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별곡<464호> / 2021. 1. 15 (금) / 흐림
남의 불행이 기쁜 사람
○… 엊그제 아침 이른 시간에 전화가 왔다.
가까이 사시는 노 신부님이셨다.
노 신부님은 먼 나라 아일랜드에서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오신 신부님이시다.
20대 젊은 나이에 오셔서 80도 훨씬 넘으셨으니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으신 분이다.
“신부님, 무슨 일이세요?”
“아침 먹었어?”
“네”
“그럼 나하고 병원에 좀 가자.”
신부님은 광주의 병원에서 미사도 하시고,
환자 방문차 병원도 자주 가시길래
아마 운전을 대신 해달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차를 끌고 줄레줄레 갔더니
덩치 큰 신부님은 작은 거실 의자에 앉아계셨다.
“어느 병원에 가세요?”
“우선 장성 병원에.”
“네? 무슨 일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신부님이 평소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나 아퍼.”
신부님이 혼자 사시는 시골 집은
가파른 언덕길위에 앉아있다.
장성에 대설경보가 내려졌을 때 언덕길의
눈을 치우시다 미끄러져 넘어지셨다.
저녁 때 다치셨는데 너무 늦어 연락을 못하고
혼자 아픈 다리를 끙끙거리며
내가 일어날 아침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무릎을 다쳐 구부리지 못하시는
신부님의 양말을 신겨드리고
부축하며 집을 나섰다.
병원 정형외과 앞에는 할머니들이 몇 분
의자에 앉아 계셨다.
모두 눈길에 미끄러진 낙상 환자들이셨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방금 다쳤다는
한 젊은 아주머니는 손을
머리높이 받쳐들고 많이 아파하셨다.
엑스레이를 세장이나 찍었다.
의사는 인대가 놀란 것 같다며
간이 기브스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안아프게만 해줘.”
신부님은 통증이 심하신지
약만 지어달라고 하셨지만,
주사도 맞고, 기브스를 하고,
약도 하루치 지어서 돌아왔다.
신부님을 부축하고 외래로, 엑스레이실로,
처치실로, 원무과로, 약국으로 분주하게 오가며
불경(?)스럽게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신부님은 아프시다는데,
다리를 절룩절룩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데
이게 무슨 ‘사촌 심보’람….
혼자 기분좋다고 웃을 수도 없고…
힘을 주어 입을 꾹 닫고
심각한 얼굴로 왔다갔다 했다.
우리나라에 온 인생을 바친
노(老)선교사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이곳 장성에 자리를 잡았지만
혼자 사는게 더 편하신 그분들에게 해드릴게 없었다.
신부님의 이주민 사목에 무엇인가를 돕고 싶고,
그분들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가끔 일부러 찾아뵙고, 집안청소하고
말동무 해드리는 것 외에는 사실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신부님이 필요해서 나를 찾으시니
나로서는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남의 불행을 보고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면
그것은 선교사의 마음이 아닐까?
신부님의 무릎이 정상을 찾으려면
한 달은 걸릴 텐데….
하루 만에 기브스를 풀어버리신 성품이라
신부님을 돕는 기쁨도 며칠 안갈 것 같다.
<46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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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읽으면서 빙그레 웃어 봅니다!^^
아름다운 모습~~~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