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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프랜즈 - 인생의 궤적과 신앙(전 통치체 성원의 삶) -통치체와 제명에 관한 요약
(이 글은 핵심자료실 양심의 위기 게시물과 소제목에서 발췌인용합니다)
브루클린의 집필 부문의 시기
레이가 브루클린에 도착한 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는 노어 회장에 의해 협회의 성서사전을 편집하는 중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이 임무의 시작은, 그 당시에 이미 모아지고 있던 방대한 원고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고는 전 세계의 여호와의 증인 약 250명에 의해 분담 집필된 것이지만 , 그 집필 분담은 단지 협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할당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필자는 사전을 집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없었으며, 조사방법조차도 몰랐다. 이러한 기존원고의 적어도 90퍼센트 이상은 온전히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어서, 다시 새롭게 집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레이는 처음에 단독으로 이 사전의 집필을 시도했지만,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협회의 이사이며 나중에 통치체성원이 된 라이먼A.스윙글과 길르앗 선교 학교의 교무 주임인 에드워드 댄 랩이 이 기획에 더해졌고 그에 더해 두 명이 함께해서 모두 5명의 팀에 의해서 이 편집 작업은 계속되었다. 레이는 이 일에서 중심이 되어 많은 기사의 조사와 집필에 그 후의 5년간을 소비했다. 이 방대한 일은 1970년에, 1696페이지의 분량에 다다른 워치타워협회의 성서사전,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Aid to Bible Understanding)가 되어 결실을 맺는다. 이 사전은 그 후에 1988년 「성경 통찰」(Insight on the Scriptures)이라고 하는 , 현재 여호와의 증인이 사용하고 있는 2권의 성서 사전으로 옮겨졌지만, 그 내용은 레이가 편집한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를 단지 수정하고 많은 도판을 더했을 뿐이며, 현재 여호와의 증인의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전 세계에서 애용되고 있다. 이런 레이의 5년간에 걸친 성서 사전의 집필, 편집, 조사 작업은, 그에게 새로운 경지를 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레이의 성서에 대한 견해가 이것으로 인해 하룻밤사이 변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후 몇 년 간의 연구를 통해,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거의 없는 성경에 대한 통찰을 배워간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성서를 전후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 성서 단어의 의미는 성서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점 등을 재차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성서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원문으로부터 읽는 것의 중요성도 배워갔다. 그는 이 조사의 과정을 통해, 몇몇 협회의 가르침이 성서의 정확한 해석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연로자, 장로」와「감독자」라고 하는 항목의 집필에서는, 일세기 당시에 회중은 장로가 그룹(會)이 되어 인도했으며, 모든 장로가 감독자로 책임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1932년 이래, 러더포드 회장의 지침을 바탕으로 장로 그룹이 해산당하고 그것을 대신하여 협회가 직접 임명한 「봉사 지휘자」가 단독으로 지도한다고 하는, 그 당시까지의 협회의 제도와는 완전히 차이가 났다. 레이는 이 점을 회장인 노어와 부회장인 숙부 프레더릭W.프랜즈에게 지적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가까이 임박한 최후의 대결전까지는 이 체제를 계속해 가려는 자세였다. 그러나 수년 후에는 레이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이 제도는 변경되었고 회중은 다시 장로회에 의해 인도되게 되었다.
