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스쯔끼라는 악질 고등계 형사가 나오는데요, 이 자는 수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량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정말 보면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입니다. 주인공인 하림 역시 스즈끼에게 가족들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요. 스즈끼는 하림 역시 엮어 넣으려고 계속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하림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미군 특수부대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합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림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림은 어느 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한 겁니다. 눈이 돌아간 하림은 뛰어가 스즈끼의 멱살을 잡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멱살을 잡힌 스즈끼는 부하들을 시켜 하림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림은 무력하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즈끼는 침을 뱉듯 말합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여명의 눈동자"에서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친일파는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지 않고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두드려 맞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군정을 뒤에 업은 이승만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파를 모두 흡수합니다. 세상이 뒤집히고 처벌이 될까 두려워 덜덜 떨던 조선총독부의 관료들, 경찰들은 살기 위해 이승만에게 가서 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의 살 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빨갱이가 쳐들어온다, 빨갱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우리가 빨갱이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렇게 친일파는 식민지 시대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건국의 공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승만 독재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그러나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에게 다시 살 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박정희의 공화당에 투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자신이 일제 시대의 친일파입니다. 일본 육사 졸업하며 천황한테 혈서 쓰고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공인받은 자이니까요. 그리고 박정희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국회? 그까짓 거 필요 없습니다. 해산시켜 버립니다. 밤마다 비서실장 시켜 여대생들 바꿔가며 밤 문화를 즐기다가 1979년 10월 26일, 그날도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 총에 맞아 죽습니다.
친일파에게 다시 위기가 왔습니다. 아, 이놈의 위기는 잊을 만하면 옵니다. 그러나 또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한 겁니다. 친일파들은 이제 기꺼이 전두환의 품에 안깁니다. 1980년 5월 18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총질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지들끼리 모여 지들끼리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박정희 때에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전두환의 민정당을 구성합니다.
1987년 6월. 또 위기가 옵니다. 전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니들끼리 뽑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고 주장합니다.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선물하려던 전두환은 어쩔 수 없이 이에 굴복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역사적인 선거가 시작 되었습니다. 친일파들은 긴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왔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싸우다 후보단일화를 못해 표를 갈라 먹은 겁니다. 결국 노태우가 35.9%의 득표율로 턱걸이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친일파는 또 살아남았습니다. 아, 미칠 노릇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결심한 김영삼은 마침내 노태우에게 항복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3당 합당을 하여 민자당을 만듭니다. 유일한 민주화 세력이 된 김대중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팔아넘기고, 양심을 팔아넘기며 친일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김영삼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이라고 바꿉니다. 그리고 나라를 하나하나 말아 먹다가 1997년 IMF 사태를 일으킵니다.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수 많은 회사들이 망해 넘어 가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소주병을 들고 한강에 뛰어 내리고 목을 맸습니다. 신한국당은 슬쩍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고작 당 이름을 살짝 바꾼 것만으로 나라를 부도 상태로 몰아 넣은 그들은 대선에서 약 40%의 득표율을 기록합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티끌만한 차이로 마침내 김대중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뤄냅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러나 5년만 참자고 다짐합니다. 5년 동안 열심히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스즈끼가 하림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듯,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무조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 붙이는 겁니다. 그러나 5년 뒤 선거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노무현에게 또 패합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다시 5년 동안 빨갱이라고 몰아붙입니다. 경제가 망했다고 외쳐댑니다. 서민 경제가 파탄이라고 외쳐댑니다. 마치 IMF를 김대중이 일으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어날 지경입니다.
어쨌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파 명부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친일파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정치적인 탄압이라고 마구 훼방을 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 라이트가 결성됩니다. 그냥 상대방을 빨갱이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아예 맞불을 놓습니다. 식민지시대가 좋은 시대였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친일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죠. 통계 자료들을 가져와 식민지시대가 이렇게 경제 발전이 된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마침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뉴 라이트는 새로운 정부의 각료로 곳곳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를 근대화 시대로 바꾸겠노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들이 권력을 놓친 시기는 딱 지난 10년간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일제때 일본이 우리나라 근대화(공업화인지 기억에 없지만)에 공헌을 했다고 하는 뉴스(아무 뉴라이트였던가?)를 듣고 웃고 말았는데 정말 무섭게 실체가 숨어있었나 보네요. 그리고 친일,치미하는 양반들. 미,일로부터 얻어먹는 국물이라도 있어서 친미,친일인지 아니면 단지 감정적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제가 참으로 순진하가 봐요.
