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기
탕평책을 구가하던 조선 영조도 당색에 빠져, 제 아들 사도세자마저 뒤주에 넣어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자라 왔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도, 우암 송시열도 자기의 상대는 정적으로 몰아 멸족을 시키기나 멸문케 했다는 기록들을 보면서 맹자의 성선설보다 순자의 성악설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게 민족의 본태성이 아닌가 싶다. 조선 사화가 그러했고 여의도 어느 구석도 날만 세면 편할 날이 없기는 예나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호남에 있는 한 서원을 들렸더니 춘추로 제물을 장만하는 부녀자들이 쇠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다지면서 ‘정철’ ‘정철’하고 칼질을 한다는데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그 후손들의 부인들도 그러할까 싶다.
대원군은 이런 폐단을 없애고자 전국의 47개 서원만 남기고 400여개는 훼철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무슨 영문인지 자치제와 관련 대학연구소가 작당해 ‘문화재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에 눈이 멀어 서원과 제실, 제궁을 새로 세우고 복원한 것만도 1천여 개에 달한다.
‘한국사람 만들기’ 책 한 권을 빌렸다. ‘내가 누구인가’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사람’에서 벗어나 ‘대한사람’이 되었으니 ‘대한사람 만들기’ 즉 ‘한국인 만들기’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여야로 갈라지고 지정학적으로는 동서로 나눠지고 이념적인 이유로 좌우 대립으로 그리고 제 특성과 이익에 맞게 친중파, 친일파, 친미파, 친북파, 민족파’로 갈라져 살고들 있다.
유학(儒學)을 숭상하는 친중파는 천주교와 일본의 제도와 사상을 '삿된 세력’으로 규정하고 오직 명나라 섬기듯 중국을 흠모하고 있다. 그래야 제 조상의 팔자걸음도 양반 가문의 행색인양 자랑하며 사는 부류이다.
1868년 대구 만촌동 全모 집에서 발견된 명동제현수결맹첩(明洞諸賢修稧盟帖)에 구전으로 전해 오던 ‘大明14賢’과 그들의 인적사항과 결사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明字를 돌림자로 호를 지어 明洞主人, 明巖居士 明湖散人 明崖病瘦, 明川漁子, 明塘居士, 明樓老瘦, 明圃老人, 明谷幽人, 明窩隱士, 明嶺處士, 明野逸民, 明溪學士, 明月散人이라 하고 청나라의 백성임을 거부하고 오직 중화의 맥을 이은 명나라 백성임을 표방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자칭 숭정처사(崇禎處士)라 부른다. 그 후손들은 대구동촌유원지 부근에 경현당(景賢堂)이란 재실을 건립하고 지금도 춘추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결국 친중파로 자처한 셈이다.
친일파는 조선후기에 일본으로 유학한 이들로 개화 문명의 방식을 받아 산업발달에 주도적 역할을 해 철도를 깔고 학교를 세우고 전차를 놓자 신기하였다. 더욱이 전기가 들어오자 놀라 자빠진 숙맥들은 일본의 식민지로 한 세기를 살았던 부류들이다.
친미파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유학파들이 학계, 의료계, 언론, 문화계 종교계에 영향을 미쳤다. 6.25사변 때는 물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다.
친북파는 러시아로 유학 간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빠져 반상의 차별적인 대우를 없애고 공동으로 토지를 분배해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월북하거나 인민공화국의 주체사상을 추종한 인간들이고 민족파는 샤머니즘과 민적 계열 신흥 종교를 앞세워 활동하고 있다. 결국 한국 사람들은 이 다섯 파들이 밧줄처럼 꼬여 지내고 있는 셈이다.
수명이 길어지자 늙은이들과 퇴직한 이들은 자기 적성이나 취미에 따라 ‘공짜파’ ‘신한국파’ ‘도서관파’ ‘답사파’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공짜파’는 무료급식소, 건강의료기기, 축제 등 공짜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한 건하려 나선다. 그중에 ‘고급 공짜파’는 전시장의 개막일이나 개업하는 업소를 찾아다니며 초청자처럼 으스대다가 선물도 챙기고 차린 자리에 젓가락질을 한다.
신한국파는 퇴직한 후 배운 악기연주로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부류이다. 경제사정이 좀 된다 싶으면 단체복을 주문해 입고, 거리악단으로 자처하는 이들이다. 도서관파는 로비를 차지한 노인네들과 달리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온풍기의 혜택을 누리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빌려 읽거나 강좌에 참여하여 하루를 때운다. 답사파는 아침만 먹었다 하면 건강을 앞세워 어디든 나선다. 좋은 자리 만나면 한잔 걸치고 여성들이 끼는 날이면 그게 대박이라 입들이 헤벌쭉 하단다.
요즘, 가진 것 없었던 늙은이들의 신수가 훤해 졌단다. 나라 곳간이야 비든 말든, 통장에 입금되는 날이면 은행 출입에 잦다. 소공원마다 화투판으로 둔갑한지 오래고 술판이 다반사다. 대량으로 거지들을 생산해 북조선과 균형을 맞추려는 모양이다. 하기야 늙은이만 그러할까 삶이 좀 넉넉해지자 비만 어른들도 흔해 졌다. 제 체격이 표준으로 아는지 한손엔 커피 들고 한손엔 주전부리를 들고 곰처럼 어슬렁거린다.
춘천에 산다는 탈북자인 한 약사는 ‘북쪽에 돈 좀 펴주고 전쟁 안 나면 그만이지.’ 한다는 말에 머리까지 화가 치민다고 한다. 북쪽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늘 동해 쪽으로만 날아가니 서울은 사정권 밖이라고 착각한 얼간이들이 비일비재하다. 대통령도 그렇고 장관도 그렇다. 이들만 그러할까? 공산주의 국가 몰락도 신생국의 탄생처럼 떠들어대니 얼빠진 자들은 베트콩이 베트남을 점령한 후 베트남이라 부르니 베트남이 베트콩에게 승리한 줄로 착각한다. 생각이 얕은 자들은 베트남도 공산화가 되더니 잘만 산다고 시부렁댄다.
하나 조선시대처럼 죄목, 함부로 덮어씌우지 마라. 동서분열, 좌우대립, 빈부격차, 남녀갈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학력도, 학위도, 수시전형도 그들만의 잔치이다. 영문도 모르는 숙맥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사기를 쳐도 능력이고 위증을 해도 능력이다. 염치도 체면도 없는 것들이 독사 대가리처럼 쳐들고 다니는 꼴들이 역겹다. 혹 이게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의 실상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래도 나는 죽으나 사나 애국가 가사처럼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며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
첫댓글 나는 어느파에 속할까를 한 참 생각해보아도 모르겠습니다...죽도 밥도 아닌 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