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싱 여행7 - 사오싱의 정원 심원에서 육유와 당완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다!
닝보 宁波(영파) 에서 기차를 타고 사오싱베이짠 绍兴北站 (소흥북참) 에 도착해
88 路 버스를 바꾸어 타고는 루쉰꾸리 魯迅故里(노신고리) 에 내려서
서당 三味書屋(삼미서옥) 과 노신이 살았던 집 魯迅故居(노신고거)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도로를 건너 우펑선 (乌蓬船 우봉선) 이 다니는 운하를 따라서 200 미터를
가서 선위안(沈園,심원) 에 입장하는데... 심씨원( 沈氏園) 이라고 불리는 남송
시대에 건립된 중국 전통 정원으로 송나라 시인 육유 陸游 의 로맨스 로 유명한 곳입니다.
정원을 만든 沈氏(심씨) 는 대단한 부자로 알려졌는데,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본기(本紀)’
12편, ‘표(表)’10편,‘서(書)’8편,‘세가(世家)’30편,‘열전(列傳)’70편등
130편이니 열전(列傳) 은 권력과 인간의 관계 를 파헤친 진정한 인간학의 보고(寶庫) 입니다.
"열전(列傳)" 중에서도 백미는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 읽는 것으로 화식열전(貨殖列傳) 인데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배 부자는 흘뜯고 욕을 하며 100배 부자는 두려워 하고, 천배 부자는
그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며 만배 부자에게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고 싶어한다고 적었습니다?
서울 종로 술집에서 대형 로펌 신입변호사 11명과 술자리를 하던중 술에취해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여자 변호사의 머리채를 잡아챈 혐의로 수사를 받아 폭행과 모욕혐의 로
고소당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선씨가 검찰에서‘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는 것을 보면서 2천년전 중국이나 현재 대한민국 에서 "부자들의 위세" 를 실감합니다.
심원(沈園) 경내에서 詩境石(시경석) 과 송나라 연못인 宋池塘(송지당) 이며
孤鶴軒 (고학헌) 정자와 서화가 있는 冠房樓(관방루) 를 둘러봅니다.
경치 좋은 閑雲亭(한운정) 과 六朝井亭 (육조정정) 우물 에 明池(명지) 와
宋葫蘆池(송호로지) 연못 이며 육유 기념관 陆游记念馆 까지 구경합니다.
육유 기념관 陆游记念馆 안에는 육유의 인생과 당완과 만나고 헤어진 이야기며 이후 그가
당완과 헤어진후 정계에 나가 북벌 하던 장면등과 글씨 들이 보이는데, 육유의 동상
뒤쪽에 중국 100대 명필에 속한다는 모택동이 육유를 기리는 초서 달필 글씨 를 구경합니다.
소주시 오나라 왕 합려의 무덤 후추(虎丘 호구)에서 试剑石(시검석) 을 처음 본 후 진강의
베이고산(북산) 에서도 유비와 손권에 얽힌 试剑石(시검석) 을 보았거니와 심원에서
둘로 가른 돌을 斷雲(단운) 이라 한다는데 육유와 당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 떠오릅니다.
남송의 시인 육유 陸游 는 이종사촌 누이 당원 과 결혼하니 금슬도 좋았다는데 아이를
못낳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의 구박 이 계속되던 어느날 육유 모친의
생신날 에 많은 손님들이 왔는데 모친은 며느리 당완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 를 합니다.
"달걀이면서도 달걀이 아니고 가루음식이면서도 가루음식이 아니며 노르스름하게 튀긴
것인데 입에 넣으면 말랑말랑하고 겉보기에는 소금을 넣은 것인데 정작 먹으면
달고, 국자와 그릇에 달라붙지 않으며 씹지 않고 넘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너라."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욕보이겠다는 선언 이지만 당완은 부엌에 들어가더니 달걀을
깨서 노른자만 취한후, 전분과 물 을 섞어 휘저은 후에 체에 받아낸후 솥에 돼지
기름을 두르고 불로 달군후 체에 걸러낸 노른자 섞은 것을 쏟아넣고 휘저은후 마치 죽
같아지자 돼지기름을 섞으며 저은후, 완성되자 소금을 살짝 뿌려서 상에 가져다 놓습니다.
사람들이 먹어보니 육유 모친이 요구한 조건 에도 걸맞으면서 맛이 정말 좋았으며
더군다나 이빨에도 붙지 않고, 국자에도 붙지 않고, 그릇에도 붙지
않는다 하여 이 음식의 이름을 “삼부점”이라고 지으며 당완의 솜씨 와
현명함을 칭찬했다는데 이 음식은 훗날 청나라 황실 요리 로도 쓰이게 되었다나요?
보통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시어머니가 개과천선 하고 며느리를 잘 대해준다는
것으로 끝나야 됩니다만..... 이후에도 여전히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했고 결국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핑계로 쫓아낸"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 했습니다만 한동안은 몰래 만나는 식으로 인연을 이어갔으나
얼마 안 가 이런 일이 들통나는 바람에 헤어진 육유는 왕씨 성의 여자와
재혼 해야 했고... 당완도 조사정이란 문인과 결혼해 8년이 지난 1155년에
육유는 친구들과 함께 소흥 땅 에 있던 아름다운 정원인 여기 심원에 놀러왔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조사정이 당완과 함께 역시 심원 에 놀러왔으니 당완은
그를 보자 흠짓 놀랐고, 그걸 본 조사정이 저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당완이 전 남편 이라고 했고, 조사정은 술과 안주를 보내고 같이 먹으며 육유를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만... 이 상황은 그들의 아픈 과거 를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조사정이 떠난 후 육유 陸游 는 붓으로 심원의 벽 에 한 편의 사(詞) 를 써넣었습니다.