「연대 계산」의 항목은 27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기사였지만, 이 조사와 집필은 그리고 레이에 놀랄 만한 사실을 분명히 해주었다. 여호와의 증인교리의 근간이 되는 것 중에 하나는 1914년에, 누가 21:24에 진술되어 있는 「이방인의 때」가 종료되었고 그 해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통치를 보이지 않는 형태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의 근거가 되는 것은 다니엘 4장의 「일곱 때」가 2520년을 의미하며 그 「일곱 때」는 기원 전 607년부터 세기 시작하며 따라서 1914년이라고 하는 연대가 산출된다는 것이다. 이 607년이라고 하는 해는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왕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된 해이지만, 레이는 이 607이라고 하는 숫자가 웬일인지, 워치타워 협회 출판물에서만 나오는 뭔가 협회특유의 숫자라는 사실을, 희미하게 깨닫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점까지는 특별히 깊이 있는 조사를 한 적이 없었다. 이 「연대 계산」이라는 방대한 기사의 집필을 할당받아서, 그는 몇 개월 동안, 고대사의 문헌이나 자료를 조사하여, 어떻게든 협회의 기원 전 607년이라고 하는 해를 지지하는 역사 자료를 계속 찾았다. 그는 집필 부문의 비서를 사용해 뉴욕 내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했지만 , 협회의 연대를 지지하는 역사자료는 아무것도 발견해 낼 수가 없었다. 반대로 어떤 사실도, 느부갓네살 왕의 신바빌로니아 제국 왕으로서의 즉위가 기원 전 607년이라고 하는 연대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멸망은 협회가 가르치는 연대보다 20년 후에 일어났다는 것으로 일치하고 있었다. 레이는 , 로드아일랜드주 , 프로비덴스에 있는 브라운 대학의 고고학 교수로서, 고대 설형문자의 권위자인 아브라함 삭스 교수를 방문해 이러한 협회의 연대를 뒤집는 많은 사료에 무엇인가 문제점이 있어, 그것을 불신할 수는 없는가를 질문했다. 이 회견에서 밝혀졌던 것은 레이에 있어 정말 놀랄만한 것이었다. 워치타워 협회가 말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기원 전 607년에 함락 했다는 것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 고대의 서기들이 서로 가리키는 많은 설형문자로 씌어진 문서를, 일제히 똑같이 고쳐 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시에 레이는 협회 연대 계산이, 이러한 압도적인 사실 앞에서도 올바른 것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계속 믿고 싶었다. 그 결과, 그는 그 "연대 계산" 항목의 집필에 즈음해서는, 할 수 있는 한 이러한 협회에 있어 불리한 사료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크게 채택해 당시의 고고학 자료의 신뢰성을 흔드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협회의 기원 전 607년이라고 하는 연대를 지지하는 것처럼 쓰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통치체에의 임명
1942년에 러더포드 회장이 사망한 후에, 네이선H.노어가 제3대 회장으로서 그 지위를 계승했고 얼마 되지 않아 통치체라는 말이 워치타워의 출판물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에는 7명으로 구성된,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의 법인이사회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다음의 1955년의 「봉사자가 되기 위한 자격」책 381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써 있는 대로이다. 주께서 그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이후 몇년동안에, 법인의 이사회가 눈에 보이는 통치체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올 때까지 이 이사회는 회장아래에 있던 종속적, 형식적인 회였으며, 이사회가 중요한 결정을 회장과 독립적으로 실시한 적은 없었다.
통치체의 권위와 내부개혁의 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통치체는 오랜 세월 동안, 협회의 회장에게 종속되는 이사회였다. 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5인 위원회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변경해 , 법인과 그 회장은 통치체에 예속되어서, 통치체의 실무면에서의 필요를 채운다 , 말하자면 통치체의 도구로서 평가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생각의 기초는 이미 1971년 12월 15일호 「파수대」지(영문) 기사에 게재되고 있었다. 그러나 , 왜 그런지 부회장이자 레이의 숙부인 프레더릭 프랜즈는 이 안에 반대를 나타냈고, 그리고 노어 회장도 변혁에 소극적이어서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었다. 흥미 있는 것은 1975년 9월의 길르앗 성서 학교의 졸업식에서, 프레더릭 프랜즈 부회장이 축사 중에서 이 건에 접했을 때에 말한 일이었다. 레이는 이 부회장의 연설의 논점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부회장은 워치타워 협회가 선교사를 배웅하는 것은 어떠한 권위에 근거하는지를 논했다. 그는 협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러셀은 통치체에 따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한 후, 사도 6장을 언급하면서 , 12사도는 7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선택해 신자들의 음식분배를 돌보는 것을 맡겨 그로인해 사도들은 영적인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부회장의 의도는 , 통치체는 영적인 일 이외에는 관여해서는 안 되고 , 세속적 일은 법인에 맡겨 두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회장은 계속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있던 안티오크 회중이, 얼마나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회중과 독립해서 중요한 일을 결정했으며, 선교사를 독립적으로 파견하고 있었는지를 언급했다. 부회장의 의도는, 마치 안티오크 회중이 예루살렘의 통치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것과 같이 통치체와는 별도로 법인이,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일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예를 사용해서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졸업식에서 이 축사를 듣고 있던 레이는, 이 부회장의 논리 그 자체가 ,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 통치체의 절대적 권위를 흔드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는 확실히, 부회장의 논리는 바야흐로 성서의 기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 회중이 중앙집권적인 예루살렘의 통치체와는 독립적으로 , 예수와 성령에 근거해 회중이 독자적인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 성서에 기록되어있는 사실은,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가, 전 세계의 모든 회중을 권위를 가지고 지도해 간다고 하는 주장을, 실제로는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부회장이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는 어디까지나 법인과 그 회장이, 통치체로부터 독립된 권위를 가져야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는 이 같은 논리를 일반 증인이 사용해 현대 통치체의 권위에 의문을 갖는다면, 그는 「배교자」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레이는 성서의 동일한 말씀을, 상황에 따라서 하나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한편, 다른 상황에서는 같은 일을 반대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통치체 내부에서의 「양심의 위기」
결정은 1975년까지는 전원일치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때 이후로는 3 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견이 크게 나뉘는 경우는 드물고, 많은 경우 소수의견은 주류의견에 맞추어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이도 통치체에 참여한 처음 몇 년간은, 다수 의견에 맞추어 표결에 참가했고 많은 경우에 결정은 전원일치로 행해졌다. 그러나 나중에 말하겠지만, 그의 통치체 안에서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레이는 소수파로서 주류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는 것이 늘어갔다.
