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008년 11월 6일 목요일
3 년전의 글을 보며 부족한 필력이 부끄럽기도 하고, 비록 3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나, 내적외적으로 많이 변화하였슴을 안다.잃어버렸던 한 조각의 글이다. 남선생님께 2년정도 최면을 받은 적이 있다. 남철우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느낀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바라는 것 없이 대해주시고 봉사해주시고 불간섭하시며 늘 인연을 한결같이 맺어오는 도반님이시다.그 당시 쿤달리니가 돌고있는 상태라 거의 초죽음을 하루에도 몇번씩 생사를 넘나들고 , 돌아봐도 아찔하다.
담마를 잡을 수 있는 공덕이 그 당시엔 시절연이 닿지않았서일까? 위빠사나와 명상수행을 하지않았었다.그저 안에서 끓어오르는 카르마경향성으로 주체할 수 없었고, 다양한 사념체에 시달리고, 현실고로 괴로와 한 날들였다.
그 당시 최면치유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최면감수성이 좋았던지라, 심층의식의 억압된 감정들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그 까닭도 알 수 있었고, 다양한 사례들이 올라오며, 알고 이해되면 마음의 병이 한가지씩 호전되고 정신이 건강해져갔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터닝포인트가 온다. 그 한번이 타마르를 만난 2004년 8월 1일 새벽4시...단기기억 상실증이지만, 그것 만큼은 또렷이 그때 상황까지 기억한다. 새로운 인생이 주어지는 서막이었다.인연은 의식과 의식의 만남이다. 누구든지 전혀다른 사람으로 대변환하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 자가최면을 공부하면 일상속 스트레쓰 상황에서 유용히 쓸 수 있다. 마음챙김의 위빠사나수행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완>이다. 그렇듯 사띠수행에서도 있는 그대로 올라오는대로 알아차림하는 것도 이완이다.최면을 마법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다. 이 치유기법은 충분한 이완과 함께 마음작용을 스스로 다룰 수 있도록 해체시켜주어 바라볼 수있도록 보완하며 도움주는 기능을 배우는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은 스스로 꺼내는 것이다.전세계적으로 마음의 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각자 스스로 자가치유하는 것또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삶의 한 방식이 아닐까한다. 결국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기원의 의구심과 함께 육도윤회의 본질을 꿰뚫는 진실을 알기위한 물음에 누구든지 봉착할 때가 올 것이다. 고통은 궁극의 실재를 만나기 위한 사신의 편지라는걸 감지할 때까지 인간에게 고통은 생과사를 넘나들며 신호를 보내올 것이기에.....! 환생이라는 우주싸이클을 끊임없이 타고다니며 궁극의 바다로 항해하는 것이다.
(아래글은 타마르와의 대화를 풀어서 다시 정리를 한듯하다. 기억이 안난다.
3초만 지나도 과거라더니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한 지금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예전 글을 보니 문장력도 조악하고 유치한 느낌에 쑥스럽지만, 그냥 도움자료로 올려본다.
누군가에겐 3년이 3년이지만, 어떤이게는 3년이란 시간이 300년이 흘렀음을 ...)
최면에 대하여
2006. 2.18 새벽 5시
사실 모든 지구적 삶에 있어서 최면 기법이 쓰이지 않는 일상이란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일상의 현실들 까지... 최면은 눈으로 시각화 되지 않은 상호 교류이며 교통이며 에너지의 주고받음입니다. 최면은 또 다른 대화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면이라는 기법이 달리 형용되어질 앞으로의 시대에 보편화될 이런 기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시대적 흐름에 이러한 기법이 다소 일상 통념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밀려나 있으나 이 행법은 앞으로의 시대에 매우 보편화 되어지는 가정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 우선 먼저 최면방법의 시술이 다소 어긋날 수 있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술 받는 자가 어떤 상념과 관념 어떤 상에 대한 맹신이 투철할 때 이는 곤란을 초래합니다. 또 시술 받는 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다치거나 흐트러져 있을 때도 곤란을 겪습니다. 또 시술받는 자가 시술을 행위 하는 자보다 파장의 진동수가 현저히 높거나 낮을 경우 또한 곤란을 초래합니다. 또 시술 받는 자가 표면구조장으로는 즉 육안으로는 매우 양호한 상태에 있으되 그 무의식이나 차크라가 또는 카르마 에너지에 너무 많거나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뭉쳐져 있을 때 또한 시술이 불가능해집니다. 곧 최면 시술행법은 그 행법 자가 아무리 뛰어남과 그 자신감이 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마인드로 성공 시킬 수 있는 행법이 결코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시술자와 시술 받는 자 사이엔 아무런 의도나 기대나 가치관이 배제되어야만 합니다. 철저히 자연스런 흐름이 흘러야 만이 매우 진솔한 시술의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최면시술의 행법은 결코 일방통행이 될 수 없는 열림과 열림의 상호교통입니다. 육적 영적으로 열려있어야 만이 흐를 수 있는 자연 치유 행법인 것입니다.
먼저 시술을 행하는 자는 시술을 행하기전 우주의 통로를 통해 프라나의 빛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기원을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철저히 나의 의도를 배제하고 오직 맡기며 가장 자연적이며 편안하고 거스름이 없는, 막히지 않은 에너지장의 물결을 형성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술 받는 자에 있어서도 나의 편견 생각을 보태거나 빼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의 가족이라서, 친구라서, 여자라서, 남자라서, 아이라서, 환자라서... 등등의
드러난 상을 배제하기 어렵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더 중요한 건 이 시술 받는 자가 나로 인하여 나았으면, 괜찮아 졌으면, 호전되었으면, 하는 자의식의 바람 또한 모두 없애야만 할 의식입니다. 또한 먼저 시술 받는 자가 지나치게 이 시술에 호기심을 갖거나 의심을 갖거나 기대를 갖거나 부정적이나 무의적으로 진솔한 자세로 임하지 않거나 하는 이에게는 에너지의 소모일 뿐임을 상기하십시오.
이 최면 방법 시술의 작업을 시술행위자와 시술 받는 자가 함께 모든 것을 풀어 놓으며 내려놓고 저절로 주어지거나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알아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할 때 기대하지도 않은 최상의 것이 주어지게 되고 서로에게 무언의 감사가 오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최면 시술행법은 앞으로의 시대에 보편화 될 것이며 그 용어 또한 매우 자연스런 일상적 단어로 통용되어질 것입니다. 행운이...
고마워요 타마르! 갑자기 최면시술에 대한 말씀을 하셨네요.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해 주시는 타마르의 얘기들은 참 귀담아 들을게 많이요. 이 말씀을 그 분(남철우)께 전해 드릴게요.
타마르의 요청이 없었어도 무언중에 누구에게 이 말을 전달해 드려야 할지를 알겠네요. 아무런 의도와 요구가 없는 상태에서의 무심코 들어오는 채널은 정말 재미있고 편하고 참 좋아요. 부담 없고... 보름간 극적인 경험을 통해 저는 반성도 했고 왜 인줄도 알았고 배운 게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