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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비라 원문보기 글쓴이: 어질이
가난이란 무엇인가? 그럼 부자란 또 무엇인가? 서로 나누어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이고, 자기 터럭하나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허름한 흙집에 살던 조부는
늘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서
가난한 이들에게 밥 나눠 줘
심경에 변화 일으킬 수 있으면
타고난 운명도 이에따라 변화
법당서 청소하는 소소한 일도
노력해 할 수 있다면 큰 공덕
예전에 굉장한 부자를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상사님, 제 운명을 한번 봐 주십시오. 제 운명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가 큰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관상만 보자면 그대는 돈이 많은 사람이군요.”
그리고 다시 그의 손금을 보고 말했다.
“그러나 그대는 아주 가난한 부자군요.”
그는 어리둥절해 하며 다시 되물었다.
“상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어떤 운명을 뜻하는 겁니까? 부자면 부자고, 가난하면 가난한 것이지, 가난한 부자라니요. 저는 상사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그대가 저 문을 들어설 때부터 그대의 운명을 보기 시작했소. 그대의 운명은 그 차림새에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군요. 그대의 구두는 낡아서 너덜거리고, 그대는 치약도 아까워 양치질도 하지 않는가보군요. 당신의 이런 행색에서 어디에 돈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상사님, 맞습니다. 맞아요. 이이는 정말 가난합니다. 치약도 아까워서 쓰지 않을 정도랍니다.”
내가 그의 부인에게 물었다.
“남편의 구두는 언제 산 것입니까?”
“20여 년 전, 결혼할 때에 산거에요.”
부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남편은 큰소리로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구두는 우리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산 것이잖소.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에, 당신을 감동시키려고 결혼식 이후로 일부러 이 신발만을 신는 것이오!”
남편의 말에 내가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대의 부인이 매일 면사포를 쓰지는 않는군요. 그랬다면 누군가가 신고해 부인을 정신병원에 보냈을 겁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면사포를 쓰고 있을 수 없다는 걸 꼭 집어 말해야 낡은 구두에 대한 그대의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지 알 수 있겠소?”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 남편에게 물었다.
“그대는 살면서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아주 많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지어서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그대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준 일이 있나요?”
“물론이지요. 항상 마음속으로 염불을 합니다. 모든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두루두루 제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상사님, 내세에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될 겁니다. 그때 우리 함께 중생을 제도합시다.”
“그래요? 좋습니다. 만약 그대가 내세에 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바로 보시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에 불쌍한 아이들과 가난한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대는 그대의 재산 가운데 일부를 내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보시할 수 있습니까?”
나의 질문에 남편은 갑자기 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사님, 저는 운명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마땅히 받아야할 죄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의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데,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 그들의 운명을 바꾼다면 나 역시 죄인이 되는 게 아닙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더 이상 그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대는 이미 도를 얻었고, 도를 깨달았군요.”
나의 말에 남편은 다시 말했다.
“상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이상 그대와 할 말이 없소.”