그러나 , 사실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가지 의제가 의사에 올라 심의되어 가는 과정에서 , 결국의 곳 , 궁극의 결정 사항은 , 어떤 일이 증인의 제명에 적합한 일인지 어떤지의 여부였다. 이러한 의제에 오르는 질문 사항은, 각국의 상황에 의해 실로 여러 가지이며, 방대한 수에 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심의에서 성서가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통치체의 각 구성원에게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다. 통치체성원이라고 해도, 일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집회와 봉사의 의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며, 거기에 더해 각 구성원은 몇 개의 위원회에 소속되어서, 그 중에 임무가 주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세계 각국에서 전해지는 서류의 양은 항상 위원회의 처리 능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따라서 구성원 중에는, 파수대지에 게재될 예정인 기사를 성서와 대조해 신중하게 검토하는 일도 없이, 단지 승인을 위한 표결에 참가하는 사람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호와의 증인 지도부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조직의 지도적인 지위가 올라가는데 따라서, 일의 양은 증가해가 그 결과 깊이 있는 성서연구를 할 기회가 거기에 비례해 줄어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레이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증명되고 있었다. 그러나 , 이 사실은 워치타워의 종교적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조직의 내부에 들어가면 개개인이 성서를 깊게 연구할 필요는 거의 없어지고 가장 소중한 것은 조직의 방침과 가르침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조직의 출판물을 통해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며 ,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결정적 기둥인 것이다.
비록 반대자가 성서에 대한 언급을 요구해도, 대부분의 경우 요한 15:19의 「세상의 일부가 아님」을 인용하며, 그래서 비슷한 의문은 모두 동일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같은 확대해석과 적용방법이 성서 전체 중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느냐를 , 성서에 의해 결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3분의2의 다수결로 결정되는 통치체의 표결은, 제명 처분의 결정에도 적용되어 기묘한 결과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행위를 저지른 증인이, 예를 들면 혈액이 있는 성분을 받아들인 증인을 제명 처분할지 어떤지의 결정의 경우에, 14명의 통치체성원중 9명까지가 그 행위는 제명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도, 이것은 3분의2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그 증인은 통치체의 과반수 이상이 허용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였음에도, 그런데도 제명 처분이 되는 것이었다.
레이는, 이렇게 제명 처분 받게 된 증인들이 , 실제는 다수의 통치체성원들이 그들의 행위를 지지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명되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느낄는지 , 제명 처분에 관해서는 오래된 규칙의 현상 유지를 고쳐서 「의심스러운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를 원칙으로 하면 안 될까, 라고 하는 의문을 통치체의 회의에서 제기했다. 그러나 이 의문도, 오랜 세월에 걸친 이 조직의 전통적인 제명처분의 방침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해 가려는 분위기 속에서 매장돼 사라졌다.
침실에 비집고 들어가는 여호와의 증인의 규제
레이는 통치체임기의 후반에 다가가면서, 성서에 근거하지 않은 규칙에 의해서 여호와의 증인을 묶는 통치체의 태도에 의문의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에 대한 통치체성원의 태도에는, 그 밑바탕에 일반 증인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통치체성원 중 대부분은, 조직이 세밀한 원칙을 정해서 일반 여호와의 증인을 통제하지 않는 한, 그들은 타고난 경향 때문에 죄에 빠진다고 하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오랜 세월동안 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 그때까지 충실히 그 원칙을 지키며 자신을 희생해 온 다른 증인들에게 심리적 혼란을 가져온다고 하는 배려가 있었다. 이러한 통치체의, 자신만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하는 겸손하지 못한 태도와 과거에 증인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해 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하는 생각은 , 예수께서 가르치신 겸손함과 타인의 멍에를 분담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임을 레이에게 생각나게 했다.
