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김대현 법사 / bbs '장병의 시간']
제가 어릴 때는 바나나가 매우 귀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전에는 한 번도 바나나를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께 바나나가 맛있냐고 여쭤보았더니 값도 비싸고 귀하니까
'에이, 맛없어~' 이러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른 사람들 보고 바나나가 맛있냐고 물었더니 맛있다고들 하는 거였습니다.
당시 저는 태권도 학원을 다녔는데 동생은 오전반, 저는 오후반이었습니다.
제가 태권도 학원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학원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종이쪽지가 하나 보였습니다.
동생이 적어 놓은 거였는데 '형, 나 오늘 처음으로 바나나 먹어봤어.
친구가 바나나를 가져와서 조금 줬거든.
그런데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하고는 달라. 너무 맛있어.
혼자 먹기 좀 그래서 반만 먹고 조금 남겨 놓았으니까 이 약도를 따라가봐'
당시 태권도 도장 뒤쪽에 집을 지으려고 닦아 놓은 공터가 있었는데
쪽지에 약도는 그리로 향해 있었습니다.
공터에 벽돌을 좀 쌓아 놓은 곳이 있었는데
벽돌 몇 개를 들추니 비닐봉지 속에 바나나가 있었습니다.
그 어설픈 약도를 보고.. 친구들을 먼저 보내 놓고 바나나를 어렵게 찾았는데 흙이 묻어 있더군요.
그래서 흙 묻은 걸 걷어내고 나니까..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남았습니다.
바나나가 맛있던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였고..
무엇보다 동생에 대한 고마움이 아주 컸습니다.
짠~한 행복감.. 그때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 최고의 바나나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특히 바나나가 법당에 많이 올라오는데
지금은 그다지 잘 안 먹게 되고
지금은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 운동화가 두 켤레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운동화가 달아서 빗물이 샐 때까지 신어야 비로소 새 신발을 가질 수 있었죠.
빗물이 새도 한동안 그 운동화를 신고 다녔기 때문에 어머니가 새 신발을 사 주시면
'아, 이젠 빗물이 새지 않겠구나' 하고 기뻐하곤 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버스비가.. 제 기억으로 5~60원 정도 했던 거 같은데
학교 마치고 운동하러 갈 때마다 어머니는 정확히 차비만 챙겨 주셨습니다.
운동하는 곳에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약 40분 정도 걸렸는데, 그 오는 길에 시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운동이 끝나면 버스 타고 집에 와서 바로 밥을 먹어도 되는데, 그 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당시 떡뽁이와 어묵을 버무려주는 '빨간 어묵'이라는 게 있었는데
종이컵 하나에 한 100원 정도씩 팔았던 거 같습니다.
너무 먹고 싶은데.. 먹고나면 차비가 없으니..
고민하면서 서성대다가 눈 딱 감고 '100원 어치만 주세요' 했죠.
신나게 먹으면서 어묵 국물을 몇 번이나 리필해 먹고..
그러고나면 날아갈듯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돈도 벌어보고.. 이젠 마음껏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시 행복했던.. 그 짠~했던 감동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부족한 데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불편과 부족에서 오는 즐거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는 겁니다.
이처럼 풍족한 데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가운데 짠~한 행복감이 밀려오는 것이죠.
오늘날 넘치는 풍요가 오히려 정신의 가난을 가져온 게 아닐까요?
'요범사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하루 입지 않으면
하루 동안 하늘에 그 옷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하루 먹지 않으면
하루 동안 하늘에 그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크고 높은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작은 집에 살면
그 기간 동안 하늘에 그 집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사치할 수도 있는 것을 절제하고 아끼면 그 시간 만큼
부처님께, 화엄성중님들께 공양 올리는 공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빈의 정신으로 생활하면 복덕이 자연스럽게 지어집니다.
반드시 사야 한다면 나에게 꼭 필요한 것, 소박한 것, 적당한 것을 사보세요.
겉이 번지르한 것을 사 쓰는 차액 만큼 부처님께 공양하는 공덕이 될 겁니다.
불편해도 조금 참아보고, 가지고 싶어도 조금 기다려보세요.
마음을 비우고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보는 것입니다.
그 속에 존재의 깊은 풍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을 살리고
모두 함께 잘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빛이 있습니다.
☞ (진정한 부자) 현명한 사람들의 기도 http://cafe.daum.net/santam/IQ3i/1130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 http://cafe.daum.net/santam/IQ3i/1302
한 그릇 국물로 나라를 잃고, 한 덩이 찬밥으로 목숨을 구하네 http://cafe.daum.net/santam/IQ3h/765
첫댓글
어묵,바나나가 뭔지도 모르고 컸네요ㅎ
고맙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