나는 그와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에게 시계를 보라는 뜻으로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상사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실은 제가 위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방금 전에 그대는 운명은 고칠 수 없는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에게 닥친 고통은 모두 자신의 업보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살면서 누구든지 병에 걸리고 죽는 건 당연지사. 그대가 말한 것처럼 만약 내가 그대의 운명을 바꾼다면 그것 역시 옥황상제의 일에 끼어드는게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가난이라고 말하는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를 최고의 대부호라고 생각한다. 그의 재산이 어느 정도 길래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애기한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할아버지가 평생을 살던 집은 방이 세 칸인 허름한 흙집이었다. 그나마 방 두 칸은 낡아서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샐 정도였다. 그런 집에서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를 왜 대부호라고 말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할아버지는 항상 형편이 어려워 먹을 것을 구하러 오는 이를 위해 대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 그리고 힘을 내서 살아가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또한 그들과 진심으로 어울리며 친구가 되기도 했다. 비록 할아버지는 겉보기에는 가난했으나 마음만은 대단한 부자였던 것이다. 이렇듯 가난과 부자는 완전히 자신의 마음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서 고생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가난한 것을 불우하다고 허풍떨라는 말은 아니다.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나는 부자다. 비록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양식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겨우 떡 한 조각뿐이지만 반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로써 마음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현실은 아주 빈곤했지만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보시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 향유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고 누구든지 도와달라고 하면 항상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었다. 비록 할아버지는 가난함속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마음속에는 이렇게 넉넉한 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절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전혀 개의치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진정 부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만약에 누군가가 수만 개의 금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몹시 인색하다면 아주 가난한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이익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한발 물러나 양보할 줄 알아야하며,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이라도 서로 나누어야 하며, 가능한 한 최대로 나누어 향유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름답고 좋은 마음과 아름답고 좋은 이치, 아름답고 좋은 공덕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 향유하면 할수록 돌아오는 보답은 더욱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자연적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부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영적인 품성을 지닌 동물이어서 어느 날 우리의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면 운명도 이에 따라서 달라진다. 바로 내가 가장 좋은 예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허약한 몸으로 항상 주위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받았다. 이로 인해 자라면서는 보복심이 아주 강하고 원수를 죽이려는 마음도 아주 무겁게 가진 소년으로 변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를 무시했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의 운명이 이렇게 뒤틀리고 심성도 어그러지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나 자신의 고통은 모두 다른 사람의 탓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조상이 많은 덕을 쌓아서 나는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기예를 배울 수 있었고, 고수들의 교화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보복하거나 살인하는 것은 하늘과 땅도 받아들이지 않을 옳지 않은 일이며, 자비롭게 구원하여 제도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이런 기회와 인연으로 나는 해탈의 도를 깨달았고 마음속 변화가 일어났으며 운명은 이에 따라서 고쳐졌다.
그대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 자비롭게 수행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한다면, 그대의 행동과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술이나 능력은 모두 고쳐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비록 아무런 재주도 재물도 없더라도 절이나 법당에 와서 청소를 하는 것으로도 도울 수 있다. 이것은 최소한 내가 노력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보잘것없는 값싼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또 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둑맞을 염려가 없는 일이니,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이렇듯 빈부귀천은 나의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법당에 나가서 청소하는 공덕은 아주 큰 것이다. 또 부처님 일에 마음과 힘을 보탤 수 있는 복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인생’중에서 (번역:권중달)
예전에 제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집집마다 다들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빌려 쓰면 되지 않겠어? 일부러 내 돈을 주고 살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돈만 아끼며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이렇게 절약해서 돈을 모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녀는 화투와 마작을 좋아하여, 간간이 번 돈을 도박으로 모두 날려 버리곤 했습니다.
나 위주로 세상 보는 습관 문제
상대 입장 살피는 노력 기울이면
환경에 굽히지 않고 향유 가능
황제에 황금을 상으로 받아도
사고 등 위기 만날 가능성 있어
복과 화는 동전의 앙면과 같아
상황이 좋든 나쁘든 평정 유지
한 발 물러나 보는 지혜 갖춰야
하지만 그녀와 이웃이었던 제 아버지는 그런 그녀가 빌려달라는 것은 뭐든지 내주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도 그다지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항상 주변 사람을 위해서 물건을 사다 놓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비록 이 물건은 나에겐 한 번밖에 필요하지 않지만, 사다 두면 혹시 다른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이 부인은 늘 저희 집에 무언가를 빌리러 왔는데, 그날도 역시 저희 집에 무언가를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빌리러 왔소?”
“국수를 해 먹으려고 해요. 국수 만드는 막대 좀 빌려주세요.”
“그래요. 여기 있소. 또 무엇이 필요하오?”
“채소를 볶을 기름도 좀 빌려주세요.”
“그러면 이 식용유를 한 병 가져가시오.”
막대와 식용유를 들고 돌아가는 그녀의 뒤에 대고 아버지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또 와서 가져가시오.”
저는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계속 이렇게 하시면 저 아주머니는 앞으로도 항상 물건을 사지 않고 빌려 쓰기만 할 거에요. 아버지께서는 그걸 바라세요?”
“얘야,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단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야지만 너희들이 장래에 부유하게 될 수 있다. 너도 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네가 도울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이 많을까, 아니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능력이 많을까?”
