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쓰려면 / 이승하(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아래는 시인 이진우 씨가 운영하는 문학 웹진 시인학교(www.poetschool.net)에서 퍼온 글입니다. .
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를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시상을 풀어가는 수단으로써,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정서의 결을 잘 다듬을 것.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노트> [시안] 2002년 봄호에 실린 글을 축약해둔다. 시를 쓰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들을 찬찬하게 지적해주었다. 두고 읽을만 하다.
<추기> 다음은 <시안)2003년 봄호에 실린 박남희의 신인상 예심평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심사과정에서 제외된 작품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결점을 안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1)알맹이는 없이 장식적인 어구를 구사하고 있는 경우
2)미처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감상성이나 관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경우
3)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너무 빤한, 평면적인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경우
4)치기 어린 사랑시에서 못 벗어나 있는 경우
5)너무 낯익고 관습적인 묘사나 비유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
6)시와 산문의 차이점을 모르고 평면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는 경우
7)<-하노라> <-구나> <-어라>등과 같이 의고체나 감탄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경우, 등인데
8)개중에는 앞부분의 몇 작품은 괜찮은데, 중 후반부의 작품들이 편차가 너무 심해서 제외된 경우도 있다.
<추기) <현대시> 2002년 5월호에 실린 오세영시인의 다음 말에도 귀를 기울이자
첫째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시는 무의미다, 유희다, 그런 입장과 변별되지요. 시는 일단 진지하게 쓰는 거라는 것이 나의 첫째 원칙이예요. 둘째는 시의 원리는 건강성이라고 보는 거죠. 시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기여해야지, 인간의 존재를 해체하고 감수성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건강한 정서는 시의 아름다운 덕목 아닐까요? 셋째는 아름다운 것을 쓴다는 입장이예요. 아름다운 것만 가지고 써도 다 못 쓰잖아요. 굳이 혐오스럽고 추한 것까지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문제고요. 마지막으로 넷째 원칙이 있다면 쉽게 써야 한다고 봐요.
....독선적으로 문학이 아닌 하나의 이념을 고수한다든지, 시류에 속박되어 버린다든지 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가령 한바탕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지나갈 때도 그러했지만, 요즘도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면, 앞선 시인의 아류적 모방이거나 시류적 타협의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맹목적으로 시적인 기류에 섞여드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을 오히려 구속하고 억압하는 획일화의 한 예가 될 수 있지요.(... 획일화된 사유는 안됩니다.)
<추기>평론가 박재열은 <포에지>2001년 겨울호에서 멜로우 포에츄리의 예로서 다음 몇 가지를 들었다.
1)잠언이나 금언 경구 같은 것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
* 시인 황동규는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으로서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다고 평가되는 이정록의 "슬픔"의 전문인,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생이 있다'를 들어 보이면서 '그러나 이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2)대상 자체의 물질성이나 즉물성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자신이 즐겨쓰는 시어에 의탁하여 통속적인 정서를 불러내는 것
3)이미 여러 시에서 도식화해 놓은 등장인물, 주제, 시적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
4)도식적으로 소재를 인식하는 것, (양식화한 자연관, 이분법적 사고와 고식적인 태도를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