종교재판의 폭풍우
일의 발단은, 본부의 봉사부에 들어간, 한 쿠바출신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밀고였다. 그것은 베델 가족(본부 직원의 다른 명칭) 중에 조직의 가르침과는 다른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 밀고자, 훈베르트 고디네스는 봉사부와 사회자위원회에서 두 번에 걸쳐서 장시간의 청취를 받아 그 내용은 테이프에 녹음되었다. 이 안에서는 먼저 크리스 산체스가 크게 다루어졌고 그에 더해 루네 바스케스, 에드워드 댄 랩, 그리고 레이의 이름이, 같은 동료로서 거론되었다. 그리고 그 청취의 한중간에 고디네스는 루네 산체스에게 전화해, 직접적으로 그의 입으로부터 증거가 되는 것 같은 발언을 유도 하였다. 이 2시간 반에 걸치는 고디네스의 청취의 녹음은, 통치체의 회합에서 참가자 전원이 듣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광범위한 사법위원회가 설치되어 심문의 고리는 광범위하게 파급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댄 랩은 두 명의 통치체성원인, 로이드 배리, 잭 바 두 명에 의해, 그의 조직에 대한 견해, 1914년 교리, 14만 4천명과 2계급 그리스도인의 교리 등에 대해서 심문을 받았다. 댄 랩은 그에 대한 답으로서 통치체 구성원 사이에 성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 1914년, 14만 4천명의 교리에 관해서는 솔직하게, 통치체의 내부에도 이 가르침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했다. 한편 같은 무렵 루네 바스케스, 크리스 산체스가 관여하고 있던 스페인어 번역부의 직원도 일제히 심문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심문은 개별적으로 행해져 각자가 같은 부문의 다른 인간이 사적으로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꼬치꼬치 추궁 당했다.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한 심문을 통해 얻은 정보를 다음의 다른 사람에 대한 심문의 재료로서 사용하는, 범죄에 대한 조사방법이 사용되었다. 스페인어 번역부의 어떤 직원이 증언을 거부했을 때, 통치체성원으로 사법위원회의 한 명은 「당신이 증언 하지 않으면, 배교를 숨긴 죄로 당신도 제명된다.」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 증인은 그가 들었던 것은 배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 이 사법 위원의 위협대로, 그는 머지않아 제명처분 되었다.
그 심문 내용을 통해서 레이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심문의 기본 태도가, 다른 견해를 가지는 사람은 그 만큼 하느님께 불충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레이는 4월 28일에 배포된, 통치체 사회자위원회의 이름으로 다루어진 다음과 같은 메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잘못된 가르침이 퍼지고 있는 최근의 증거: 아래에 나오는 것은 베델에서 번지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 몇 가지이다. 이것들은 4월 14일 이후, 외부로부터 통치체에 대해서 초래된 것이다. 1. 여호와는 오늘날 지상에 있어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 통치체는 여호와에 의해 지시를 받지 않았다. 2. 그리스도의 시대(기원 33년) 부터 마지막 때까지 침례를 받은 것은 모두 , 하늘에서의 부활의 희망이 있다. 이러한 모든 사람은 기념식에서 표상물을 맡아야 하는 것이어 ,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으로 한정해서는 안된다. 3. 기름부음 받은 자로부터 완성되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반열의 사람들과 통치체가 여호와의 백성을 지시한다고 하는 정당한 근거는 없다. 4. 오늘날 , 「천적」반열과 요한 10:16에서 「다른 양」이라고 부르는 「지상」반열 , 의 두 개의 반열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5. 계시 7:4로 말할 수 있고 있는 14만 4천의 수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 문자 그대로이해해서는 안된다. 계시 7:9에서 말하고 있는 「큰 무리」도 또한 하늘에서 봉사를 드린다. 이것은 15절에서 그들이 「그분의 성전에서 주야로」혹은 왕국행간역 에서는 「그분의 신성한 거주지에서」봉사를 드리고 있다, 라고 써 있는 그대로이다. 6. 우리는 지금, 「마지막 날」의 특별한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날」은, 베드로가 사도 2:17에서 예언자 요엘을 인용해 말한 것처럼 1900여 년 전인 기원 33년에 벌써 시작되었다. 7. 1914년은 확립된 해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914년에 왕좌에 도착한 것은 아니고, 기원 33년 이래 왕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임재 =파루시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마태 24:30에 진술되어 있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장래에 일어난다. 8. 아브라함, 다윗, 그 외의 옛 믿음이 있던 사람들도 또한, 히브리 11:16에 써 있는 대로 하늘에서 부활한다. 주의: 위에서 말한 성서의 견해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새로운 이해」로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협회의 그리스도인 신앙의 기본적인 성서의 「골격」과 반하고 있다. (로마 2:30, 3:2)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여호와의 백성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성서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건전한 말씀의 본」에도 반하고 있다. (디모데 둘째 1:13) 이러한 「변화」는 잠언 24:21, 22에서 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위 내용은 「진리에서 벗어나,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교란하고 있다.」