거리들이 눈에 환히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시끄러운 활터에 가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범이 악의 씨앗 노릇을 하는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조용한 활터는 예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용한 활터가 거의 없다는 것이죠.
사람은 남을 가르칠 때 꼭 제 수준만큼 가르칩니다. 좋은 사범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개차반 사범은 개차반을 만듭니다. 사범이 엉망진창으로 가르쳐서 개차반을 양성해놓으면 그 개차반은 자신이 개차반인지도 모르고 개차반 짓을 합니다.
활터는 시간 많은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활터에서 시간 많은 사람은 백수입니다. 할일이 없으니 틈만 나면 활터에 올라와 살죠. 그러다보니 다들 바쁜 가운데서 귀찮은 일을 맡지 않으려고 하고, 활터에 살다시피하는 백수가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기 마련입니다. 시간 나서 하게 되는 일이라는 게 언제든지 남 가르치는 사범 같은 것이죠. 불과 10년 사이에 이 사범들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2000년대의 백수란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그런 것은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활터에서는 그런 사람이 사범을 맡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 중에서 학력이 낮은 사람이 사범을 맡을 때 일어납니다. 학력이란,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원리를 경험했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학급회의 구경도 제대로 못한 사람이 가르치는 교육이란 뻔합니다. 과녁 맞추는 재주 하나 가르쳐놓고서 스승 노릇하려 드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은 아는 게 없습니다. 책 한 권 읽지 않은 자들이 사범이랍시고 앉아서 주변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마치 경전처럼 얘기하며 신사들을 자기 똘마니로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범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제가 아는 것만큼을 가르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런 무식한 사범을 만난 신사만 불쌍할 따름이죠.
제가 사는 곳의 한 활터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활을 배우러 오는데, 가입을 해놓고서 안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와서 활터에 정착하는 비율은 20%가 채 안 됩니다. 그래서 장부만 지저분해져서 임원회에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모두 받아들일 게 아니라 일단 사범이 1~2달쯤 가르쳐본 뒤에 계속 나오면 가입시키자는 것이었지요. 얼마나 좋은 제안입니까? 제가 제안을 해놓고서도 좋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장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몇 년 뒤에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제 맘에 드는 놈은 가입시키고 제 맘에 안 드는 놈은 되돌려 보내는, 사람 걸러내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범은 신사의 가입 여부에 대한 전권이 저에게 있다고 착각하고 한 10여년 동안 그짓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활터는 모두 그 사범의 똘마니로 가득찼습니다. 활터가 개판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또 다른 활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고 학력이 전부인 자가 사범을 맡아서 가르치는데, 꼭 장똘뱅이나 양아치 짓을 하는 짓들만 가르쳐놓습니다. 그러면서 맨날 술타령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자기들끼리 어울려, 자신들가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들을 헐뜯고 공격합니다. 활터라는 게 회원의 1/4만 장악하면 사두 해먹기 딱 좋습니다. 양아치들이나 장돌뱅이 수준에서 놀면서 자기들이 활터의 주인인 양 착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전통의 계승자라는 어이없은 자랑을 남들에게 해댑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을 익히 아는 주변사람들이 활터에 활 배우러 올 리가 없지요. 활터가 자꾸 수준이 낮아지는 이유와 사회의 상식로부터 고립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사범이 무식하면 저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활터를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전국의 활터 소식을 돌아보면서 문득 30여년 전에 만난 그 대학 친구 생각이 나곤 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느 분야의 미래는 교육에서 이루어지는데 무식한 사범들이 주먹구구 지식으로 활터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활터는 스스로 망할 조건을 착실하게 다져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적어서 사범은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웃기면서도 절망스러운 것은, 오늘날 활터에서 6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고등학교 졸업자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슬픈 일이고, 활터의 미래가 절망스러운 이유입니다.
1960년생인 제 친구들의 대학진학률은,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25% 내외였습니다. 10년만 더 거슬러가서 1950년대 생들은 어땠을까요? 그때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지역의 중학교를 잘 살펴보십시오.제가 충남의 음봉중학교 출신인데, 3회로 졸업했습니다. 그때는 삽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맨날 땅고르기를 했죠. 그런데 읍을 빼고는 면 단위의 중학교는 거의가 그 무렵에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등학교 갈 무렵에 고등학고 입학시험이 없어졌습니다. 박지만이 1960년생입니다. 바로 이 세대가 올라가면서 사회의 제도가 모두 갖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나온 분들이 학교 선생님으로 무더기 발령받은 시대가 바로 이때입니다. 1970년대죠. 그러니 여기서 10년만 더 거슬러 가면 1950년이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기이며, 이때는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 졸업생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활터에서 가장 많은 사원수를 자랑하는 세대가 어느 세대일까요? 현재 60~70대 노인들이죠. 60대가 1950년대 출생이고, 70대가 1940년대 출생입니다. 공부할 기회가 가장 적었던 세대가 오늘날 활터의 몸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활터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마치 정치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시끄러운 이유가 이렇게 보면 분명해집니다.