紅酥手黃藤酒 (홍수수황등주) 그대 부드러운 섬섬옥수로 나에게 황등주를 부어 주었지.
滿城春色宮牆柳 (만성춘색궁장류) 성안에는 봄빛 가득하고, 버드나무 너울거릴제,
東風惡歡情薄 (동풍악환정박) 사나운 동풍은 우리의 사랑을 날려 버렸지~
一懷愁緒幾年離索 (일회수서기년리색) 쓰라린 가슴 안고 몇년을 찾아 헤매였던가?
錯 錯 錯 (착 착 착 ) 착찹하고 착잡하고 착잡하다..
春如舊人空瘦 (춘여구인공수) 봄은 예전과 다름없건만 사람만 부질없이 야위어 갔네!
淚痕紅浥鮫綃透 (누흔홍읍 교초투) 연지 묻은 손수건은 눈물에 흠뻑 젖고
桃花落閑池閣 (도화락 한지각) 복숭아꽃 떨어져 누대마져 쓸쓸하구나.
山盟雖在錦書難託 (산맹수재 금서난탁) 우리 사랑의 맹세 변함없건만,
이 마음 담은편지 전할길 없어라.
莫 莫 莫 (막 막 막) 안돼, 안돼, 안돼~~~
바로 “채두봉 釵頭鳳” 이니 채두봉은 육유 陸游 와 당완이 사랑의 증표로 주고받았던
비녀 인듯 한데...... 이 시를 본 당완 도 “채두봉에 부쳐” 란 시를 지었습니다.
世情薄人情惡 (세정박인정악) 세상도 야박하고 인심도 사나워서
雨送黃昏花易落 (우송황혼화이락) 해질녁에 비마져 뿌려 꽃잎 쉬이 떨어졌네.
曉風乾淚痕殘 (효풍건누흔잔) 밤새 흘린 눈물의 흔적은 새벽 바람에 말라버리고
欲箋心事獨語斜闌 (욕전심사독어사란) 이내마음 글로 쓰고 싶으나 난간에 기대 혼잣말 하네.
難 難 難 (난 난 난)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라
人成各今非昨 (인성각 금비작) 그대와 나 제각기 가정 이루어 지금은 옛날과 다르네,
病魂曾似秋千索 (병혼증사추천삭) 오랫동안 마음은 병들어 날이 갈수록 쓸쓸하기만 하고,
角聲寒夜闌珊 (각성한야란산) 피리소리 차갑게 들리는 밤중에 난간에 비틀거리며 서있네.
怕人尋問咽淚妝歡 (파인심문 인루장환) 님이 그 사연 물어볼까 두려워 눈물 삼키며 웃음 짓고
瞞 瞞 瞞 (만 만 만) 아냐, 아냐, 아냐..
이후 당완 은 이때 일이 마음의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요절 했다고 전해지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후 1160년 송나라와 금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육유 는 이
전쟁에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서쪽 한중에 머무르며 북벌 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60세가 넘은후 육유 陸游 는 고향인 소흥으로 돌아와 가끔 마지막으로
당완 을 만났던 심원 에 찾아갔다는데, 마지막에 찾아갔던 1199년, 75세의 늙은이가
된 육유 는 이 때를 기억하며 또 한편의 시를 지으니 시의 제목은 “심원”이라고 합니다.
城上斜陽畫角哀 (성상서양화각애) 석양의 성 위에 화각소리 구슬프고,
沈園非復舊池臺 (심원비복구지대) 심원은 이제 그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구나!
傷心橋下春波綠 (상심교하춘파록) 다리 밑 푸른물결에 가슴 아파오고
曾是驚鴻照影來 (증시경홍조영래) 기러기처럼 맵시있던 그대 모습 물위에 어리네
夢斷香消四十年 (몽단향소사십년) 꿈이 깨어지고 향기 사라진 지 어언 사십 년
沈園柳老不吹綿 (침원유로불취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솜도 이젠 날리지 않는구나
此身行作稽山土 (차신행작계산토) 이 몸도 장차 회계산의 한 줌 흙이 되려마는
猶弔遺蹤一泫然 (유조유종일현연) 남은 그대의 자취 찾아보니 한 줄기 눈물만 흘러내리네.
육유는 10년 후인 1210년에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죽을때 까지 당완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 이야기 도 후세에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陸游(육유) 의 사(詞) 를 반씩 끊어서 아래 처럼 해석하기도 합니다.
紅酥手 그대 고운 손, 黃藤酒 보내온 황등주,
滿城春色宮牆柳。 성안에는 봄색 가득, 버드나무 너울거렸지
東風惡 동풍이 사나워, 歡情薄 야박해진 정
一懷愁緒,幾年離索 쓰라린 마음안고 헤어진지 그 얼마였나?
錯!錯!錯! 아 착찹하고 착찹하다
春如舊 봄은 옛과 같은데, 人空瘦 사람은 공연히 여위어
淚痕紅浥鮫綃透。 눈물흔적만 비단손수건에 붉게 비치네
桃花落 복숭아꽃 지고, 閑池閣 연못 정자 조용한데
山盟雖在,錦書難託, 옛맹세는 여전해도 비단편지 부치지 못하네.
莫!莫!莫! 아 막막하고 막막하다
그러고는 선위안(沈園 심원) 을 나와 작은 운하 를 보면서 이제 루쉰의 소설 공을기에
나오는 咸亨酒店(함형주점) 으로 가서 점심을 먹을까? 아님 좀 더 멀리
월나라왕 구천 의 자취를 보러 푸산쿵위엔 府山公园(부산공원) 부터 갈까 망설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