(디모데둘째 2:18) 모두를 고려하면 이것은 배교이며, 회중적 조치로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권 선교 학교 지침서 1977년 58페이지 참조. ) 의장 위원회 4/28/80}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논리는, 레이에 있어서는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협회의 가르침을 먼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오랜 세월 믿어 왔다는 사실이 마치 그 올바름을 증명하는 것 같이, 이러한 인간의 전통적인 가르침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첫째로 중시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레이는 다음에 고디네스의 청문 테이프를 들었다. 그 중에 레이가 들은 것은 , 세 명의 조사에 해당되는 통치체성원들의 , 벌써 결론을 내린 것 같은 태도였다. 거기에는 , 용의자의 반론을 듣거나 증거 조사하고를 하거나 하는 전부터, 벌써 이러한 「배교자」로서 평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강한 비난으로 밀고를 해 온 고디네스 부부에게로의 칭찬은 나왔지만 단순한 한마디도, 잘못을 범한 가능성이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 있는 배려는 듣지 못했다. 다음에 레이가 들은 것은 제2의 밀고자 보네리의 청취의 테이프였다. 이 내용은 제일의 테이프보다 더욱 심한 내용이었다. 보네리는 루네 바스케스, 크리스 산체스들이 새로운 분파를 만들어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거나 다른 집회를 열거나 침례를 주거나 하고 있다고 하는, 자신이 목격한 적도 없는 것을 소문에 근거해 증언 하고 있었다. 그가 증언한 것 중 반 이상은 근거가 없는 소문이거나, 완전히 만들어낸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증언의 나머지 절반은, 성서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의 내용이었다. 성서를 개인적으로 논할 때에, 조직의 가르침과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지 않는 한 그러한 대화는 금지된다고 하는 규칙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이것으로 처벌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보네리의 이 소문에 근거한 고발은, 이차적인 소문을 만들어내 이후 본부 직원의 일부가 새로운 분파를 만들려고 했다는 소문이, 본부 전체의 1500명 이상의 직원들 사이에 퍼져, 그것은 결국 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서 소문으로서 확대되었다. 이 완전히 사실과 반대되는 소문을 퍼지도록 내버려두고 용의자를 제명하기만 하고 그 소문의 신빙성을 조사해서, 근거가 없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멈추는 지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 통치체였다. 이 외 , 그 시점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사이에 세계적으로 퍼진 소문 중에는, 스페인어 번역부가 공모해서 스페인어판 출판물의 내용을 바꾸어 썼다는 것, 이러한 「배교자」들 사이에 동성애를 하고 있었다는 어느 쪽도 완전히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이 있었다. 레이는 왜 이러한 터무니없는 소문이 , 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 퍼지기가 쉬운 것인가를 생각했다. 정보가 통제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그에 대한 설명을 찾아, 그런 사태를 정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 이러한 많은 경건한 여호와의 증인이 , 갑자기 일제히 제명된다고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던 데다가, 정보 통제하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해 , 합리화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결과 , 조금이라도 타당한 것 같은 소문은 「진실」로서 받아들여지기가 쉬워지고 있었다. 거기에 대신하는 설명은 ,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믿는 「조직」그 자체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 그것은 그들 일반 여호와의 증인들의 생각에 일말의 가능성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 이다. 조직을 계속 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은 결과가, 이러한 소문이 퍼지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통치체 회의
레이는 후에 댄 랩으로부터, 그의 사법위원회의 내용을 들었다. 댄 랩이 사법위원의 질문에 대해 대답한 말은 솔직 명쾌했다. 예를 들어, 2단계 반열의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교리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댄 랩은 로마 8: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를 인용하며, 이외에 어떠한 방법으로 읽는 것이 가능한지, 오히려 사법 위원에게 질문했다. 사법 위원은 이것에 대해 「당신은 심리 받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댄 랩은 천부적인 성구의 기억을 발휘해 , 모든 질문에 성서의 성구를 사용해 대답한 후, 진짜 문제는 형제들이 성서를 잘 공부하지 않고 협회의 출판물만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심리의 이유의 하나로 , 벌써 이번 사건으로 제명된 사람과 그가 식사를 함께 해, 성서의 내용을 이야기로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거론되고 있었지만, 댄 랩은 이것도 솔직하게 인정해 누구라도 그에게 성서에 관한 질문을 가져 사적으로 물어 오면, 그에 대해 대답해 주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답변은 간단하게 제명 처분을 결정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왜냐하면 제명 처분을 받은 사람과 친하게 사귀는 것은, 그 만큼으로 제명 처분이 되는 것은 , 여호와의 증인 사이의 기본적인 규칙이기 때문이었다. 