활터라고 해서 곱게 늙은 늙은이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활터가 시끄러운 것은, 대가리가 텅 빈 무식한 자들이 욕심을 부려서 권력을 잡기 때문입니다. 곱게 늙은 노인들은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해야 할 도리를 압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서서 망신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면 평생 반장은커녕 분단장 한 번 해보지 못한 자들은 활터에서 감투를 보면 이게 웬 떡이냐고 달라들어 덥석 물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임원이라도 하면 그게 무슨 큰 권력이라도 된다는 듯이 착각하고는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갑니다. 학력이 딸리니 무식한 대가리로는 사극이나 역사 드라마에서 보는 왕권이라도 쥔 듯이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서는 맘에 안 드는 놈들을 징계하고 제명시킬 궁리나 하는 것이죠.
민주주의 회의 경험이 없는 자들은 임원이나 벼슬을,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권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사원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짓거리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해대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라는 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봉사직에 해당하는 것임을 배우고 실천하는 게 학교 현장 아니던가요? 학교에서 봉사하라고 반장을 하지 애들한테 꼴심 부리라고 하는 건가요? 학교 다닌 분들은 아들 아실 거 아닙니까? 이런 뻔한 사실을 모르고 사두나 임원이 무슨 큰 권력이라도 되는 듯이 나대는 놈들은 학교에 다닌 경험이 없으니 그 지랄들을 하는 겁니다. 지랄이란 말이 심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쩌는지도 모르고 온몸을 떨어대는 것이 지랄병입니다. 이런 경우를 지랄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지랄이라고 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국어교사인 제가 아는 '지랄'의 정확한 뜻입니다.
사두나 임원은, 좀 무식하고 학력이 없어도 충분히 해먹을 수 있습니다. 요즘 한창 자라는 젊은 세대를 일꾼으로 곁에 두면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회의진행하고 절차를 알려줍니다. 그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범은 다릅니다. 사범은 활터의 다음 세대롤 기르는 사람입니다. 다음 세대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느냐 하는 것은 사범에 딸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임원은 몰라도 사범만큼은 제대로 교육 받은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이 글은 특정인을 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격렬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활터에서 어나는 실상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글을 읽으면서 화가 나는 분이 있으면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바로 이 글에서 지적하려는 그런 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활터를 사랑하고 활터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이라면 이 글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속으로 고까운 생각이 드는 분들은 자신이 바로 활터의 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누구를 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활터의 어이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활터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 주제까지 요약해드립니다.
그러니 적어도 활터의 임원분들께서는 사범 임명에 심사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사범은 될수록 대졸자를 임명할 것이며, 여건상 그게 안 되면 고졸자라도 확인하고서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고졸자가 없는 활터라면 차라리 사범을 임명하지 말고, 그냥 개인별로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무식한 사람에게 사범이라는 완장을 채워놓으면 5년 내로 활터를 말아먹습니다. 그러면 그 해악은 단순히 활터 하나 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궁계 전체를 망칩니다. 모든 일은 사람에게 딸렸는데, 무식한 사범은 망나니를 꾸준히 양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공감하시는 구사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큰 절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9. 진화하는 궤변 : 정간과 멍에팔
최근에 어느 분이 저에게 복사본 글을 하나 갖다 줍니다. 10장 내외인 그 글을 읽어보니 무슨 논문인 듯한데, 필자도 없고 제목도 없이 중간 부분만 복사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간에 대해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니, 그에 관심 있어 할 줄 알고 복사해온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지방의 한 활터에서 낸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라더군요. 읽어보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구해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럴 가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정간에 대한 망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인 즉슨,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른들을 존경하는 사상이 있었고, 그런 사상이 바로 정간 사상이라는 논조였습니다. 정간은 건축물의 중앙을 가리키는 전통 건축용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 벌써 1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고건축을 전문으로 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고건축 용어 사전을 완성한 김명원이라는 분을 만나서 건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이 정간 문제도 더욱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뭐, 정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건물의 가운데 칸을 가리키는 뜻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정간사상’이라니!
그런 식이면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부엌에서 생명을 살리는 사상이 존재했으니 ‘부엌사상’, 헛간에는 농기구를 보존하여 생명을 경작하였으니 ‘헛간사상’, 마구간에는 마소가 살아 숨 쉬니 ‘마구간 사상’, 뒷간에는 구더기가 들끓으며 생명을 살리는 거름 노릇을 하니 ‘뒷간 사상’! 얼마든지 만들 수 있죠.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조합입니까?
