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제한된 공간의 사람을 동시에 모두 부자로 만들 방법은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 ‘외부와 단절된 공간의 사람을 동시에 모두 부자로 만들 방법은 없다.’ 특정한 시각에서 볼 때 제한된 공간의 부의 양은 일정하므로, 누군가가 부자가 되면 다른 누군가가 가난해진다. 100포기의 배추밭에서 마음대로 배추를 뽑아가라고 할 때 누군가가 많이 뽑은 그 만큼 다른 누군가는 덜 뽑을 수밖에 없다. 각자가 아무리 열심히 배추를 뽑은 들 뽑아간 배추양은 결코 100포기를 넘을 수없다. 이게 바로 변동한 부의 합은 제로라는 ‘제로섬’의 법칙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사기를 치며 국민들을 닦달한다. 열심히 배추를 뽑으면 배추를 더 가져갈 수 있다고.
절망인가? 아니다. 100포기의 배추밭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돌파구가 있다. 옆의 배추밭에서 배추를 뽑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글로벌화’다. 자기 나라 안에서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 수없으니 다른 나라로 마수를 뻗친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FTA를 하자고 그렇게 요란을 떠는 거다. ‘우리배추만으로는 안되겠으니 한국배추도 뽑아 먹자.’ 이게 FTA 정신이다. 너도 나도 남의 배추 뽑아먹기에 나서면 부자가 될 것 같아서 FTA 찬성하고 그러는 거지만, 그 판에서는 정말로 실력 싸움이다. 우리 배추밭 지키고 남의 배추밭 배추 더 뽑을 자신이 있는가? 글로벌화는 무작정 하는 게 아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염려가 생겨난다. ‘뭣이, 낙후된 우리 호남 더러 그 어려운 글로벌화를 하라고?’ 라는 질문들이 떠올라서다. 혹여 우리 호남인들이 글로벌화에 주눅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모두들 엘리트 글로벌화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나 전문지식의 뛰어난 실력, 글로벌화에 걸 맞는 각종 기반시설, 탄탄한 국제 인맥 등의 조건을 떠올리고 지레 겁을 먹는다.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글로벌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노래 부르는 가수가 반드시 남보다 노래를 더 잘해서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새 일반인들을 상대로 노래잘하는 사람을 뽑는 방송프로그램을 보라. 가수 아닌 사람이 기성가수 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지 않던가. 기존가수들은 다른 일보다 노래 부르는 게 더 나아서 가수가 된 것 뿐이다. 가수가 자신에게 적합하여 가수를 직업으로 하듯이, 누구든지 국내에서 일하는 것 보다 해외 관련 일을 더 선호하면 글로벌화에 성공할 수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호남도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글로벌 관련 일을 선택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 모두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우리 호남은 국내의 다른 지역과의 접촉을 통해 별 이득을 보지 않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호남인끼리 열심히 일한다 하여 호남인 모두가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제로섬’ 법칙에 더하여 일을 하면 할수록 수도권으로 호남의 재산이 이동해가는 ‘네가티브섬’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이럴 때 돌파구는 역시 글로벌화 밖에 없다.
문제는 글로벌화의 방향이다. 남의 배추밭에서 배추를 많이 캐는데 필요한 실력이란 배추를 빨리 뽑는 기술이지, 배추관련 학문적 지식이 아니다. 국민모두에게 의무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세상에 나가 살아갈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수학자를 만들자고 수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거스름돈 계산이라도 해야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FTA 협상 수준의 글로벌화를 준비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글로벌화한 세상이니 각자의 처지에서 글로벌 세계를 살아갈 준비와 훈련을 거듭 거듭 해야 하는 것이다. 지자체, 대학이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