이것이 제 아버지의 생각이었고, 아버지의 그런 행동 덕분에 자식들은 부유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조차 없이 오히려 소처럼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당신의 자식들은 이제 자동차를 굴릴 정도로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늘 물건을 빌려가는 부인은 항상 필요한 일상용품조차 사지 않고 매번 빌려갔습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조그만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지막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과연 그녀는 이렇게 하여 돈을 모았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면, 내가 인내하거나 굽히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적응하고 향유하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심지어 생사의 갈림길에 이르더라도 평상심을 가지고 큰 사랑과 자비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현재 얻을지 잃을지 알 수 없는 기로에 놓여있는데, 오직 손해 보지 않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그대는 쉽게 인생의 말로를 향해 달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좁기 때문에 자기의 욕망에 크게 집착하고 있으며, 맨 마지막에 그 대가로 고생을 받는 것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사랑을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우리가 황제에게 관직을 받는 큰 행운과 영광에 처하더라도 너무 크게 기뻐하지 말고, 항상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황제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저에게 200냥의 황금을 상으로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것은 단지 감격한 것을 표시하기 위한 하나의 예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더욱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오늘 내게 상을 준 황제가 내일 갑자기 돌변하여 나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지금 작위와 상을 받는다 한들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의 나쁜 도적들이 내가 받은 200냥의 황금을 노리고 나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작위와 상을 받았다고 그저 즐겁게 웃으며 기뻐할 수 있을까요?
복(福)과 화(禍)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의존해 있으면서 어떤 운명에 처해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내 뒤를 좇아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든 나쁘든 언제나 최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경에서 말한 대로 인생의 법칙은 다름 아닌 ‘무상(無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기 마련인데 보통 사람들은 변화 속에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를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단지 무상뿐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언제 누가 죽을지 또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물여섯 살 때부터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생명이 있어 살아있으면 그것이 바로 승리이며, 생명이 사라져 죽는다면 그건 바로 깨달음이니, 생명의 유무에 관계없이 나는 늘 이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 실패할 염려가 없다.’
사람의 죽음이란 필연적인 것이고 화를 받고 복을 받는 것도 미리 알 수 없으니 마음 졸이며 실패와 재난을 만날까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고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간의 시련과 좌절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늘이 그대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항상 자연스럽게 평상심을 갖도록 수련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 어떻게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만 할 수 있겠습니까?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일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거나 혹은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동요하지 마라”라고 옛 현인들이 말한 것입니다. 이 말에는 진정으로 지혜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몸소 깨달아야 비로소 크게 부유하고 귀한 운명을 이어받게 됩니다.
어쩌면 그대는 바늘에 손이 찔리면 “아이고, 아파 죽겠네. 빨리 119를 불러라”라며 소리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 호들갑을 떤다는 것은 그대가 절대로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그대의 눈을 보고 작다는 둥 보기 싫다는 둥, 두어 마디 농담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대가 “너무 심한 말이네요? 심장이 벌렁거려 숨을 쉴 수가 없군요”라고 대꾸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마음의 눈이 너무 작고 수양이 너무 부족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만약 그대가 슈퍼스타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그대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대가 그 상황에서 평상심을 잃고 긴장하여 쓰러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슈퍼스타처럼 크게 부유하거나 크게 귀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일이든지 마주치게 되면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 코만 보일 뿐,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로 세 걸음만 물러난다면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면 바로 반응하지 말고 먼저 한걸음 물러나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시야와 가슴은 크게 열리고,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좇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부자가 된 몇몇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 벼락부자들의 말로는 부자가 되기 전보다 더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을 이어받을 힘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심을 유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해하려고 할까? 왜 나를 더럽히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가?’
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할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는 건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금 덩어리라도 갖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 배고파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가?’
이렇게 크고 넓게 생각하면 현재의 시련과 좌절은 거센 폭풍우 속의 작은 물결에 지나지 않고, 그 물결은 해안에 닿으면 파도로 부셔져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흔히 불가서 말하는 ‘공(空)’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공’은 수만 가지의 현상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엇이든지 용납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드러낼 수 있으며, 어떤 것도 구별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길러야 할 마음의 경지이며 또한 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힘입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인생’중에서 (번역:권중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