이글 전에도 한번 올라온 글인데요...ㅋㅋ.. 여명의 눈동자란 드라마가 대단하긴 했죠.. 아마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드라마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친일파에 관려된 모든 주장,근거가 다 나오는 드라마죠.. 아직 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요..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건 그 친일파 형사(박근형씨 역할)가 마지막에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고 나서, 박상원에게 하는 말이죠.. "나는 평생 경찰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다.." 뭐 이런 말을 하죠.. 이게 지금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이상한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죠...ㅋㅋ
궁금한게 있는데 아 머리가 너무 복잡하네요... 박정희가 굳이 친일파였다면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을 밀어붙였을까요?? 이 문제가 골치아프네요.. 박정희가 친일파가 확실한가요??아직도 논란거리라는데................................. 한나라당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지만.. 아 박정희에 대해서는 골치아파 미치겠네요////////////
박정희는 일제시대엔 친일파, 해방후엔 대구 시월폭동의 주도자인 박상희의 동생으로 공산동조자였습니다. 때문에 여순사건이후에 숙군대상이었습니다. 한데 박정희는 자신의 동료들 273명을 죽음으로 몰고서 일제의 만주군출신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해서 5.16을 접한 미국은 박정희를 경계하였습니다. 또한 그래서 박정희는 북조선에서 내려보낸 자신의 형인 박상희의 친구를 죽였습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만큼 한국의 현대사가 낮에는 국방군, 밤에는 빨치산 식으로 너무 빨리 정세가 바귀었던 것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기적은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지원과 월남전 파병으로 흘린 피의 대가로 쌓은 것입니다. 물론 굶주림의 역사를 깨었다는 점에서 이는 인정할 만합니다. 다만 그러한 '사회주의 경제'의 모습은 전시일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은 일본으로 하여금 남한경제를 부흥시키도록 하였던 바-<역사비평>, 1905년 카스라-태프트 밀약과 같이 대륙세력인 러시아(당시는 공산주의가 없었슴)에 대항한 아시아의 보루인 일본이 해양세력의 파트너인 미국의 대리인으로 대한제국을 강점하였던 것입니다. 해서 굳이 친일과 친미의 구분은 그리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아시아 대리인인 일본이 미국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이후였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계획이었기에 그런 중국을 차지하려는 일본과 그때에서야 사이가 틀어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은 미국의 맹방이었습니다. 결국 일제시대는 미국의 후원아래, 아니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을 배신한 탓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해서 친일파와 친미파는 똑같다고 봅니다.
지난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한나라당내의 우세는 박근혜였습니다. 단지 국민경선을 통하여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것입니다. 해서 한나라당내에서는 사실 박근혜가 다수파였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대통령이 이명박이니 친이계가 다수가 된 것으로 그러한 권력의 변동이야 당연한 것이지요.
님의 질문을 한나라당이 친일파인데 어찌 친일파인 박근혜가 되지 않았냐?라는 질문으로 생각됩니다. 해서 그간의 사정을 개략합니다. 박정희에 대한 성격의 단정은 친일과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복잡한만큼 어렵습니다. 다만 박정희가 미국에 의해 제거당했다는 사실(2004년 4월 4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9년 9월 카터는 공개적으로 박정희를 제거하라고 하였다)을 참작하시지요. ㅎㅎ
객관적인 기준이란 것이 있나요? 단지 강자의 기준이지요. 가까운 노무현의 대선승리는 하나의 드라마엿습니다. 저 자신이 그날 아침 정몽준이 노무현을 배신하는 기사를 접하고 후보를 바꾸었습니다. ㅎㅎㅎㅎ그리고 지난 97년에도 아이엠에프가 아니라면 김대중의 대선승리는 없었다고 봅니다. 삼성이 400억을 이회창에게 투자하였듯이 이회창의 승산이 높았지요. 삼성이 그냥 돈을 투자합니까? 아이엠에프가 없었다면. 힘들었겠지요, 정권교체. 20만표차이
첫댓글 우리 정치사회가 친일파를 용인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가 정치계를 움직였다는 맥락은 우리 정치사에 기록되어있나요?
넵.. 다만 국정교과서엔 없습니다. 이승만 시절 반민특위사건과 노무현시절 친일행위자처벌법에서 알 수 있듯이 친일파들이 줄곧 이 나라를 해먹고 집요하게 자기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제때 일본이 우리나라 근대화(공업화인지 기억에 없지만)에 공헌을 했다고 하는 뉴스(아무 뉴라이트였던가?)를 듣고 웃고 말았는데 정말 무섭게 실체가 숨어있었나 보네요. 그리고 친일,치미하는 양반들. 미,일로부터 얻어먹는 국물이라도 있어서 친미,친일인지 아니면 단지 감정적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제가 참으로 순진하가 봐요.
