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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아무 밴드' 활동을 마치고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이장혁은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스무살', '동면', '자폐', '칼' 제목만 들여다보아도 심상이 짐작될 정도로 그의 노래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의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 그 모습은 흡사 잔뜩 웅크려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 듯 세상의 무게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햇수로 4년이 지난 2008년 말, 두 번째 앨범을 내놓은 이장혁은 여전히 삶의 고단함을 노래한다. 적지 않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둥글어질 만도 한데 그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더욱 내면으로 들어가 버렸다. 차이점이라면 들끓던 분노가 냉소로 바뀌어 다소 차분해진 정도. 이장혁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외로움은 오히려 심도가 더 깊어졌다.
신보 활동에 여념이 없는 이장혁을 홍대 상상마당에서 만났다. 실제로 접한 그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기 생각 특히 음악에 대한 고집이 명확했고, 오래도록 지속된 힘겨움과의 싸움에서 체득한 방어본능이 묻어나왔다. 그의 일상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 음악이 아니었다면 세상과의 접점을 찾기 힘들었을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을 것 같다.
2집 나오고 나서는 많이 하는 편이다. 1집 때는 레이블하고 관계가 소원해져서 프로모션이 거의 없었을 뿐이고. 그땐 거의 앨범 활동 자체가 없었다.
1집은 상당한 앨범이었다. 그런데 공백이 너무 길었던 건 아닌가. 앨범을 내고 출시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4년 반은 좀 길었다.
원래는 1년 만에 낼 수 있었는데 작업하다가 스튜디오 사정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쯤에 루비살롱 쪽과 관계가 돼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때 이미 80퍼센트 정도가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다시 손대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2008년 안에 꼭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걱정을 했었다. 1집과는 달리 접근법 면에서 혹시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생각은 별로 안한다. 자연스럽게 곡이 나오는 대로 쓰지 억지로 쓰진 않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나오면 자연스럽게 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윤곽은 이미 2년 전에 이미 거의 나와 있었고.
그럼 2006년이었겠다.
그렇다. 원래는 12곡 정도였는데 튀는 곡이 하나 있어서 뺐다.
가사 면에서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가사보다는 편곡적인 면에서 맘에 안 드는 게 있어서 바꾼 게 있다. '봄' 같은 경우는 원래 이런 편곡이 전혀 아니었다.
힘들게 만든 앨범 같았다. 작업하면서 가장 고생했던 부분이 무엇인가.
건강이다. 감기에 잘 걸려서 보컬 문제가 제일 심했다. 녹음도 거의 겨울에 했고. 제일 힘들었던 곡이 '봄'이랑 '얼음강'이었는데. '얼음강'은 거의 1년이 걸렸다. 원하는 음색이 안 나오니까. 전인권 씨처럼 나오더라.
1집은 소리의 울림이 있어서 조금 밝게 들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엔 더 우울해졌다.
그건 아마 악기가 많이 빠져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몸 상태도 많이 안 좋았다. 녹음 기한이 다 끝난 상태였는데 '봄'밖에 못하고 남아있었다. 쇼케이스 날짜를 12월 26일로 잡고 마지노선이 정해진 상황에서 마지막엔 쇼케이스는 그대로 하되 앨범 발매는 3월에 하자고 말까지 할 정도였다. 약을 먹고 주사도 맞고 하니까 목이 좀 나아서 간신히 녹음했다. 감기 걸려서 녹음한 게 느낌은 더 괜찮았지만.
아까 편곡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1집 같은 경우에는 대체로 중심은 기타였다. 이번엔 아코디언, 첼로 같은 악기를 쓰면서 애잔하고 처연한 색감이 강조된 것 같다.
1집 같은 경우는 '아무 밴드' 활동을 하면서 만든 곡이 있어서 밴드 스타일이 많았다. 2집은 2004년 발매 이후에 만든 곡이고 굳이 밴드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럼도 그래서 거의 뺐다.
2집은 변화가 거기에 있다고 봐야 하나.
사운드의 변화는 거기에 있다. 1집 때는 편곡에 욕심이 많아서 샘플도 많았는데 이번엔 심플하게 하고 싶었다.
