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利益'이란 말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멍커孟軻의《맹자孟子》첫머리에 있는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이다 그에 의하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멍커가 양나라 혜왕을 만나니 왕이 말했다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와 주셨으니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겠는지요?
이에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대신들은 내 집이 이로울까를 생각하고 선비나 또는 백성들 생각은 오로지 제 한 몸의 이익에 머물 것이며 그렇게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 한다면 나라는 마침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진실로 인仁과 의義를 뒤로 미루고 오로지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모든 것을 다 빼앗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아직까지 어질며 부모를 버린 사람이 없고 의로우며 임금을 등진 사람이 없습니다 왕께선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나는 열댓살 때《맹자》를 읽으며 '멍커가 어찌 이리 멍청할 수 있단 말인가!' '한 마디로 골 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맹자를 읽은지 어느 새 50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멍커의 어록인《孟子》에서 이 대목을 뛰어넘는 글은 찾을 수 없다 역대의 많은 유생들이 바로 이 대목 때문에 멍커를 최고의 지성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정말 멍커의 주장이 옳긴 옳을까 인의仁義가 '이利'보다 더 소중할까 멍커와 같은 철학자 입장에서는 어짐仁과 의로움義이 뛰어날 수 있겠다 그러나 멍커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2천 몇백 년이나 지난 20세기 중엽에 먹을 게 없어 배움을 중단해야 했던 내게 인의仁義에 대한 추임새는 그렇다 해도 '이利'에 대한 반박이 가당키나 할까 천하 많은 사람이 멍커를 높이 평하더라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는 아니다
멍커가 상대했던 사람은 왕王이다 양梁나라 훼이왕惠王이다 서기 6세기 경 양훼이왕梁惠王이 아니라 기원전 4세기 경 멍커시대의 왕이었다 그렇더라도 왕은 서민이 아니고 나와 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분도 아니다 그런 이에게는 인의를 설파할 만하다 적어도 왕이나 제후의 신분이라면 먹을 것과 입을 것 쓸 것 따위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멍청한 멍커는 인의의 소중함만 알았지 이익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익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짐짓 이利의 세계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인仁과 의義를 드러내려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철학자로서 또는 깨어있는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설령 그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는 왕의 신분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할일이 뭐가 있을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만을 장려하고 나라와 사회와 가정의 살림살이는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도 된다고 볼까 한 나라의 왕이라면 그럴 수 없다 인의와 예절과 지혜와 믿음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이 잘 살게 해주는 것도 중요한다 남의 밥그릇을 흘깃거릴 일이 없고 헌옷 수거함을 뒤적일 게 없으며 노숙자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줌이 정치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 큰 과제다
양나라 훼이왕의 생각은 자나깨나 백성들의 삶뿐이었다 어찌하면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할까 어찌하면 헐벗은 백성이 없도록 할까 어찌하면 집없는 백성들이 없도록 할까 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백성들은 없을까 별의 별 생각들을 다 했을지 모른다 한 작은 말사末寺의 소임자住持도 사찰 경제와 함께 대중을 생각해야 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 최고지도자에게 있어서 나라살림이 인의만 못하겠는가 싶다
멍커의 어록《맹자》에서 백성에 대한 양훼이왕의 염려 따위는 설사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나 이제나 나라를 이끄는 국정책임자는 백성과 국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나라 훼이왕은 멍커에게 묻는다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시려는지?" 나라 살림을 맡아보지 않은 멍커는 "인의가 있는데 하필 이利냐?"며 되묻는다 이利는 곧 이로울 이利 자다 농경사회에서 쌀禾이라는 경제와 함께 국방의 도구인 무기刂를 이미지화하였다
한 나라의 군주는 백성들의 경제禾와 함께 백성들의 안위刂도 한없이 중요하다 이 두 뜻을 한 데 묶은 게 이로울 이利 자다 나는 어렸을 적 내 처지 때문일지 모르나 양나라 훼이왕의 질문은 적절했는데 멍커의 답은 한참이나 어리석다고 여겼다 나는 인의를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의는 뿌리根줄기幹다 단지 멍커의 답이 아쉽다고 여겨짐은 인의仁義와 함께 이利도 인정했어야 한다
더할 익益 자는 그릇 명皿 자 위에 물 수水 자를 90°로 뉘어 놓은 꼴이다 물을 뉘어 놓았다는 것은 물의 넘침이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더할 익益 자의 물水이 살바도르 달리의 '흐르는 시계'처럼 그릇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할 익益 자가 만들어질 때부터 표면장력表面張力surface tension의 법칙을 이미 염두에 두었을런지도 모른다 비록 넘치지는 않지만 더할 익益 자에서 한두 방울만 더 보태지면 물은 넘칠 것이다
멍커의 어록《孟子》의 위 대목에는 이로울 이利 자뿐 더할 익益 자가 없는데 의상의《법성게》에는 더할 익益 자가 있다 군주는 경제와 국방인 이利를 생각하지만 중생들은 이利와 함께 익益까지 챙긴다 실컷 쓰고도 넘쳐나는 익益까지 챙긴다 그러나 그릇이 차고 밖으로 넘치는 것은 어떤 경우도 그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익이란 자신의 그릇에 한정된다 마음 그릇의 크기와 생김새에 따를 뿐이다
비보배雨寶의 이익益된 삶生이 온滿 허공虛空 어디에나 두루하건만 중생衆生들은 지니고隨 있는 그릇器대로 얻는得 이익利益이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릇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둥글면 둥근대로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얻는 이익이 다양하고 다채롭다 문득《법화경》의 <약초유품>이 생각난다
비가 내릴 때 빗물은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를테면 큰 나무에게는 폭우가 내리고 가는 풀잎에는 가랑비가 내린다거나 깊고 좁은 개울에는 적게 내리고 넓은 호수에는 많은 비가 내리는 게 아니다 비는 언제 어디서나 차별없이 내리는데 크기와 깊이와 넓이에 따라 모두들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같은 비를 맞으면서도 고추는 매운 맛을 만들고 감초는 단 맛을 만들며 매실은 어즈버! 신맛을 만들어낸다