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067
의상조사법성게67
동봉
중생 그릇(3)
생명위한 보배비가 허공중에 내리는데
중생들은 그릇대로 각자이익 얻는구나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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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그릇'이라니
'중생이 지닌 마음 그릇'일까
'중생衆生世間과 그릇器世間'일까
전자를 따르면 의주석依主釋이니
중생에게 속한 그릇일 터이고
후자를 따르면 지업석持業釋이니
중생과 그릇이 별개의 것이리라
일반적으로는 보통 의주석이 맞겠지만
나와 같은 망상가에게는 지업석일 수 있다
그런데 의주석 지업석이 뭘까?
의주석과 지업석 따위를 알기 위해서는
한역체계漢譯體系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에서 범어로 된 불경을 번역할 때
설정한 일러두기explanatory notes다
한역체계 일러두기로 6가지가 있기 때문에
'육이합석六離合釋'이라 이름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섯 가지 방식으로
글자와 글자
글자와 단어
단어와 문장
문장과 문장들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원문이 지닌 뜻을 충분히 전달함이다
이를테면 《대학大學》제1장을 놓고 보자
"대학지도재명명덕재신민재지어지선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여기서 어떻게 뗐다 붙였다 할까
첫째 일반적인 방법대로 떼고 붙인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둘째 다른 곳에서 띄어쓰기를 한다
'大學之 道在明明 德在親 民在止於至善'
셋째 또다른 데서 띄어쓰기를 한다
'大學之 道在明 明德在親 民在止於至善'
자 어떤 해석들이 나올까
첫째 이합석離合釋에 따르면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고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가 될 것이다
둘째 다른 이합석에 따르면
'대학의 도여! 밝음을 밝히는 데 있고
덕이여! 새롭게 함에 있고
백성이여! 지고한 선에 이름에 있다'다
셋째 또 다른 이합석에 따르게 되면
'대학의 도는 밝음에 있고
덕을 밝힘은 새롭게 함에 있으며
백성을 지고한 선에 이르게 함에 있다'다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육이합석의 일러두기를 사용하였듯이
이처럼 한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체계도
이들 '육이합석'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수기衆生隨器'를 새길 때도
중생衆生에 속한 그릇器일 수도 있고
중생衆生과 그릇器이 동격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또 부질없는 망상 갈래에 들어서는구나!'
하면서 걷던 길을 잠시 멈추기도 한다
몽상夢想이 아닌 망상妄想이다
나는 실제로 몽상가도 못되는 망상가다
꿈속의 생각
꿈 같은 헛된 생각
실현성이 없는 허망된 생각이 몽상이다
그래설까《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신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라고.
잘못된 몽상을 멀리 여의라는 말씀이시다
망상도 잘못된 생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여기서는 지업석보다는
중생에 속한 그릇으로 의주석이 어울린다
이처럼 의주석으로 놓고 볼 때
문학 장르의 하나인 액자구조가 떠오른다
꽃으로 꾸며진《화엄경華嚴經》구조가
액자구조의 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부처님은《대방광불화엄경》액자를 만들고
<제39 입법계품>이란 소액자를 만들어
그 액자에서 '53선지식'이라고 하는
매우 다양한 액자를 만들어간다
이탈리아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의
소설《데카메론Decameron》보다도
한참이나 선배인 부처님의《화엄경》에
더 다양한 액자구조가 곧 이 <입법계품>이다
중생에게 들어있는 마음 그릇
그 그릇 안에 또 다른 생각들이 담기고
각각의 그릇마다 작은 생각들이 들어있다
이들 생각 생각들이 모두 그릇이라지만
큰 틀에서 보면 중생의 마음 그릇일 뿐이다
중생의 마음 그릇은 어떤 모양일까
네모형, 둥근형, 세모형일까
높은형, 낮은형, 뒤죽박죽형일까
그릇의 색깔은 빨주노초파남보에서
어떤 컬러를 지니고 있을까
아예 상식의 색깔을 벗어나 있지는 않을까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시스템을
액자구조요 의주석이라 강변한다면
미련이 남는 게 역시 지업석持業釋이다
지업석은 동격에서 바라본 해석이다
중생과 그 중생의 마음 그릇이
다시 보니 주종관계가 아니라 벗의 관계다
중생이 겉表이고 마음이 속裏이라지만
어느 것이 높거나 더 장하지 않고
낮거나 또는 모자라지 않다는 것이다
지업석을 놓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액자구조가 아닌 거울구조라는 것이다
액자구조와 거울구조가 다른 것은
액자는 겉으로 꾸민 외형의 세계이고
거울은 외형의 틀 안에 들어있는 쓰임새다
억지로 자동차를 예를 든다면
바디body가 액자고 섀시chassis가 거울이다
바디의 액자구조는 겉을 장식함이지만
섀시의 거울구조는 직접 영향을 미침이다
거울구조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있다
어느날 나는 내가 예전에 사언절四言節로 옮긴
의상조사의《백화도량발원문》을 읽다가
시쳇말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백화도량발원문'을 처음 옮길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완벽한 '거울구조mirror structure'였다
'기포의 새벽 편지-1024'에 해당하고
'법성게 쉬어가기(3) 제4연'이다
거기서 나는 사언절로 이렇게 새기고 있다
관음거울 비추어진 저희들의 몸으로서
저희거울 투영되신 관음보살 대성존께 라고
'관세음보살'이라는 관음거울 앞에 섰다
거기에 나의 몸이 투영된다
나는 '관세음보살'과 하나가 된다
관음거울 속에 투영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관세음보살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이처럼 하나가 된 나의 마음거울에
관세음보살이 고스란히 비춘다
그리고 나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에 투영된 바로 이 관세음보살에게
나는 몸과 마음 다 기울여 예배禮拜한다
아! 이처럼 아름다운 거울구조가 또 있을까
화엄종에서 세운 세 가지 세간으로서
첫째 기세간器世間이 있고
둘째 중생세간衆生世間이 있으며
셋째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있다
이를 보통 '삼종세간三種世間'이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국토가 기세간이고
부처님 외 모든 중생 세계가 중생세간이며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가 지정각세간이다
이들 세 가지三種 세간 가운데
첫째, 둘째가 중생과 그릇에 관한 세간이다
앞의 거울구조에서 본 것처럼
중생세간과 그릇세간은 도움扶助관계다
중생衆生이란 맹랑한 존재가 어디 사는가
지구/국토라는 환경器世間 속에서 산다
그릇 세간이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은
담길 중생 세간이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둘은 서로 윈윈win-win 관계다
두 발과 같아 하나로는 오래 서있기 어렵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지정각세간이 나온다
아직은 아니라 해도 언제가는 나올 것이다
남이 아닌 바로 내게 질문 한 번 던져 보자
나는 다양한 인연衆으로 사는生가 아닌가
나는 중후重하게 사는生가 아닌가
나는 가운데中 길로 걷고生 있는가 아닌가
나는 지금 살아生있는 중ing인가 아닌가
내 마음의 그릇은 어떻게 생겼으며
모양色이 있다면 어떤 빛깔을 지녔을까
내가 살아가는 그릇器이란 환경에게
그에 담긴 존재衆生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아! 나는 올바른 인생관智正覺을 지녔는가
한 가지 더 물을 게 있다
"정말 중생이 겉表이고 마음이 속裏일까?"
내 물음에 내가 답한다
"쯧쯧咄咄! 매실을 생각하니 침이 괸다"
12/15/2017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