짓궂은 일로 , 심리위원 중에 한 명이 댄 랩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실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원은, 댄 랩이 자신은 제명 처분은 바라지 않는다고, 자신은 많은 형제들과의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친교를 단절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그에게 조직에 머물면서 기다리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몰라, 5년 정도 기다려 봐,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 중에 많은 부분이 혹은 모두가 조직으로부터 출판될지도 몰라」라고 댄 랩에 대해서 말했다. 이 사법위원은 조직의 가르침이 때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만약 조직의 가르침이 5년이 지나면 변화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이 눈앞의 인간이 충실한 예언자인가 그렇지 않으면 「배교자」인가 의 판단도 5년간 기다릴 수 없는 것일까. 이 댄 랩이라고 하는 인간은 , 벌써 조직 안에서 50년간이나 기다린 인간이 아닌가.이러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한 사람의 형제를 간단하게 잘라 버릴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조직의 무사평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 명의 신자의 일생은 그 때 그 때의 조직의 형편에 의해서, 일회용으로 되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논리가 있다는 것을, 레이는 뼈저리게 배우게 되었다. 에드워드 댄 랩은 72세에 제명 처분을 받아 협회 본부를 서 비켜져 태어난 고향의 오클라호마주로 돌아와 그런데 벽지 붙이는 일로 생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댄 랩은, 제명처분 통지를 받았을 때 ,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만 , 이것은 이 1980년의 봄의 협회 본부의 폭풍우속에서 제명된 사람들의 공통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안, 그것이 여러분의 결정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지만 「배교」 때문에 제명되었다는 말은 그만 두었으면 합니다. 배교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에 반역하는 것으로, 안이 본 것처럼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사상 통제
1980년 봄의 협회 본부를 불어 거칠어진 폭풍우속에서, 레이는 마침내 사태의 근저에 있는 문제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성서의 말씀에 대하는지 , 그렇지 않으면 조직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우선 시켜, 성서의 하느님의 말씀을 조직의 가르침에 맞추는지의 선택이었다. 이것은 바야흐로 , 에드워드 댄 랩이 마지막 말로 말한 것처럼 ,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배교」의 의미가 성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반역하는 것」이란 의미와는 다르게 , 실제로는「조직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1980년 8월의 「왕국 봉사」(전도인들 에게 배포되는 월간 전도 지시서)에는 다수의 베델가족이 제명되었다는 것이 발표되어 거기에 계속해서 「조직에 대한 배교」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배교」라는 말의 여기서의 사용법은 , 여호와의 증인의 「배교」라고 하는 말의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제명 처분이 되려면 , 이미 성서에 반대하는지 어떤지가 문제가 아니고, 유일한 기준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의해 주어진 여호와의 가르침」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여부였다. 이것은 마치 , 임금님(즉 하느님) 에게 충실한지 어떤지를 조사하는데 , 임금님이 쓴 메시지(즉 성서) 에 충실한지의 여부가 임금님에 대한 충실함의 증거인 것이 아니라 , 임금님의 종인 메신저(즉 워치타워 협회)가 전하는, 임금님이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따르는지 여부가 기준이 된다, 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배교의 죄는 , 다만 단지 조직과 다른 것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해 , 굳이 그 다른 견해를 선전하지 않아도 , 다만 개인적으로 믿는 것만으로 사법상의 조치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상 통제」의 가장 좋은 예가 아닌지 , 하고 레이는 느꼈다
개개인으로 보면 헌신적이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인 ,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이 왜 , 이러한 조직의 맹목적인 포로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레이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 근저에 있는 것이 ,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교묘하게 심어진 「조직」에 대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 「조직」의 이미지는 , 여호와의 증인의 독특한 사고 과정에 의해 , 독립된 절대적인 권위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조직」의 이미지는 , 하나의 추상적 , 관념적 존재로서 현실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의 존재로부터 동떨어진 절대적 권위로서 성서보다 상위에 군림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 한사람이, 성실한 개인으로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서만을 사용하여 일을 판단해, 그리스도인 형제자매와 동포인 인류에 대한 봉사의 마음을 가진다면, 이러한 개인을 압살하는 강대한 조직이 지배하는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레이는 알았던 것이다.
