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포기했다" "결혼이 싫다"는 서울대생들…그들은 왜?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
입력 : 2014.04.15 08:28
'2014 대한민국의 결혼 비용'. 최근 서울대 내부 게시판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글의 제목입니다.
요즘 결혼식 평균 비용이 5200만원, 주택 마련 평균 비용이 2억7200만원(매매가 기준)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논문을 토대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방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서울대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학생 8000여명이 읽었고, 200개 가까운 '추천'이 달렸습니다. '비추천'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학생 8000명이 읽은 글, ‘2014 대한민국의 결혼 비용’
“이래서 결혼 포기했다”는 호응 잇따라
"이래서 제가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25살 남자인데, 사정이 이렇다면…" 등 남학생들의 호응이 이어졌습니다.
한 학생은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옛날엔 전문직조차도 월세방에서 많이 시작했다는데,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라 지금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적어 버티기 쉬웠다.
우리 세대는 최소 서울·수도권 20평 아파트 이상에서 시작해야 하니 힘들고 어렵다."
심지어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느라 대출 받고, 결혼하고 담보 잡혀서 대출 받고, 대출 때문에 직장 억지로 다니고,
직장에서 잘리면 돈 못 갚아서 신용불량될까봐 빌빌대야 한다. 그게 21세기판 노예 아니냐."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결혼이 힘들고 벅차다”거나 “결혼하기 싫다”는 글은 가끔 등장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젠 단순한 ‘푸념’ 수준을 넘어 진지하게 독신을 고민하는 서울대생이 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인 듯합니다.
최근 만난 30대 초반의 한 서울대 졸업생도 "결혼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습니다.
그는 결혼 포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980년대 초 태어나서 IMF 외환위기가 오기 전까지, 1990년대 초중반의 유년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서울 30평 아파트 한 채에 자가용 한 대씩 딸린 '평범한 가정'을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줄 알았다.
IMF 이후 어렵사리 서울대에 와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졸업해보니 그 꿈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알게 됐다."
“우리 세대는 최소 20평 아파트 이상에서 시작해야 하니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문제…“이젠 결혼도 중산층 이상에게만 허용된 ‘고급 상품’”
또다른 졸업생도 결혼에 대한 부담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즘 결혼하려면 최소 3억원은 있어야 하는 것 같다”며
“집에 여유가 있으면 1억~2억원쯤 지원받고 나머진 대출로 때우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면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젠 결혼도 중산층 이상에게만 허락된 '고급 상품'"이라고도 했습니다.
결혼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결혼을 앞뒀다는 한 서울대 졸업생이 내부 게시판에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 정말 필요한가?'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이런 변화가 잘 느껴집니다.
그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결혼은 왜 해야 할까"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이제는 농경 시대와 같이 노동력을 얻기 위해 출산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더는 번식의 의무에 목맬 필요가 없다"며 "왜 우리는 평생 한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결혼의 강제성은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기르기 위해 필요할 뿐"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 치솟는 이혼율은 이미 결혼제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난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고 결혼으로 한 사람에게 묶이고 싶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1억원 갖다 바쳐 불만, 여자는 '가사 도우미' 돼 불만인데 왜 결혼하려 하나”
한 서울대생은 이런 글도 남겼습니다. "남녀간 사랑을 느끼게 하는 화학 물질 분비는 6개월~2년이면 끝난다.
우리 부모님도 5년 이상 사귀다가 결혼했는데도 싸운다.
아이 때문에 서로 싫어도 참고 지속하는 것이 결혼생활. 남자는 5000만~1억원을 갖다 바쳐서 불만,
여자는 '가사 도우미' '시댁 노예'가 돼서 불만인데 왜 다들 결혼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결혼이 주는 장점도 많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애 딸린 3년차 유부남'이라고 소개한 졸업생은 "서로 소통만 잘 하면 싸울 일도 없고,
힘든 일을 겪을 때 곁에서 위로해줄 수 있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소수여서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묻혀버렸습니다.
서울대 교수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던 학생들이 일종의 ‘방어 심리’를 작동하는 것”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통계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20~30대 남녀 53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남성의 27.8%, 여성의 40.4%가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답했습니다.
결혼의 장애요인으론 '결혼식·주택 비용 부담'이 42.1%로 1위였습니다.
‘전반적인 경제·고용상황 불안'(34%), '직장생활 등 개인활동 방해'(14.3%),
'배우자·자녀·시댁·처가 구속'(9.1%)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 20~30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뻘입니다.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던 1970~1980년대에 출생해 IMF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1990대 초·중반에 유년기를 보냈지요.
그런 시절을 보낸 서울대생들이 왜 결혼을 기피하는 글을 쏟아내는 걸까요.
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이를 일종의 ‘방어 심리’ 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현재 20~30대의 상당수는 한국의 성장세가 이미 꺾였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던 이들이 앞으로 결혼해서 그 때만큼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는 일종의 방어 심리를 작동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