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핵심기조는 고성장 포기와 물가안정이다. 정부는 그간 외국돈값을 높게 유지해왔다. 외국인들이 외국돈을 조금만 내고도 우리나라 물건을 사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나, 우리가 외국에서 물건을 사올 때는 우리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수입물가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러니 높은 외국돈값의 혜택은 수출하는 대기업 몫이요, 그 피해는 높은 물가를 감당해야 하는 서민몫이었다. 이런 서민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던 정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물가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나보다.
이외에도 주택거래활성화대책을 축으로 하는 부동산대책, 소비를 끌어올리는 내수대책, 대출을 어렵게 하는 것을 축으로 하는 가계대출 대책,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 및 교육 지원방안을 축으로 하는 사회안전망 대책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번 대책들은 서로 모순되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점들이 많다. 가계부채 대책은 은행에서 돈 빌려주기 어렵도록 한 것이다. 돈 없이 어떻게 내수가 활성화되나. 소득이 올라야 부채를 갚을 텐데 소득재분배 대책 없이 가계부채가 줄어들까. 가게부채의 절반은 자영업자 몫인데, 자영업자 활성화 대책 없이 가계부채대책이 효과 있을까. 물가를 잡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는 날 버스와 지하철 요금 인상을 허용했는데, 이런 모순은 또 뭔가. 물가불안의 원인은 고환율인데 환율에 대한 언급이 없는 물가대책이 다 무슨 소용인가. 물가불안의 또 다른 원인은 돈 찍기 남발이다. 물가 잡으려고 돈의 양을 줄이면 금리는 오르는 법인데 은행더러 낮은 고정금리를 유지시키라고 말하니 이게 또 웬일인가. 부동산 대책은 여전히 공급확충만을 부르짖고 있고, 전월세 대책은 세입자가 아닌 임대사업자에게 세금혜택 주겠다는 것인데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지금 이미 서민들은 높은 외국돈값과 돈 찍기가 초래한 고물가와 가계부채로 인한 원리금 상환 압박, 그리고 부자들에 대한 돈의 편중으로 이래도 저래도 죽을 지경에 놓여있다. 이를테면 고물가에서는 줄어든 실질소득으로 힘들고, 물가를 잡는다고 돈의 양을 줄여 고금리가 되면 부채이자에 시달린다. 서민들은 이를 직시하고 스스로 힘든 시대에 대비할 수밖에 없단 밀인가.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려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우리 경제문제의 핵심은 돈이 특정계층에만 몰려있어서 서민들이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몰려있는 돈의 분배를 말하지 않고 물가를 잡겠다고 돈의 양을 줄이면 돈 구경을 못하게 되는 서민만 죽는다. 돈의 분배를 위한 선결조건인 부자감세의 철회가 이번 정책에 들어있지 않다. 결국 맹탕 정책을 발표한 셈이다. 서민들에게 쓸 돈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서민소득 증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한 일자리 정책은 기업들에게 고용창출 투자를 하면 세금혜택 주겠다는 것으로서 역시 기업에 대한 보살핌인데, 이게 과연 진정으로 서민들의 쓸 돈을 위한 정책일까. 현 시점에서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정책은 사회안전망이 우선이라는 정부의 인식도 문제다. 서민소득증대를 도외시하고 의료 교육 지원방안이나 강구하겠다는 정책은 경쟁위주의 방향을 시정할 생각이 여전히 없음을 시사한다. 사회안전망이야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지만, 그에 앞서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더 중요한 과제다.
결국 현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 정책은 핵심을 벗어난 헛 정책이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경제회복의 거의 유일한 비책인 서민소득 증대 정책으로 돌아오라.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