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감상과 향유-4
권순진(시인)
그렇다면 시는 어떻게 쓰나
글 쓰는 일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막연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비법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세상 모든 일처럼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 정도라는 것은 다 알다시피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요령을 터득하는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미세한 경험과 깨달음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남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이 못된다. 글쓰기는 정해진 공식이나 이론에 대립시킨다고 해서 되는 젓이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지는 필연과 우연의 만남이다. 여기에 글쓰기의 어려움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동기를 가졌다 해도 대부분은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수가 많다. 첫째 기대감이 열등감으로 바뀌어서 그렇고, 둘째 욕심과 의욕이 앞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서 그렇고, 셋째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된다. 우리는 남과 비교함으로써 불행이 시작되기도 하고 행복이 찾아오기도 한다. 남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오만해지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문학작품은 절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어떤 이게게는 눈물을 쏟게 하는 감동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유치한 신파로 다가올 수 있다. 모든 독자를 감동시키기는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글을 쓰기가 당연히 쉬운 노릇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읽고 감동을 받은 글들은 주제나 소재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대체로 자신의 세계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깊은 울림을 준 것들이다.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글이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이거나 원대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내 경험은 진부하고 의미가 없을지라도 타인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충격과 간접 경험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 나에게는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생각들이지만 타인에게는 남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자기 주변에서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빨래하고 설거지한 일, 친구를 만나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느낀 것, 남을 증오하고 시기한 것, 그런 것들을 우선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단 한 두 줄이라도 좋으니 적어보는 것이다. 형식은 일기나 편지가 되어도 좋고 문장 구조를 갖추지 않은 메모가 되어도 좋다.
길에 아무렇게나 놓여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는 돌메이가 있다고 치자. 보통 사람들은 이 돌멩이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찮은 존재로 여길 것이고 기껏 관심을 갖는다고 해봐야 주어다가 어디 써먹을 데가 없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자기중심, 더 나아가 인간 중심으로 그 돌멩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만약 돌멩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무심코 자기를 걷어차는 사람들의 발길이 있기도 할 것이고 흙과 풀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이다. 또, 대굴대굴 굴러서 자기 짝을 찾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점점 돌멩이의 시각으로 생각을 확대해 나간다면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 하나를 통해 이 세계 전체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면 엄청나게 신비하고 새로운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생명과 무생물, 어떤 현상까지를 포함해 세계 전체를 내가 지닌 자아와 동등하게 보는 시각은 글쓰기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요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도 다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무서운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범신론적 세계관이 마음만 먹는다고 금방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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