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감상과 향유-1
권순진(시인)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살고 쓰고 사랑하였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우리는 누구나 그처럼 살고 쓰고 사랑하기를 희망한다. 다만 여기서 '쓰고'는 글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돈 쓰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스탕달의 경우는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어느 경우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각고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과 인생이 그렇듯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의 글을 충분히 읽어야 한다. 즉, 자신의 글을 쓰기에 앞서 폭넓은 독서가 요구되며 그것은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교양을 목적으로 하는 시 읽기에 있어서도 어떻게 시를 감상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시를 통해 정신을 고양시키고 자신을 풍성하게 하여 삶의 의미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포함한 모든 독서는 그들의 사상과 경험을 만나고,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내 자신의 것과 견주며 즐거운 체험과 함께 미래에 대한 자극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널리고 널린 책 가운데 무슨 책을 읽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작품을 어디서부터 읽지? 하고 묻는 것은 마치 개가 뼈다귀의 어느 쪽부터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 말과 같다고 베니트는 말했다. 무슨 작품부터 시작하든지 상관없다. 물론 양서란 것은 존재하겠지만 내키는 대로 어디서부터이고 먼저 책을 읽고 시집을 뒤적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읽으면서 어떤 작품이 흥미롭게 다가왔다면 그 작가의 세계를 보는 방법이 자기에게 공감을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깨우치고 새로운 삶을 느끼고 즐거움과 동정과 이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심화시키게 된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바로 인식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며 어떻게 살고 사랑할 것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문학이란 어떻게 살고 사랑할 것인가를 다양하게 간접적인 체험으로 보여주는 미더운 친구임을 차츰 알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 사람의 눈빛마저 바꿔 놓는 사례를 목격한다. 문학은 전에 없던 의미들을 탄생시키고 이름이 없던 것까지를 명명하며 시선을 교정하고 마음의 테두리를 넓혀간다. 그렇게 하여 삶이 깊어지고 따스해짐을 차츰 느끼게 될 것이다.
현대시 감상에 대하여
시는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시 속에 함축된 의미의 암시나 상징, 그리고 의미의 변용을 통해서 정서적, 감각적인 시인의 미적 감동을 긴접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시인의 시를 통해서 시인의 미적 감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겠으나 시를 읽고 간접적인 체험으로 지식과 인격을 느끼면서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의식으로 지식을 넓혀나가는데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시의 행간 속에 감춰진 함축적 의미의 발견이나,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함으로써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감상은 단순히 작품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행위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통합하여 새로운 미의 세계를 재창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시를 읽고 감상하는 일은 다른 시인의 시 세계를 깊이 있게 묵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좋은 작업이다. 시는 마치 경전처럼 시인의 깊은 영감이 서려 있는 작품이 많다. 그러므로 깊은 묵상의 시 읽기는 시의 종교세계로 여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시는 읽는 사람의 관점이나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작품의 세계와 수용자의 삶이 서로 조응할 때 올바른 이해와 감상이 이루어진다. 한 시인의 여러 작품을 모아서 감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시 쓰기에 매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여 그 깊은 감동의 세계로 몰입하는 법을 배우고 시에서 주는 영감의 리듬을 체득하여야 한다. 시는 내 안에 숨어있는 하나의 감정의 창고이다. 단지 우리는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늘 서성이고 주저하고 만다. 그럴 때 좋은 시를 읽음으로써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굳게 닫힌 마음의 문부터 열어 재껴야 한다. 현대시 감상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설렘은 시를 읽는 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사귀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상대방을 의심하거나 자신의 고집을 굳게 지키려 한다면 둘 사이의 이해와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시도 이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는 인쇄된 지면 위에 있어서 스스로 말할 수 없으므로 독자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시도 그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와 일상의 거리는 멀다. 일상에서 시란, 꿈과 현실의 괴리만큼이나 동떨어진 그 무엇이다. 사색과 낭만으로 상징되는 시, 일상의 언어로는 해독하기 힘든 암호 같은 시, 시가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에는 시인의 고통과 희열의 진액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인의 눈물과 슬픔이 거름이 되어 한 편의 시가 탄생한다. 그러므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시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시인의 가슴과 맞닿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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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카페에 '권순진의 시 맛있게 읽기'를 연재해 주시는 권순진 시인님의 칼럼입니다.
"시담 겨울호"에 실린 것을 카페 회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8쪽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어서 아직 서너 번 더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애독해 주셔용~~^^
글이 우측 끝에 것은 잘려서 모르는 사람들은 읽기가 불편하겠는데요?
어디 한글이나 이런 데서 복사를 해서 갖다 붙이셨나봅니다. 처음엔 글이 연결이 안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감사 드립니다 박인숙 시인님^&^
@착한남자 헹? 그러세요?
우째 그런 일이........ㅜㅜ
글자 폰트를 크게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모냥인디요.......
이거 제가 바로 키보드 치면서 올린 거걸랑요.....
우짜나.....
아하 그러고 보니까 시담이라는 잡지에 안경모 선생님의 글과 권순진 선생님의 글이 같이 실렸군요?
두분 멋진 선생님들의 위대함에 감동 받고 갑니다^&^
^&^, 착한남지님이 오시니 바로 리액션이 와서 넘넘 살맛이 나는구만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