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지도 외 1편
박은석
장마, 이상한 지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토를 확장하는 능력으로 보아 전쟁의 달인이 새로운 영토를 왕으로 등극했거나 배고픈 들소 떼를 풀어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요하게 번지는 영토가 있다
물의 영토는 물의 지도. 모서리마다 출현하는 신세계들, 저 신세계들에선 새로운 시민을 구하지 않을까 말만 잘 하면 한 방울의 영토를 뚝 떼어 줄지도 모른다
벽에 아직도 지도가 되지 못한 황무지들이 많다. 위에서 흘러내리는 지도에는 공중의 틈이 섞여 있다.
흘러 넘친 어떤 신이 새로운 신세계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헌법이 생기는 소리, 연설하는 소리 누구든지 신세계의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이 세상, 구속도 없는 분주한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사람은 이주 계획을 세운다.
장미 넝쿨 무성한 이파리들로 초록 담장을 만들고 물의 지도를 따라 한걸음씩 내딛는다. 어떤 세상의 지도도 다 집안에 있다는 사실에 눅눅한 자세를 뒤척인다. 이제 진정한 신세계의 주민이 될 수 있다
앞자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 노인의
품 앞에 놓인 작은 앞자리
지금은 너무 작아졌거나
텅 비어버린 앞자리
그러고 보면 모든 엄마들 앞엔
저렇게 빈자리 하나씩 있다
이리 와서 앉아라,
앉아서 핸들의 방향을 배워라
너는 내 앞을 빨아먹고 자란
앞자리
점점 앉았던 자리를 버리며 어디까지
달려갔다 돌아올 거니
방향이 익숙해질 때까지
내 앞자리에서 앉아 있거라
지금은 각자의 핸들이 생긴
작은 앞자리였던 그들에게도 생기고 있는
앞자리
푸른빛을 달고 달리는
때론 구름 속으로 흘러
누군가의 심장으로 급커브 꺾으며 들어간
빈자리 하나씩 달고
할머니들 걸어간다
여전히 품을 것이 남아서
허리 굽혀 안고 가는 저 앞자리들
박은석 광주 출생. 2015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