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의 무제한 생육정책에도 등소평의 산하제한정책에도 수용되지 못했던 계획생육정책을 요즘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다.
누가 제출했던 것인지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구절벽에 직면한 중국의 요즘 상황을 보면서 못내 아쉬움이 남는 인구정책이다.
간단한 적분개념으로 풀 수 있는 수학문제인데, 한번 시도해보시면 재밋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이 실시하는 생육정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부족은 남자애를 낳으면 더는 생육을 못하고 남자아이를 낳을 때까지 무제한으로 생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족의 남여비율과 인구성장률은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남여비율과 인구성장률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풀이: 대수를 도입하지 않고 그냥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숫자를 대입하여 설명해보자.
2019년도에 생육한 부부가 100쌍 - 200명이라고 가정하고 이 부족의 남여비율이 50: 50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하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 100쌍의 부부의 첫째 아이는 남자 50명, 여자 50명
남자 50명을 낳은 50쌍의 부부는 두번째 아이를 못 낳음, 여자아이를 낳은 50쌍이 둘째를 낳는데
둘째둘중 남자 25명, 여자 25명
셋째들중 남자 12.5 여자 12.5
넷째들중 남자 6 여자 6
다섯째들중 남자 3 여자 3
여섯째들중 남자 1.5 여자 1.5
일곱째들중 남자 0.75 여자 0.75
대충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부부는 여자애 7명 남자애 1명을 낳게 되지만
남여비율은 첫째들만의 비율, 둘째들만의 비율, 셋째들만의 비율로 계속 유지된다.
그리고 영유아사망요소를 무시하면 인구성장률도 유지된다.
왜냐하면
1+1/2+1/4+1/8~ = 2 = 한쌍의 부부가 되기때문이다.
이렇게 훌륭한 인구정책이 왜 모택동에도 등소평에도 수용되지 않았을까?
남존여비사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모택동은 대규모 내전을 거친 중국이 인구를 급격히 늘이는데 급했고
등소평은 모택동이 급격히 불려놓은 인구를 먹여살리기 바쁘다고 생각했기때문이었다.
등소평의 인구정책의 목표는 2000년까지 중국의 인구를 12억명으로 통제하는 것이었다.
물론 달성하였다. 그때 이미 경제개발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때문에 그때라도 저 위의 훌륭한 인구정책을 실시했더라면 지금의 인구절벽에 직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등소평이 1997년에 사망하고 장쩌민, 후진타오는 등소평의 정책을 수정할 엄두를 못 냈다.
후진타오정부 2기에 들어서서야 농촌인구의 급격한 도시화를 중단하고 인구가 대도시에 집중하고 농촌이 공동화되는 현상을 억제하기 시작하였다.
베이비부머세대가 사망하기 시작하면 도시인구는 증가하기는 커녕 줄어든다.
그러면 농촌인구로 줄어드는 도시인구를 보충하여야 한다. 그것이 후진타오정부에서 추진한 신농촌건설이고 농민호구를 철폐하지 못한 원인이다.
2018년부터 한쌍의 부부가 2명을 낳도록 하여도 도시민들은 낳지를 않는다. 이것이 진짜 시진핑정부가 마주한 가장 큰 골치거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인구의 도시화다. 인구의 대량적인 도시화가 없으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그대로 멈춰선다.
미국이 2차대전후에 그나마 성장률을 이어온 건 바로 대량이민으로 미국의 도시인구를 불렸기때문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