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에 단비 같은 소리,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
'가뭄에 단비'도 기쁘지만 '폭염에 단비'도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108년 만에 최고라는 올 여름 무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비가 밤새 내렸습니다.
연일 30도를 가뿐히 넘던 낮 최고기온이 30도 밑으로 떨어졌으니 이제 찰거머리 같은 폭염도
다가오는 가을 품으로 빨려들어가는가 봅니다.
호된 더위가 물러가고 우리 곁에 다가오는 선선하고 풍요로운 가을을 위한 마중물인가요?
어제(25일)는 가곡 마을에 아름다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늘 가곡마을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 선생님이 손수 곡 해설을
해 가면서 진행된 한시간 반 음악회는 바이올린 선율의 진수를 만끽한 자리였습니다.
두 곡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와 우리 귀에도 낯익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고 바이올린의 귀재였던 크라이슬러의 소품 '아름다운 로즈마린'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까지,
클래식 음악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약했던 세 음악가의 연주를
그녀의 친절한 해설과 연주를 통해서 다시 만났습니다.
혹독했던 2016년 서울의 여름 밤을 식혀주는 상큼한 선율이었습니다.
◆ 음악은 어디에 기쁨과 슬픔을 감추고 있을까?
그런데 음악은 정말 더위를 식혀줄 수 있을까요?
혹은 추위를 막아주고 우리 몸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만일 그런 효용이 실재로 있다면 그 효용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작곡가의 마음 속에 있었나요? 그가 그린 오선지의 음표와 리듬과 멜로디와 화성에 있나요?
연주자의 손에 있나요? 악기에 내재하고 있나요?
아니면 듣는 청중의 마음 속에 있나요? 아니면 이 모든 것에 골고루 숨어 있나요?
늘 음악을 들으면서 저는 이런 궁금증에 빠지곤 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모차르트가 한창 어여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작곡했다는 G장조의 소나타는 한없이 유쾌하고 발랄하게
들렸지만, 모차르트가 끔찍히 사랑했던 어머니가 위독할 때 작곡했다는 단조의 소나타는 정말 슬프게
들렸습니다. 사랑을 노래한 크라이슬러의 소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슬픔>은 단조였고,
<아름다운 로즈마린>과 <기쁨>은 장조였습니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장조였습니다.
그렇다면 장조는 기쁘고 힘찬 반면, 단조는 슬프고 우울하게 들리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지요?
◆ 플라톤과 칸트 피타고라의 생각
우선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떠올리게 됩니다.
서양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플라톤의 사유에 따르면, 기쁨 혹은 슬픔의 이데아는 있는 것이고,
그 이데아를 모방한 인간의 다양한 욕망, 감정이 있고, 자연의 소리 역시 어떤 것은
기쁨의 이데아, 슬픔의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입니다.
플라톤 식으로 생각한다면, 장조는 원래 기쁨의 이데아에 가깝고, 단조는 슬픔의 이데아에 가까운 것이니
조성 자체에 슬픔과 기쁨의 원인이 내재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서양의 인식론과 경험론을 종합했다는 철학자 칸트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합니다.
그는 '진선미'란 자연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이성과 오성이 선험과
초월론적 감각을 통해 바라보는 '인식형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자연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선함, 기쁨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는데, 인간이 선험적으로 지닌 이성과 오성이라는 범주를 통해
이런 인식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지요.
칸트의 주장이 맞다면 장조와 단조는 원래 기쁘고 슬픈 것이 아니라, 장조를 기쁜 음색으로,
단조를 슬픈 음색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틀(범주)'이 있고, 그 마음을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개인 혹은 집단의 문화, 정서, 가치관 등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조성은 없지만 아리랑을 들었을 때 한민족은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지 모르지만,
아리랑이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고통과 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듣는다면 구성지게 들릴까요? 궁금합니다.
혹은 장조의 음악을 느리고 약하게 연주한다던지, 단조의 음악을 빠르고 힘차게 연주한다면
기쁨과 슬픔의 느낌은 뒤바뀔까요?
청중이 공교롭게도 기쁜 일이 많았던 날 듣는다면 단조의 음악도 유쾌하게 들리고,
왠지 우울한 날 듣는다면 장조의 음악도 처량하게 들릴까요?
이래저래 궁금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사고를 당해 특정한 능력이 비상하게 발달한 사람, 이른바 '서번트 증후군'
을 소개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폐아였던 한 청년은 도, 레, 미 같은 음표를 듣거나, 어떤 멜로디나 화성을 들으면
구체적인 숫자가 연상되고, 또 색깔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는 파란 색에 숫자 3 이런 식으로요
신기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습니다.
