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기器 자는 이 그릇 기噐 자의 본자로 뜻모음會意 문자에 해당한다 접시처럼 납작한 그릇을 비롯하여 생물체의 기관이라든가 도구를 얘기하고 그릇의 뜻으로 쓰며 그릇으로 여기다의 뜻도 있다 또는 존중하다 따위의 뜻을 담고 있다 어떤 명사 다음에 붙어 기계나 기구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릇이란 근기나 기량을 담고 있음이며 음식 그릇 수를 세는 단위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믿고 닦아갈 만한 능력을 충분히 지닌 자를 크거나 작거나 일단 그릇에 비유하였다 개 견犬 자를 네 개 그릇 중앙에 놓은 것은 고대에는 개고기가 죽은 자에게 있어서 저승가는 '길음식'으로 대용되었다 그리하여 무덤에 묻히는 일이 빈번하였다 개고기를 네 개 접시에 담은 모습은 음식을 덜어 먹는 납작한 접시를 상징한다
그런데 나는 이와 해석을 달리한다 현존하는 그릇 기器 자는 상형문자다 네 개를 한 세트로 하는 그릇이 무엇일까 짐작하겠지만 바리때를 떠울렸다면 빙고bingo! 맞는 답이다 바리때는 4개로 한 벌을 이룬다 그릇 기器 자를 놓고 볼 때 아래 앞의 왼쪽은 밥그릇이고 아래 앞의 오른쪽은 국그릇이며 위의 왼쪽 그릇은 반찬 그릇이고 위의 오른쪽 그릇은 천수天水 그릇이다
천수 그릇은 '청수淸水 그릇'이라고도 한다 청수의 청淸은 형용사 '맑다'인 동시에 '맑히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다 따라서 청수는 '맑은 물'을 담아놓았다가 식사가 끝난 뒤 발우를 씻는 물이기에 씻는 물, 곧 설거지 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릇 기器 자는 고대문자가 아니라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글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역사적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릇 기器 자와 그릇 기噐 자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인지認知해야 한다 그릇 기器 자는 개 견犬 자가 들어있으나 그릇 기噐 자는 장인공工 자가 들어있다 개 견犬 자가 든 것은 개밥그릇이고 장인 공工 자가 든 것은 예술적 그릇이다 역사적으로 개밥그릇器이 먼저고 예술적 그릇噐이 나중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인도印度나 일부 아프리카에 가면 겉으로 보아 흙으로 빚은 좋은 작품인데 차 한 잔 마시고 던져 깨뜨려버린다 생각해보면 아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는 일회용 개념이 있었다 위생상 한 번 쓰고 곧바로 버리는 개념이다 요즘 의료기기 중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주사 바늘은 선진문화다 이런 문화가 이미 인도, 아프리카에 있었다
우리는 종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든 일회용 컵이나 일회용 접시를 이용하는데 이런 문화가 이미 고대에도 있었다 게서 나온 상징 한자가 그릇 기器 자다 중요한 것은 개밥그릇器이라 해서 딱 한 번 쓰고 버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릇에 전문성을 부여하였다 장인 공工 자가 들어간 그릇 기噐 자에서 그릇의 전문성과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장인工 정신이 들어간 소중한 그릇을 일회용처럼 딱 한 번 쓰고 버릴 수는 없다 위생을 위해서라면 일회용도 좋지만 의료기기도 아닌 그릇까지 구태여 일회용으로 쓸 필요가 있겠는가 자원의 쓰임새까지 생각한 모델이다 그리하여 스님네 바릿대鉢盂에서 멋진 예술과 문화가 만난다 그리하여 그릇 기噐 자가 생겨난다
생명의 역사에서 살펴보았을 때 그릇을 필요로 하는 생명체가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으레 '사람'이란 존재다 사람이 지구상 다른 생명체와 견주어 분명 다른 게 있다면 무엇일까 첫째는 의상衣이고 둘째는 음식食이며 셋째는 주택住이다 어떤 생명도 옷을 만들어입지는 않는다 어떤 생명도 음식을 조리하지는 않는다 어떤 생명도 집을 꾸미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어떠한가 입맛에 맞춰 음식을 조리할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느낌을 담는다 느낌感性이란 앎知性과 다르다 느낌은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바야흐로 개犬밥그릇器이 아니라 예술工 밥그릇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옛사람들이 쓰던 이 그릇 기器 자가 이 그릇 기噐 자로 바뀌게 된 데는 이처럼 장인정신과 예술성이 깃들어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중생 그릇'은 밥을 담고 국과 반찬을 담고 차를 담고 물을 담는 그런 그릇이 아니다 수행자의 근기나 기량을 표현한 것으로 그의 마음 그릇을 비유한 말이다 부처님이나 대승보살이 가진 마음 그릇은 큰大 사랑慈 큰大 슬픔悲으로 꽉 차 있다 그런데 중생 그릇은 어떠할까 작기로 말하면 물 한 방울 담을 수 없지만 크기로 말하면 세상의 온갖 것들을 모두 혼자 차지할 정도로 크다
미움과 시기는 한없이 큰데 사랑은 너무 작은 게 중생 그릇이고 불행과 절망은 한없이 큰데 행복은 너무 작은 게 중생 그릇이다 공덕과 원력은 한없이 큰데 번뇌 업장이 너무 작은 게 부처 그릇이고 선정과 지혜는 한없이 큰데 산란과 어리석음의 제로가 부처 그릇이다 육바라밀을 닦는 마음은 퍽 여유로운데 업장의 쌓임이 없는 게 부처 그릇이다
아무튼 중생의 마음 그릇은 때로 크기도 하고 때로 작기도 하다 크기로는 번뇌덩어리고 작기로는 원력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이 대표다 어떻게 나눌布施 것이며 어떻게 예의로울持戒 것이며 어떻게 참을忍缛 것이며 어떻게 힘쓸精進 것이며 어떻게 선정禪定에 들 것이며 어떻게 슬기로울智慧 것인가 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을 통해 마음 그릇을 넓히고 동시에 키워나간다 따라서 중생 그릇을 닦아가는 데는 육바라밀을 함께 닦을 필요가 있다 생각의 혈관을 원활하게 하고 양심의 산소를 들이마시며 탄소를 통해 팔만사천 번뇌를 내뱉는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작되 작은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크되 큰 것에 도취陶醉되지 않는다면 바야흐로 공부가 무르익어간다고 하겠다
나는 오늘도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음 그릇은 큰가 아니면 작은가 마음 그릇은 어떤 소재일까 마음 그릇은 어떤 컬러를 지녔을까 마음 그릇은 몸 밖으로 잘 표출되는가 마음 그릇은 과거를 되짚을 줄 아는가 마음 그릇은 현재 내 삶을 잘 이해하는가 마음 그릇은 1찰나라도 행복한가 내 물음에 내 스스로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