이글 전에도 한번 올라온 글인데요...ㅋㅋ.. 여명의 눈동자란 드라마가 대단하긴 했죠.. 아마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드라마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친일파에 관려된 모든 주장,근거가 다 나오는 드라마죠.. 아직 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요..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건 그 친일파 형사(박근형씨 역할)가 마지막에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고 나서, 박상원에게 하는 말이죠.. "나는 평생 경찰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다.." 뭐 이런 말을 하죠.. 이게 지금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이상한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죠...ㅋㅋ
그리고 그글에 대한 저의 답글(지역감정이라는 뜨거운 감자)때문인지 사라진 글이기도 합니다. ㅎㅎㅎ그러고 보니 그래도 87년부분은 그나마 수정이 되었군요. 쩝
맞습니다 맞고요. 이런초보적인 상식도 모르는 몰지각한 한날당지지자가 너무 많지요?
엄연한 사실이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사실이라 더 슬픕니다. 저 빨갱이 논리 경제 개발 논리는 언제까지 써먹고 서민들 피를 빨아 먹을것인지.
이강백의 <파수꾼> 이란 희곡을 보시면 빨갱이 논리에 대해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궁금한게 있는데 아 머리가 너무 복잡하네요... 박정희가 굳이 친일파였다면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을 밀어붙였을까요?? 이 문제가 골치아프네요.. 박정희가 친일파가 확실한가요??아직도 논란거리라는데................................. 한나라당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지만.. 아 박정희에 대해서는 골치아파 미치겠네요////////////
박정희는 일제시대엔 친일파, 해방후엔 대구 시월폭동의 주도자인 박상희의 동생으로 공산동조자였습니다. 때문에 여순사건이후에 숙군대상이었습니다. 한데 박정희는 자신의 동료들 273명을 죽음으로 몰고서 일제의 만주군출신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해서 5.16을 접한 미국은 박정희를 경계하였습니다. 또한 그래서 박정희는 북조선에서 내려보낸 자신의 형인 박상희의 친구를 죽였습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만큼 한국의 현대사가 낮에는 국방군, 밤에는 빨치산 식으로 너무 빨리 정세가 바귀었던 것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기적은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지원과 월남전 파병으로 흘린 피의 대가로 쌓은 것입니다. 물론 굶주림의 역사를 깨었다는 점에서 이는 인정할 만합니다. 다만 그러한 '사회주의 경제'의 모습은 전시일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은 일본으로 하여금 남한경제를 부흥시키도록 하였던 바-<역사비평>, 1905년 카스라-태프트 밀약과 같이 대륙세력인 러시아(당시는 공산주의가 없었슴)에 대항한 아시아의 보루인 일본이 해양세력의 파트너인 미국의 대리인으로 대한제국을 강점하였던 것입니다. 해서 굳이 친일과 친미의 구분은 그리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아시아 대리인인 일본이 미국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이후였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계획이었기에 그런 중국을 차지하려는 일본과 그때에서야 사이가 틀어진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은 미국의 맹방이었습니다. 결국 일제시대는 미국의 후원아래, 아니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을 배신한 탓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해서 친일파와 친미파는 똑같다고 봅니다.
지난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한나라당내의 우세는 박근혜였습니다. 단지 국민경선을 통하여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것입니다. 해서 한나라당내에서는 사실 박근혜가 다수파였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대통령이 이명박이니 친이계가 다수가 된 것으로 그러한 권력의 변동이야 당연한 것이지요.
님의 질문을 한나라당이 친일파인데 어찌 친일파인 박근혜가 되지 않았냐?라는 질문으로 생각됩니다. 해서 그간의 사정을 개략합니다. 박정희에 대한 성격의 단정은 친일과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복잡한만큼 어렵습니다. 다만 박정희가 미국에 의해 제거당했다는 사실(2004년 4월 4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9년 9월 카터는 공개적으로 박정희를 제거하라고 하였다)을 참작하시지요. ㅎㅎ
님 아이디처럼 사고의 혁명을 위해서 현대사 공부를 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텔레비젼으로는 엠비씨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왔다입니다. ㅎㅎ지금은 폐지된 프로이기에 인터넷으로 즐감하세요~
내가 보기엔 김대중 이나 노무현도 똑같더구만 머..아니 더한거 같던데..글쓴이는 너무 주관적 기준을 갖고 글을 쓰는군..
어떠한 면에서 노무현,김대중이 위에 박정희, 전두환과 똑같고 더하다는건지 자세히좀 적어주세요 심히 공감이 안되서요
객관적인 기준이란 것이 있나요? 단지 강자의 기준이지요. 가까운 노무현의 대선승리는 하나의 드라마엿습니다. 저 자신이 그날 아침 정몽준이 노무현을 배신하는 기사를 접하고 후보를 바꾸었습니다. ㅎㅎㅎㅎ그리고 지난 97년에도 아이엠에프가 아니라면 김대중의 대선승리는 없었다고 봅니다. 삼성이 400억을 이회창에게 투자하였듯이 이회창의 승산이 높았지요. 삼성이 그냥 돈을 투자합니까? 아이엠에프가 없었다면. 힘들었겠지요, 정권교체. 20만표차이
재미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딴나라당이 진짜 땅나라당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