심플한 코드, 편곡에 대한 고민. 그게 2집의 핵심인가.
그렇다. 사운드에 대한 고민은 이미 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어렵게 가지 말자.'
'스무살' 같은 곡이 좀 부족해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웃음) 아무 밴드를 하다가 지난 번 솔로 앨범 냈을 때도 그랬다. 어떻게 만들든지 그럴 것 같다.
2집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타이틀곡인 '봄'의 중심악기는 첼로와 피아노다. 원래 첼로를 쓰려고 했나.
데모는 기타로 했다. 원래는 바이올린, 첼로, 기타까지 해서 삼중주를 했었는데 아예 날려버렸다. 그리고 첼로로 다시 편곡을 했다. 건반은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작업을 같이 하던 친구가 자기가 만들어 오겠다고 해서 그냥 썼다. 앨범에서 제일 맘에 드는 곡이다.
그럼 타이틀곡도 직접 선정한 건가.
그렇다. 회사사람들은 오늘밤을 많이 추천했다. ('그날'도 괜찮지 않느냐고 묻자) '그날'같은 경우에는 앨범에서 좀 튀는 곡이지 않나. 친근감도 있고. 그게 앨범 색을 규정할 것 같아서 배제했다.
'오늘밤'에선 아코디언이 나온다. 악기 선택의 의미가 있나.
데모에서는 코끼리 사나이를 생각하고 프렌치 혼 같은 소리를 넣었는데 혼 세션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멜로디언 같은 다른 악기를 고민하다가 건반 세션하는 친구가 아코디언을 연주해봤는데 잘 어울려서 사용했다. 공연 땐 그냥 멜로디언으로 간다.
'아우슈비츠 음악가들'은 제목부터가 독특하다.
'아우슈비츠 음악가들'이란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만든 거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에 오케스트라가 있었다고 하더라. 거기서 살아남은 할머니가 계신데 그분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였다. 그 내용은 가사 그대로다. 가스실에 끌려갈 때 연주를 해야 했던 상황들. 그걸 생각하면서 만든 내용이다.
곡조가 전혀 다른 '나비'가 바로 뒤에 와서 의외였다. 배치가 의도적인가.
'아우슈비츠 음악가들'이 좀 튀는 곡인데 반해, '나비'는 쉬어가는 곡으로 만든 거다. 단순하게 가는 곡으로. 여러 가지 장난을 많이 치긴 했다. 옛날부터 사이키델릭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백치들'에서 아이들 코러스는 어떤 생각이었나.
그건 원래 동요스러운 곡을 만들려고 했다. 곡조가 뻔하지 않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던 곡이다. 따라 안 불러도 좋지만. 누구는 가스펠 같다고 하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원래는 앨범 중간에 넣으려고 했는데, 심플하게 가자는 이번 앨범 콘셉트를 잘 나타내는 게 '백치들'이라 제일 앞에 배치시켰다.
앨범 마지막 곡 '조'가 특정인인가.
조승희다.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의.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TV에서 사건 소식이 나오더라. 처음엔 막 욕하고 그랬다. 그때 흑백사진이 나왔다. 어렸을 때 사진들이 나오는데, 어느 부분이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내가 어렸을 때랑 닮은 부분이 보였다. 그 후로 기사도 찾아보고 그걸 토대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장혁의 표현세계가 관통하는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세계관이랄까, 그런 문제인데 나는 세계가, 세계 역사가, 이 세상이 폭력이나 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존재했고. 인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사랑 같은 것들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은연중에 희망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내 음악에 희망은 전혀 없는 것 같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희망은 아니고, '백치들' 가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이 힘들고 고통을 주는데 어쩔 거냐 그냥 가는 거다 그런 정서는 있을 것 같다. 갈 수 밖에 없는 것.
결혼도 했는데 아내가 뭐라고 하나.
와이프는 내 음악 싫어한다. 이승환 노래를 좋아하지. (웃음)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가야금하는 친구다. 1집에서 가야금을 연주한 친구. 이번 앨범에는 굳이 안 넣어도 될 것 같아서 가야금 연주를 뺐다.
