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한 3년 전 쯤인 것 같다.
오랫동안 믿어왔던 여증생활을 하나,둘씩 마음속으로 정리해 갈 무렵이였던 것 같다.
파수대 집회에서 한 삽화를 보고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 삽화의 내용은 1세기 당시의 집회 모습을 묘사한 삽화였다.
사람들이 두루마리 성서을 들고 집회를 보는 모습과,
또 어린아이가 두루마리 성서를 들고 손을 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였다.
현재 집회를 보는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어떻게든 매치를 시켜보려는 자기 입맛(?)에 맞추어 보려는
워치타워의 가상한 노력이 느껴진 삽화였다.
파수대 사회자는 그 삽화가 무엇을 묘사하는 그림인지 설명해보라는 친절한 질문(?)까지 놓칠리가 없다.
물론 시시콜콜하게 삽화 한 장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1세기 당시의 사회 상황이나, 사회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림이다.
그 삽화가 당시 집회보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비슷하기나 했을까?
두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성서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했다.
유대인들은 파피루스 보다는 양피지를 즐겨썼다.
염소나 소가죽도 사용했다.
양피지는 양가죽을 얇게 늘려 펴서 만든 것이다.
새끼 가죽일수록 고급제품이 나온다.
양피지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간을 아껴야 한다.
그래서 아주 작게 깨알만한 글씨로 작게 썼으며, 물론 장,절 구분이나 띄어쓰기 같은 것이 없었다.
양가죽이든 파피루스건 이 재료들은 구하기가 힘들고 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만질 수가 없었다.
양피지에 쓰여진 성서는 매우 귀하고 고급스런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인쇄술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누구나 성서를 가지고있는 모습은
당시의 사회현상을 전혀 모른는,당시의 사회모습을 전혀 고려하지않는 그림이다.
두번째는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이 문맹이었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고 쓸 수있는 사람들은 3%도 채 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지적인 사람들은 아니였고 (가롯 유다가 가장 지적인 인간이었을 것으로 생각)
배운 사람들이 아니였다.
사도4:13 에"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여기서 "학문이 없는"은 그리스어로 "아그람마토이"이며 이 의미는 "글을 쓸 줄 모르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헐벗고 굶주리고,애통하고,억압받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였다.
이스라엘사회의 계층 구조를 살펴보면
왕.총독 - 최상층 정치적 지배자,그리고
제사장급 - 최고위 행정관료 부유한지주,국토의 15%소유.
사 - 고위군인과 실무관료.
상인 - 하층에서 상향한 사람들, 당시 상당한 부를 가짐.
농민 - 전체 인구에 75%차지,상위계급을 먹여 살리던 피착취 계급.
공인 - 인구의 5%정도, 요셉이 목수였으면 이 계급에 속함.
그리고 일정한 거처가 없는 부랑자들,거지들,매춘부, 하루 품삯 노동자들,노예들이었다.
이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우르르 몰려 다닐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알아야 한다.
당시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책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지금 누구나 편안하게 보는 성서는 독서를 하기 위한 시각적인 문헌이 아니라 청각적인 문헌이었다는 사실이다.
과거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서을 큰소리로 읽어 주었다.
그리스 성서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데살첫째5:27(신세) "편지를 형제들에게 읽어 주십시오"
공개적으로 낭독하라는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디모데첫째4:13 (신세) "내가 갈 때까지 공개낭독과 ...전념하십시오"
여기서 공개낭독에 "전념한다"라는 의미는 그 일에 종사한다는 뜻이다.
직업적인 의미이다.
마가복음에는 재미있는 곳이 있다.
마가13:14(신세)"그러나 황페케 하는 혐오스런 것이 서서는 안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십시오"
괄호 안에 "읽는이는" 성서를 읽고있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당시 대중에게 낭독하는 낭독자에게 하는 말이다.
계시1:3(신세)" 예언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 지키는 사람들은.....행복하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낭송 문화를 엿보게하는 구절이다.
성서를 낭독하든,바울의 편지를 낭독하든,이러한 사람들을 "케릭스" 또는 "히에로 케릭스"라고 불렀다.
그들은 매우 지적인 사람들이였으며 현명한, 지혜로운 사람들로 인정되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문자를 해독한다는 것은 당시에 존경과 지혜의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객관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성서를 보고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당시의 사회 상황과 사회구조를 모르고 성서를 읽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그 연구기사에서 다루어진 그 작은 삽화는 매우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삽화가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인식을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작은 영향을 주는 일에 불과하다.
더 큰 일들이 성서를 자기들에 입맛에 맞게 규정짓고,교리화하고
진리로 규정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며 권력화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셨으며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그대들은 진정으로 예수께서 대하신 방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있는가?
가난하고,억압받고,굶주리고,헐벗고,애통해 하는,심령이 가난한자들을 위해
그대들은 예수께서 주신 메세지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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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개그콘서트 좋아하는데...한번 보러가야겠네요.
수세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노동을 하는 시간외는 그저 옷이나 몸에 있는 이를 잡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했다는 어느 인문학자의 글이 생각납니다. 문명과 문화의 대중적 발전은 불과 수세기 전의 일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지금 상상하는것 보다 월씬 열악한 환경속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몰입하고 있어 문화적으로 새련된 생활은 극소소수의 지배계층들 만 누린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조선의 사. 농. 공. 상.의 계급과 다르게 사. 상 . 농. 공 의 사회였군요 생각을 자극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JW출판물의 삽화는 사람들이 여증조직화되는데 기여하도록 고안되어 왔습니다.지금의 JW조직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전영한다는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라일락님이 지적하신 삽화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정말 개그콘서트나 유치원생들 수업같은 집회를 지켜본다는 건 정신적 탈증인들에게도 고문과 같은 일이죠. 시간이 아깝고 한숨만 나오는...저도 그런 경험을 약 2년정도 했습니다.
음..그렇다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단 건가요?
그런데 라일락님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연구를 하셨는지...대단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올려주시는 아름다운 곡들도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