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79]
2022. 01. 17 (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돈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물처럼 아래로 계속 흘러야 한다는···.
물도 돈도 생각도 고여 있으면 부패합니다. ‘재떨이 꽁초처럼 비우면
비울수록 깨끗한 게 돈’이라는 일본 속담도 있어요.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으로 관정 이종환 삼영화학 창업주를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자는 늘 마음을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입니다.
돈의 때를 밀어야 하고, 마음을 씻어야 교만이 씻긴다고 했지요.
2년 전 의령을 지나는 길에 그의 생가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세운 관정 이종환교육재단은 2000년 1억원 출연으로 출발했지만 그의
꿈은 원대했습니다. 재단을 설립하며 이렇게 포부를 밝혔어요.
“적지 않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장기간 고민한 끝에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결론에 달했다”라며 매년 재단 규모를 키워 이젠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백수(白壽. 99세)를 맞은 관정은 지난해 5월 성균관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전 재산의 97%에 해당하는
1조 5000억 원을 기부해 세계적인 장학재단으로 발전자요.
학위 수여식에서 관정은 “63년 동안 ‘기업은 전쟁’이란 철학으로 사업을
했고, 오직 기업 외길을 걸었다”며 “사는 동안 세계 1등 인재를 키우는
일에 한 푼 남김없이 사회에 다 바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관정재단은 매년 100억 원의 장학금을 국내외 학생들에게 지급합니다.
지금까지 지원한 장학금이 1800억 원대에 이르고 1만 1000여 명의
학생이 장학금 수혜를 받았습니다.
미국 코넬대, 듀퍼대, 서울대 등에 교수로 나간 장학생 출신이 164명,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700명에 이르는 결실을 거두었지요.
“사람이 열쇠”라는 관정의 신념이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는 經世濟民(경제)의 뜻을 알고 실천한 사람입니다. 범부나 재벌이나
死後客散去라, 아무도 따를 사람이 없으니 정승도 죽어야 진가를
알 수 있죠. 얼마나 베풀고 후덕했느냐가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정주영은 “장사꾼이 되지 말고 기업가가 돼라.” “나는 부유한
노동자”라는 말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병철도 “죽어서 입는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라며 자신의 생각과 삶을 다독였지요.
작년엔 평생을 남의 명품을 수선하며 산 80대 노인이 평생 쓰지 않고
모은 재산 12억 원을 몽땅 장학금으로 내놔 화제를 뿌린 적이 있었죠.
68년간 구두수선을 해온 명품 수선공 김병양 씨입니다.
그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한 첫말은 인생과 수선은 닮았다는 것입니다.
“수선은 순전히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직해요. 큰돈은 못 벌어도 정성을
들인 만큼은 나옵니다. 인생도 매사 찬찬히 둘러봐야죠.”
‘명동스타사’. 명품에 관심 있는 중장년층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평품
수선가게입니다. 6.25 전쟁이 끝나던 1953년, 먹고살기 위해 명동입구
한 모퉁이에서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었다는 그.
그렇게 시작한 수선업은 성심을 다함으로 신용을 얻어 70년 전통의
명품 수선집이 됐습니다. 손님 대부분이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죠.
알음알음 소문으로 지방에서도 이곳을 찾아옵니다.
오랜 고객인 제일모직 제품 수선은 지금도 도맡아 하고, 서울의 유명
명품 매장도 AS센터에 접수된 물건을 대부분 이곳에 맡깁니다.
유럽 본사에 보내면 몇 달 걸릴 일을 며칠 만에 뚝딱 해내니까요.
루이뷔통, 샤넬, 구찌, 악어백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명품을 한 줄로
세우면 어디에 이를까. 박정희 대통령 구두도 이곳을 거쳤고, 그의
낡은 수첩엔 각계 주요 인사들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평생 모은 돈을 어디에 쓸까 궁리하다 장학금을
생각했다고 해요. 자식들과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답니다. 처음에는
섭섭도 했겠지만 모두 아버지 뜻에 쾌히 따라주었다고 해요.
한평생 고생 고생하며 모든 돈을 좋은 곳에 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주름진 얼굴에 활짝 핀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그는 타고난 마음이
부자요 재벌인 사람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성심을 다해 덕을 쌓고 가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남기겠다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고 부러운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가요?
“만족은 천부적인 부요,
사치는 인위적인 빈곤이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