1집에서 '영등포'란 노래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영등포는 이장혁에게 어떤 의미인가. 각별한 밀착감이 있나보다.
스무살 때 영등포에서 아르바이트로 역청소를 했었다. 그때 청소하면서 되게 많은 일을 겪었다. 말로 다하지 못할 일들을 겪어서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삶에 대해 타협적이라기보다는 비애감을 많이 느꼈다.
음반 만드는 것과 공연 중 어느 것이 더 즐거운가.
둘 다 좋다. 둘 다 힘들기도 하고. 공연은 자꾸자꾸 무대에 서고 싶다. 내 소리를 모니터할 때 되게 기분이 좋기 때문에. 앨범 같은 경우는 정말 힘들다. 힘든데, 기분 좋은 게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새로운 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잊지 못한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를 해달라. 이번 앨범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
'봄'이 그랬다. 건반도, 첼로 할 때도 그렇고. 데모는 혼자 작업하지만, 첼로를 잘 모르니까 세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럴 때 친구들이 다시 만들어온 것을 들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발견된다.
2집을 만들 때 외국 앨범이 참고가 된 것이 있나? 즐겁게 들은 것들도 좋다.
딱히 앨범 작업할 때는 아니고 평소에 여러 가지 많이 듣는다. 톰 웨이츠(Tom Wait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도 좋아했고. 특히 옛날 앨범들을 좋아한다. 최근엔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도 좋았다.
우리 가요는 어떤가?
요즘은 잘 안 듣고, 예전 동아기획 계열을 좋아한다. 어떤날, 시인과 촌장 같은.
음악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인생의 앨범들인가.
그렇다. 톰 웨이츠는 초기부터 들어보면 원하는 색깔이 어떻게 변했나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 Grace > 앨범이나 레드 제플린 4집, 핑크 플로이드 < The Wall >,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 Mama Said > 앨범도 좋다. 한국 음반은 '가시나무'가 있는 앨범, 어떤날 1집, 들국화 1집을 좋아하고.
제프 버클리 얘기 좀 하자. 외국가수들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아주 많이 다르다고 본다. 내 음악은 단순한데 제프 버클리는 단순하지 않다. 보컬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 제프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웃음)
'청춘'에는 음악가가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이 세상은 토할 듯한 노래들로 가득 차 / 나는 귀를 막고 걸어야 했어' 그게 요즘 음악에 대한 생각인가.
요즘은 아니고 청춘이었을 때 그랬다는 거다. 90년대 학교 졸업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급을 받으면 아무데나 가서 영화도 보고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 거리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만 들렸다. 그게 너무 싫었다. 요즘의 아이돌 음악도 사람들에게 나름의 즐거움은 주겠지만 난 듣지 않는다.
이 앨범을 만든 사람으로서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면.
글쎄. 앨범을 내고나서 논란이 있었다.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최근엔 잦아들었지만.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에 국한시켜서 말한다면, 나는 생선 요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대가리만 먹고서 말하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얘기인데 아우슈비츠만 보고서 얘기를 하는 거다. 그때의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겠는가 라는 심정을 담은 거였는데,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게 아쉬웠다. 지금은 그냥 모르겠다 싶다. 맘에 들면 잘 듣고 아니면 듣지 말라는 식으로.
이번 앨범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한다면.
너무 어렵다.
'청춘'이란 곡도 그렇고 1집의 '스무살'도 그렇고 이장혁에게 젊음이 갖는 색깔이 있는 것 같다. 보호색이랄까.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상처랄까.
몇몇 곡들은 그렇다.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그리워하는 건가.
그것이 지났다고 인정을 하는 거다.
만약 지금 당장 여기서 3집을 만든다면, 본인의 표현 테두리가 지금과 같을 것 같나.
그렇다. 메시지측면은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이장혁 음악은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세상과 악수를 할 가능성은 없는 거다. 악수는 해줘야 하는 거지. 결혼하고 나서 달라지지 않았냐고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럼 뭐하겠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인터뷰: 임진모, 윤지훈
정리: 윤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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