판결
1981년 12월 31일, 레이몬드 프랜즈의 제명 처분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이 일자는 기이하게도 그의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정확히 43년째 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는 1939년 1월 1일에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공식적 죄명은, 조직을 탈퇴한 사람과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했다는, 단지 그 일 뿐이었다.
파문
레이는 어떤 그리스도교의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 그리스도교의 교회에도 다니지는 않았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그는 거의 평생 계속해 온 아내와의 매일 아침의 가정 성서 연구와 전 세계로부터 찾아오는 방문자나,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의 가정 성서 연구를 빠뜨리지 않는다. 레이는 이것이 1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모습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그러나, 기존의 많은 그리스도교 교파에 도전하는 태도는 전혀 없고, 교리 논쟁에 참가할 계획도 없다. 그런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찾아서」에서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레이의 아주 최근 심경은 다음의 그의 편지의 일부분에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만약 , 워치타워가 내부 개혁을 실시했을 경우 , 다시 그 종교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워치타워의 조직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우선 당신이 말하는 것 같은 근본적인 조치를 그들이 취할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고 , 비록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 나는 다시 하나의 종교 조직의 일부가 될 계획이 없습니다. 이 조직의 기초가 되는 교리에 중대한 결함이 있어서, 외관상의 조치가 있어도 이 기초는 결코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강력하게 , 그리고 계속적으로 행해져 온 , 조직의 강조에 의해 길러져 온 정신은 , 매우 불건전한 것이며 , 그 정신이 사람들의 주의를 하느님의 독생자와 하느님의 성령으로부터 딴 데로 돌려서, 그 결과 신자의 관심은 인간의 가르침에 주목적이 두어져 그들은 영적으로 후퇴하여 왔습니다. 본래 하느님의 독생자에게 돌아가야 할 권리와 특전을, 하나의 인간의 조직에 횡령시켰던 것이 , 아마 그들이 범한 가장 중대한 잘못이지요. 그에 더해 또 다른 잘못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의 진정한 감각을 개인 신자로부터 강탈해, 순수하게 인간에게 속한 무수한 규칙 , 규정을 부과한 결과 , 개인의 양심의 올바른 행사를 침해했던 것이 거론됩니다. 이 사태는 마태 15:9에 기록된 것 같은, 일세기 당시 바리새인들의 경우와 지나치게 닮아있는 상황을 낳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조직으로서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근본적 변혁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형제사랑이며 ,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 중앙의 집행부에 종속되는 체제화 된 사회는 아닙니다.]
{조직을 조심하라. 조직이란 전적으로 불필요하다. 성서 규칙들이야 말로 당신이 필요로 하는 유일한 규칙들이다. 타인의 양심을 구속하려 하지말고, 타인이 당신의 양심을 구속하는 것을 허용하지 마라. 당신이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만큼 믿고 순종하여라. 그래서 은총과 지식 속에서 거듭 성장하고 매일 매일 사랑하여라.
찰스 테이즈 러셀 -파수대 1895년 9.15일}
:오늘날 러셀이 창시자라고 주장하는 종교에 대하여 당시 러셀은 어떻게 생각했을 지에 관하여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 종교는 단지 일개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이다. 이 종교는 당시 러셀이 전적으로 불필요하다고 말한 바로 그 조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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