정확히 음악을 듣고 느끼는 희노애락과 같은 복잡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음악에는 분명 인간의 영혼과 감성,이성을 뒤흔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본질을 '수(數)'에서 찾으려고 했던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의 궁극 목표는 우주의 질서,
즉 신성(神聖)을 찾아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우주가 질서와 균형 조화를 이룬 완벽한 존재이고,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신성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비물질에 가깝고, 어둡고 무겁고 추악한 것일수록
물질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영혼은 신적인 것이고 비물질적인 데 비해, 육체는 추악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됐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이 우주의 질서와 리듬, 그리고 소리가 투영되는 예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이야말로 미술이나 조각 등과 달리 전혀 물질성을 띠지 않는 것인만큼
가장 신적인 것에 가까운 최고의 예술로 존중받았습니다.
실재로 그는 음악에서의 높낮이나 길이가 소리와 갖는 상관관계를 기하학적으로 입증하고
음계를 만든 최초의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음악과 과학 종교는 모두 신적인 것을 찾아가는 신성한 행위였고 그 본질과
궁극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피타고라스의 이런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울할 때, 흥분될 때, 슬플 때, 삶의 의욕이 없을 때 음악은 저를 위로해주고 붙잡아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가장 큰 동반자입니다.
기쁠 때, 교만해지려 할 때, 욕심이 들끓으려 할 때 저를 꾸짖어주고 가라앉혀주고
겸손해지게 하는 가장 큰 스승입니다.
◆ 음악, 나를 위로하고 이끄는 가장 큰 스승
어제 음악회에서 제가 받은 것은 위로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장조이던 단조이던 김민희 선생님과 동료 피아니스트 (이름을 잊었습니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기쁘고 아름다운, 그리고 슬프고 아름다운 모든 연주를 들으면서 내내 이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았습니다.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느라 굵은 땀방울을 한됫박은 흘리셨을 두 분께
감사합니다.
연주도 버거운데 해설까지 곁들이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일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한가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이토록 풍성하게 차려진 음악의 성찬에 참석해주신 분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음식은 남아돌았지만 음악의 속성이 그렇듯 보관이나 저장은 불가능했습니다.
살인적인 무더위가 가곡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았을 테지요.
김민희 선생님께서는 청중 곁으로 다가가는 이런 해설 음악회를 가을에도 하신다니
그때는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이 풍요로운 음악의 식탁에 앉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남김없이 이 풍성한 접시를 싹싹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기쁨과 한 개의 슬픔, 그리고 세 개의 아름다움으로 이번 폭염은 물러갔습니다.
아듀! 2016년 여름~~~
- 여의도에서 KBS 해설위원 임병걸 合掌
첫댓글 어제 가곡마을 나음아트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피아노 박종관) 유럽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이 불볕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아주 시원하게 해주었었는데 오늘 KBS 임병걸 국장님이 올려주신 후기를 또 읽으니 정말이지 아듀! 2016년 여름~~~ 라는 표현이 절로 나옵니다 이해가 쏙쏙 되는 해설과 멋진 연주, 읽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음악회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음악 전공자가 아니기에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은 많지 않지만 삶자체가 음악속에서 살다보니 행복함과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걱정거리일 수 있는 일도 죽고 사는 일 외엔 큰일이 아닌 듯 느껴집니다
음악의 힘은 참 위대하고 보약중 보약입니다 많이들 감상하러 오세요
음악은
인간의 신체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고귀한 영혼을 가장 아름다운
[듣는 오로라]로 표현하는 쥘 수 없는
꿈의 현실같은 것이다
격정적인 템포의 최후엔 인간의 노동과 헌신의 땀냄새가 묻어있고
평온한 지식의 숲을 걷는 더딘 걸음의 템포에는 어머니 품속에 잠든 아기의 숨결소리가 들려온다. 이처럼,
희ᆞ노ᆞ애ᆞ락ᆞ 과, 생ᆞ노ᆞ병ᆞ사ᆞ가
음악안에 있고
또한 음악으로 표현되는것은 경이롭지 않은가
지식의나무 끝에 달린 지혜의 열매는
필요한 사람의 것이다
"삶의나무 끝에 달린 순수함 이라는
열매는 인간의 마지막 남은 양심의 감성이요,
음악의 자비다"
(단비같은 후기 감사 드리며 가곡마을 훈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