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작 - 조직에 충성하라,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
다소 늦은 나이인 23살에 중립을 가기전까지 나의 파이오니아 시절은 증인조직에 순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명제를 일치시키는 기간이었다. 매일 기도하고 개인연구하고 봉사를 하는 것으로 가슴 뿌듯한 하루를 만들어 갔고, 조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우정과 즐거움은 세상에로의 욕망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난 낮에 호별방문을 많이 할 수 없어 많은 시간 서울역봉사에서 비공식증거를 하였다.
당시 서울역은 현재의 신 건물이 아닌 일제시대 구 건물을 보완한 것이라 천정이 높은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전국으로 가는 사람들이라 대기시간도 비교적 길어 다양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대략 하루에 100명이상의 전도인들이 나오지 않았나 기억된다. 제법 많은 형제들이 서울역구내와 광장, 서부역 등지에 흩어져 봉사를 하였다.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이곳엔 늘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 그러니 그곳에서 조직내의 인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고 훗날 조직에서 큰 일을 하게 된 의기총명한 형제들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에서 다들 짝사랑도 하고 교제도 하고 결혼도 하였다. 조직에서 쑥맥처럼 자라온 나도 처음 이곳에서 이성의 느낌을 알게 되었다.(그때의 일들은 훗날 할 기회가 있으리라.^^재미있다.)
이때 나는 (조직내에서 소위 말하는) 영으로 불타오르는 기간이었다. 조직을 위해 아니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이 청춘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일까, 당시 한창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벧엘증축공사에 참여하게 된다.나의 이상이 벧엘성원이 되는 것이었고 가장 빠른 방법은 자진봉사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이때의 경험도 훗날 정리해서 올려 보겠다.)
벧엘자진봉사는 왔다 갔다 대략 8개월 정도 이어졌다. 당시 안성공도의 한국지부는 현재 사무실 왼쪽의 공장동과 기숙동을 증축하고 있었다. 현장에선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벧엘성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유수한 형제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10대후반과 20대초반의 총명한 형제들이 그곳에 다 모인 느낌이었다. 그곳엔 영문보조서나 영문잡지로 개인연구를 하는 형제들도 많았다. 나도 자극을 많이 받아서 손을 놓았던 외국어 공부와 개인연구를 더 열심히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도 형제들간의 갈등,이기심,언어폭력,이중성등이 제법 보였다. 아무리 신권조직이라 하더라도 사람사는 곳 어디든 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니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은 나의 믿음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파이오니아봉사, 서울역봉사,건축자진봉사를 거치면서 나는 증인들의 신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정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만약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이 없다면 그래도 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심각한 문제였다. 냉철히 질문을 던지면 자신이 없었다.형제자매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훗날 받게 될 영생과 낙원이라는 상이 인내와 믿음의 가장 큰 충성의 동기로 보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손에 잡히지 않는 질문이었다. 증인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 질문을 하였지만, 늘상 어려운 문제였다. 어떻게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가. 증인들 말처럼 [하나님의 지상조직과 연합하여 세계적인 전파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그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당시만 해도 난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그것으로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그러면 상대방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행복을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고 그래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어떨까.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바랄까. 우리의 행복을 바라지 않을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면 나도 하나님이 행복해 하시길 바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분을 기쁘시게 할까. 아침부터 봉사가방을 메고 나가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특정종교의 출판물 개인연구를 하고, 월말에는 이것을 수치화해서 보고하고 ...이것이 다일까. 아니지. 아니지..기도와 묵상을 통해 그분께 나아가고 그분과 개인적 관계를 갖는 것, 이것이 중요하지 ..아니 그럼 무엇이 더 중요한가..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 아니면 조직에 복종하는 것...다 똑같이 중요할까.
여호와의 증인조직이 정해 놓은 많은 규정과 원칙들은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세부규칙에 얽매여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일까. 나는 이 조직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조직이 요구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 실제로 하나님은 우릴 미워하실까.
왜 하나님은 조직을 통해서만 구원을 행사하실까. 내가 증인2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증인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도나 이란과 같은 회교권에서 태어난 사람이 과연 구원의 조직인 증인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증인조직을 만날 수 없는 지역에 산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서를 읽어도 구원은 요원한 것일까. 일부 나라에선 증인을 평생 수백번도 만나지만 어떤 나라에선 평생 한두번 만난다면 과연 그것은 공평한 기회일까. 아,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데, 왜 인류의 구원확률을 공정하게 베풀지 않는 것일까.인류의 0.1%인 600만 증인들만 살리고 나머지 99.9% 60억 인구가 아마겟돈때 다 시체가 된다면 그 참혹함을 어찌 볼까.
좁은문이라 했으니 증인조직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 것도 아니고(물론 증인이라고 다 구원받는다 하진 않지만) 말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과연 그런 잔인한 일을 하신단 말인가.지혜의 하나님에게 진정 그 방법밖에는 없을까, 혹시 나는 누군가에 의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사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의문들은 과연 훗날 하나님에 의해 짠!하고 일시에 해결이 될까.
이런 혼란과 의구심은 나를 저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지만, 가능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였다. 늘 촉망받고 전도유망한 증인조직의 엘리트 청년으로 자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조직과 그 내부에서의 인간관계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직을 떠나선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의구심의 가지들을 증인조직의 전지가위로 싹둑 싹둑 잘라내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첫댓글 오늘 파수대 집회를 보며 또 한숨짓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충성하는 방법이 조직을 인도하는 통치체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일찌감치 2항인가에서 못박고 시작하더군요..그리고 뒷 부분에서는 회중을 인도하는 장로들에게 순종 하라... 이미 세뇌됀 성원들은 그게 진리의 말씀인줄 알고 받아즐이고...웃음만 나오네요
이글은 왜 삭제방으로 옮겼는지요??
제가 제목을 잘못 써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