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김대현 법사 / bbs '장병의 시간']
어렸을 때, 집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기차가 아무리 빵빵대고 으르렁거리며 하루종일 지나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평화롭게 잠이 들 수 있었다. 그 기차소리는 전혀 특별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놀러와서 하룻밤 자게 되면 "도대체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 기차소리가 들리긴 들렸었나?' 할 정도로 무감각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웬만한 소음에는 깨어나지 않던 사람도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쉽게 깨어나는 경우도 있고
특히 어머니들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잘 자다가 어린 아이가 '응애~' 하는 소리에 바로 깨어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우리에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입력되고 있지만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 특별히 선택된 것에만 한정하여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에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적 입력내용들을 거르는,
여과장치 같은 기능이 있다. (망상활성화체계, RSA)
이 망상활성화체계는 엄청난 외부의 정보를 분류하고 거르면서,
동시에 과거에 축적된 데이터 중에서 유사한 것을 검색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의 경험을 순수하게 느끼지 못하고
과거 경험에 덧씌워진 진부한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 인생의 하나뿐인 매 순간의 경험을 새롭게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경험에 짜맞춰 인식하는 데에 아주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것,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다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절에서 스님들께 법문을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법문이면 재미없다고 느낀다.
그러면 집중도 안 되고 새로운 가능성과 깨달음은 얻을 수 없다.
우리가 현실의 매 순간 순간을 대하는 관점도 이와 같다.
매 순간의 경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새롭게, 무언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험하지를 않는다.
모든 경험은 아주 새로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다'는 그 생각이 우리가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는 이렇게 매 순간순간을 대충대충 넘기고 만다.
밥 먹는 일을 예로 들면, 하루 세 번 밥 먹는 일을 반복한다.
음식도 다 먹어본 것이고, 그래서 맛도 어지간히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밥 먹는 그 소중한 일상을 대충대충 넘겨버린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밥 먹을 땐 밥만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밥 먹을 땐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여 그 맛을 느끼고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밥 먹는 일을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고 그 맛도 다 안다는 생각 때문에
밥 먹는 데에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 주의집중이 안 된다.
밥 먹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 없이 매 공양시간을 전혀 새로운 경험으로 맞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혀 새로운 일을 할 때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어떠한가?
온 감각이 다 깨어나고 집중을 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밥 먹을 때도 집중하고 깨어있게 되고
그야말로 밥 먹을 땐 오직 밥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 아무리 과거와 같은 경험이라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한 번 흘러간 강물에는, 한 번 목욕한 강물에는 두 번 다시 목욕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매일 그 강에 가서 목욕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일한 강물은 결코 아니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새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라.
매일 오고 가는 그 길이 매일 똑같은 길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매일 바라보는 하늘이 똑같은 하늘이 아니고, 첫눈도 똑같은 첫눈이 아니다.
나뭇가지 하나, 꽃 한 송이조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으로
우리 마음에 맑은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삶이라는 신비와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법정스님>
첫댓글 부부가 이사실을 알면 권태기 없겠네ㅎ
고맙습니다. ()
새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라... 새해에 신선하게 와닿는 말씀이네요~
날마다 새날, 사람마다 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