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증을 결심하기까지 우리 개개인은 다양한 배경 속에서 홀로 고민하고, 혼자 고뇌하는 숱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정말 내가 하는 결정이 나의 삶 전체를 뒤흔들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과 현재 가지고 있는 가족과 친지와의 관계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마저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등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아마 탈증을 하신 분들이나 탈증의 과정을 밟고 계신 모든 분들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다른 모양으로 고통받고 힘들어 하면서 그 과정 과정들을 지나 오셨으리라 믿습니다.
제 경우는,
어린 시절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 지부 위원들과 여행하는 감독자였던 순회, 지역 감독자들의 숙소를 전담하셨던 부모님의 관대한 후대 덕분에 저희 가족은 그 분들 개개인과 깊은 개인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답니다. 그로 인해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저희 집에는 소위 “아침 숭배”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예전에 베델 식탁에서 매일 아침 일용할 성구와 성경 낭독을 하는 마련을 저의 부모님은 저희 가정에 도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 아침 숭배는 주 7일, 일년 365일 동안 매일 아침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삼십분씩 먼저 일용할 성구를 낭독하고, 돌아가며 식구들 하나 하나가 개인적 해설을 한 연후에 성경 창세기 부터 계시록 까지 매일 한장 혹은 두장씩 읽고 나서야 끝나곤 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집을 떠나기까지 반강제적으로 성서 통독을 수없이 많이 하게 되는 유익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회관에서 다루게 될 파수대 내용을 한시간 또는 한시간 반 동안 가족이 정기적으로 연구하는 시간도 가졌었지요.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반드시 예습을 하면서 모든 성구들을 다 찾아보고, 관련 해설들을 따로이 조사 연구한 다음에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일련의 연구 조사는 더욱 더 워치타워의 가르침에 고착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 눈에는 일관성 없는 해설과 수시로 바뀌는 교리를 너무도 일찌감치 (?) 발견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답니다. 대충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철저한 고증과 연구 조사를 한 덕분에 오히려 청소년 시절부터 이미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 연구에서나 개인적인 가족 대화에서 제가 발견한 ‘잘못된 조직의 가르침이나 지침에 대해 지적하고 시정되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든지 혹은 어차피 이 내용을 또 다시 변경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충고는… 한결같이 “조직을 앞서가지 마라! 네 교만이 너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반열이 때가 되면 바로 잡아줄 때까지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 라는 식이었습니다. 동시에 끊임없이 항상 들어왔던 충고는 “조직을 앞서 가지 말아라. 결코 교만하지 말고 조직의 가르침에 순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 스스로 수도 없이 자문해 보았습니다. “조직의 가르침이 흠결이 없지 않은데, 그 가르침이 일관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조직을 앞서가는 것인가?” “ 나는 내가 교만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인데 …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바뀔 것이 자명한데… 왜 내가 계속 교만하다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그래서, 정말 내가 거룩한 조직의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해서 일까 하는 생각으로 더욱 더 철저하고도 깊이 조직의 가르침을 조사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답니다. 그러는 과정에 십대 말에 정규파이오니아를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 20대 중반인 인근 회중 정규 파이오니아를 하던 형제 2명과 매주 모여 함께 [큰 바벨론은 무너졌다]는 영어 출판물을 번역해 가며 더 깊이있는 연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10대 중반부터 시작된 의구심은 20대, 30대를 지나면서 점점 더 확신을 갖게 해 주었지요. 이십여년에 걸쳐 제가 경험해 볼 수 있는 한 다양한 형태의 전시간 봉사를 다해 보고, 형제로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신권적인 특권과 직분들을 두루 경험하면서도 끊임없이 제 개인적 조사와 연구는 계속 되었습니다.
철저한 자료 조사를 꾸준히 하면서 동시에 개인적 인터뷰를 통해 조직의 책임있는 분들 (지부 위원, 베델 장로, 순회/지역감독자, 선교인 등등)과 성서 교리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태생적인 한계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저와는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가는 조직이 스스로 바로 잡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믿음(?)으로 조직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다가 40대에 접어 들면서 비로소 저는 스스로 탈증을 하는 과정을 밟기로 결정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탈증이 의미하는 바가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한 벗들로부터 스스로 고립시킬 수 있는 것 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증을 통해 남아있는 내 삶과 내 자녀들의 미래를 새로이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은 그 어렵고도 힘겨운 결정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탈증을 한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제가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 나이에라도 스스로 내린 결정이 지금의 제 삶과 제 자녀들의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런 제 느낌은 이미 탈증을 통해 홀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계신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모두가 공감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카페에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 속에서 탈관념을 하고, 성공적으로 탈증을 하고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계신줄로 압니다. 그리고 또, 지금 현재 그 과정 속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와 하는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이 글은 탈증의 과정에 계신 분들에게 자그나마 제 지난 인생 역정이 감정이입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남깁니다.
첫댓글 글 잘읽고 있습니다, 점심식사 맛있게 드세요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