또 그 글에는 멍에팔을 전통 사법에서 추구해야 할 줌팔 모양이라고 주장하더군요. 멍에팔이 잘못된 팔을 가리키는 용어임은 벌써 만천하에 알려진 것입니다. 인천의 하상덕, 김현원, 안석흥 고문님을 통해서 벌써 20여 년 전에 확인이 끝난 것이고, 최근에 논문으로 다시 확인된 내용입니다. 팔이 접질리거나 다쳐서 똑바로 펴지지 않고 소의 목에 거는 멍에처럼 구부러지는 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궁술』에 나오는 ‘앞죽이 둥글어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여 이것을 멍에팔이라고 알아듣고 그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접장부터 정간사상, 멍에팔에 이르는 황당한 주장들을 쫓아가다 보면, 일관된 공통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그 전에 나온 주장이나 사례에 대해서는 일체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은 내용과 골라 보고 싶은 내용만 골라 듣고 일관되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활터의 아름다운 풍속에 혼선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당황할 때 자신의 할 몫이 나타나기 때문에 누군가 끊임없이 재를 뿌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런 재 뿌리기에 현혹되는 것은 국궁계가 스스로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이고, 그것을 걸러들을 만한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제 복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재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도 그 무식과 용기가 참 안타깝지만, 그런 궤변에 놀아나는 국궁계의 수준이 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0.민간사정연합회 구상
활터가 과녁 맞추는 오락장이나 체력을 단련하는 체육시설이 아니라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남으려면, 그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활터의 존재구조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바탕 위에 서있습니다. 즉 자치단체가 우두머리를 스스로 뽑는 사회구조 하에서 그 자치단체의 소유물을 사용하는 활터 사람들의 운명 또한 우두머리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그 우두머리는 일반 시민들이 뽑습니다. 서울 석호정이나 살곶이정, 성남 한성정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소유물로 존재하는 활터는 하루아침에 용도 변경을 할 수 있고, 운영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이런 운명을 벗어날 활터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재산을 갖추고 독립한 전주 천양정이나, 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황학정 같은 경우만이 자신들의 생존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나머지 95% 이상인 활터들은 대부분 그 소유가 지방자치단체입니다. 따라서 시민의 뜻에 따라 뽑힌 단체장이 시민의 이름으로 활터를 닫거나 쓰임을 바꾸면 아얏소리 한 번 못하고 내줘야 합니다. 그러면 활터의 전통이고 뭐고 남지를 않습니다. 이런 위태위태한 상황에 활터가 놓였음을 모르고 있는 것은 활터 사람들 자신뿐입니다. 이 무식의 극치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습니다. 활터 건물에다가 <대한궁○협회 ○○정>이라는 현판을 버젓이 내건 지금 국궁계의 상황을 보면 길바닥에 내쫓긴 다음에나 자신들의 운명이 어떠했던 것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온깍지궁사회에서는 한 번 농담처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농담처럼 했지만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이런 위태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활터를 한량들 스스로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주 천양정의 경우, 재산이 활터 소유입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활터의 재산을 활량들이 스스로 소유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돈으로 설립하는 방법도 있고,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운영의 공정성을 기하는 방법도 있고, 최근에 활성화된 협동조합의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방침에 따라서 진해에서는 활량들 스스로 돈을 모아셔 마련한 활터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지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활터를 문화공간으로 인식하여 전통을 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존재하는 활터들끼리 교류하여 가칭 '민간사정협의회'를 꾸려서 지방 자치단체 소속의 활터와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간 선거라는 태풍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질 대부분의 활터 운명을 비켜갈 수 있습니다. 태풍이 비켜간 그 자리에서 우리의 5천년 전통문화는 꿋꿋이 지켜져 송이버섯처럼 값진 생명을 영원히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 활쏘기의 꽃은 오직 민간 사정의 구조에서만 활짝 피어날 수 있습니다.
11.전환기를 맞이하여
활터는 전대미문의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개량궁이 활터에 정착했고, 입승단 제도가 활터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으며, 대회가 활쏘기의 존재이유인 것처럼 둔갑했습니다. 이런 변화야말로 불과 20여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활터에 광풍처럼 몰아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광풍인지도 모르고 달려갑니다. 이것이야말로 활터가 전환기를 맞았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활터가 어떤 공간인가를 좀 더 분명히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궁의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활터는 점차 사회로부터 고립되며 단순체육 종목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활터가 체력단련장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의 활쏘기는 앞에 '전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자격이 없습니다. '전통'이 거북할 수 있지만,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협회의 이념이나 방식을 무조건 활터에 강제하여 수백 수 천 년의 전통을 압살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환기의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이고 주제입니다.
첫댓글 절대 동의합니다~
활터 문화의 변화와 그 의미를 알수있게합니다. 활터의 전후가 훤히 보입니다. 내공 없이 쓸 수 없는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저도 그말씀을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뭣이 중헌지 모르는 양궁처럼 쏘면서 국궁을 한다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